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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문제의 핵심은, ‘이명박은 이딴 식으로 인간다운 삶을 작살낸다!’는 거다

세간에 아직 그리 많이 알려진 것 같진 않지만, 지금 서울 명동거리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직속기구화를 반대한다>는 것.

인권운동사랑방도 이 농성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고 있고, 나도 하룻밤을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했었다. 하루종일 농성장을 지키며 선전활동을 하고 저녁 촛불행사를 치루고 ‘하늘의 달을 취침등 삼아’ 잠을 청하는 동안 내내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이 문제의 핵심은 뭘까?’하는 의문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아마 이 의문이 계속 맴맴 돌기만 했겠지만, 역시나 실천 앞에 장사 없다고, 반복되는 선전활동 속에서 이 의문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직속기구화를 반대합니다.”라는 얘기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은 인권활동가가 아닌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나 인권위 직원 분들이 해야 할 듯한 고루한 원칙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루이즈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항의서한을 전달했고, 한나라당은 참으로 철 지난 빨갱이 논쟁으로 이를 ‘씹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찾아낸 말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밑으로 들어가는 것에 반대합니다.”였다. ‘직속기구화’라는 어려우면서도 왠지 Cooool~한 느낌의 단어 대신, ‘밑으로’라는 선정적인 말로 종속성을 간결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통령 눈치를 보면서 제대로 된 인권활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로, 직속기구가 된 인권위는 정권의 압력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살짝 강조해보기도 했다.

다음의 시도는 “이명박 대통령 밑으로...”, 또는 “이명박 대통령 눈치를 보면서...”였다. 지금의 이 사건이 착하디착한 인권위가 착하디착한 대통령 밑으로 들어가는 그저 그런 사건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인수위원회의 조직개편안은, 이미 지금까지도 인권옹호활동에서 많은 한계를 보여주었던 인권위가 머리에 개발이익 챙기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든 게 없는 짱돌 대통령 밑으로 들어가는 인권재앙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인권활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정부의 인권침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로 폭력공안세력의 득세, 노동자 탄압, 인민의 자유권 박탈, 주거환경의료교육 등의 사회권 붕괴 등 너무나 뻔한 결과를 암시해보려고 했다.

하하하하 하지만, 나의 이런 나름 복잡한 속내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내가 외쳤던 것은,
“저희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명박 대통령 밑으로 들어가는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인권활동가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이명박 대통령 눈치를 보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대로 된 인권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 합니다.”라는 뻔해보이는 착한 말들뿐이니까.

이 얘기를 듣고서, 개발 중심의 정책이 가져올 인권침해와 환경파괴를 걱정하고, 국가정보원과 경찰, 검찰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때려잡을 것을 무서워하고, 사람들은 배울 수 없고 살 곳 없고 치료받을 수 없어 나자빠지는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오~ 천잰데~”

이렇게 보면 내 외침을 내가 이리저리 땜질하면서 결국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인권위가 독립적이어야 하네 마네’하는 얘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나는 이명박과 그의 추종자들이 만들어낼 인권재앙, 환경재앙을 반대하는 거고, 그래서 사실 내가 외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명박은 이딴 식으로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작살낼 것입니다! 함께 막아냅시다!”

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대놓고 외치지도 못했다. 게다가 농성장 밖에서는 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노숙농성을 거점으로 투쟁을 한다고는 하지만, 직장인이라는 핑계로 저녁에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고 밤에 농성장에서 자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큰일이다. 이번 노숙농성이 의미를 가지려면, 모두가 힘을 모아 이 싸움을 알리고 확산시켜나가야 한다. 농성이 끝나더라도, 경제만 살리면 모든 사람이 잘 살 것이라는 저들의 거짓말을 계속 드러내야 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개발과 성장은 단지 우리의 삶을 파괴할 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리고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요즘 인수위 앞에서는 인수위 정책에 항의하는 기자회견들이 하도 많아서 ‘기자회견 하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명박과 인수위의 정책들이 남한 인민들에게 실로 쓰나미 같은 재앙을 가져올 거라는 사실을 모두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노동자도 이주노동자도 비정규직노동자도 여성도 성소수자도 노점상도 노숙인도 장애인도 모두모두 인수위 앞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인수위 앞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인수위에 항의하기 위해 모여들면서도 하나 된 힘으로 인수위를 뒤집어엎지는 못하고 있다. 인수위가 워낙 쉐레기같은 소리들을 많이 내놓으니, 인권 쪽은 인권에 대해, 교육 쪽은 교육에 대해, 장애 쪽은 장애에 대해 각자 할 말을 하는 것만 해도 벅차기 때문일 게다.

바로 여기에 인권활동가들의 노숙농성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 농성이 좀 불쌍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고 대체 왜 하나 싶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분명한 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인다’는 거다. 모인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이주노동자의 인권 얘기, 성소수자의 인권 얘기, 장애인의 인권 얘기......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으로, 행동으로 함께 하지 못했던 얘기들이 진솔하게 나누어지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권위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워가는 것이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진다.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고 인사를 나누고 이후 투쟁을 기약한다. 만약 어느 단체 사무실에서 매일같이 긴급대책회의를 한다고 하면, 이런 연대의 발견이 가능했을까?

곧 인권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인민의 삶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이게 될 것이다. 지금 인수위 앞에서 각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결국 하나로 뭉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이명박, 너 각오하삼~!!!

게다가 우리에게는 우리의 농성을 지지하는 든든한 국제연대세력도 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많은 국제세력들이 비밀요원들을 통해 연대의 뜻을 밝혀오고 있다. 그 증거는, 농성장 모금함에 들어있는 300엔과 20페소이다.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