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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질 때...

7월 1일 이후 의료급여제도 변경으로 발생한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건강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다보니 저는 수급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수급자들은 저에게 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정들을 얘기하기도 하고 아픈 몸 상태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지요. 특히 병원에서 자주 벌어지는 차별이나 돈이 없어 병원 치료를 포기해야 했던 경험을 들을 때면, 저는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잘못된 절차를 바로 고치고 제대로 된 법을 만들고 차별을 행하는 기관을 벌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리고 곧 저에게 ‘그런 힘이 없음’에 무력함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잠시뿐이지요.
‘힘이 있는 사람이 되어 제도와 관행을 고치거나 당장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도와 체제, 체질을 바꾸는 게 한 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하겠는가. 한 사람의 힘에 의존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 영웅중심의 역사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는 식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지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여러 사람의 힘이 모여야 제대로 힘 발휘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여러 사람의 힘이 모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낙관적 태도가 있어야 권리를 침해받은 사람들을 집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수급자들은 제가 자신들의 억울했던 사정을 들어주는 것, 자신의 고통스런 삶에 대해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와의 만남을 좋아하고 ‘힘’이 된다고 하십니다. 당장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들의 실천이 힘이 되고 그 힘으로 당사자들이 ‘자기 힘’을 느끼고 발휘한다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저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당당한 권리 주체로서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할 때 권리 운동, 인권 운동은 풍부해질 거라고 봅니다.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표현처럼 당사자 운동은 주체적 운동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권 운동이 권리 침해 당사자들의 요구를 걸고 함께 행동하는 대중적인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될 거라고 봅니다. 인권이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기주장을 하도록 자력화하는 잠재력이 있다면 이를 극대화하고 대중화하는 것이 바로 당사자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 운동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 당사자들이 하지 않으면 그 운동은 의미가 없거나 축소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안 되겠지요. 얼마 전 저는 빼앗긴 노동권을 찾기 위해 노동부에 진정을 낸 적이 있습니다. 노동권을 침해받은 당사자였지요. 2년간 열심히 일했는데 퇴직금을 주지 않아 노동부와 사용자 측에 권리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의 심정은 이랬습니다. 부당한 처사에 너무 화가 나고 빨리 이 문제(퇴직금 받기)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그러다보니 감정적으로 되고 제 권리 주장이 가지는 의미와 방법에 대해 큰 틀로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당사자 운동도 저와 같은 점이 있을 것입니다. 코앞의 이익에 대해 쉽게 흔들릴 수 있고 권리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당사자 운동이 바른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누구나 권리를 침해받은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권 운동의 내용을 채워가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당사자운동에 대한 강조란 사실 인권 운동은 해당 권리의 주체를 세워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