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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뻔뻔하다! 염치없다! 후보사퇴하시라!

좀처럼 뜨지 않는 선거 국면이다. 사찰 건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인지 모르겠다. 빨간색으로 산뜻하게 변신을 시도한 새누리당의 모습에서 좀처럼 과거 한나라당을 찾기는 힘들다. 선거에 최고의 전문가를 모셔놓은 탓인지 전체적인 선거대응은 다른 정당과 분명히 차별화된다. 그럼에도 이 선거판은 예나 지금이나 공약은 난무하고 후보들은 난립한다. 그 와중에서도 경찰의 국회 진출이 유독 나의 시선을 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악안(복면착용금지법, 야간집회금지법), 경찰의 권한 강화를 노렸던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악안(국민 동의 없이 신원확인과 불심검문을 경찰이 자유롭게 한 법안) 등이 모두 국회에서 물먹은 탓일까? 혹은 수사권 조정문제로 검찰과 한판승부에서 밀린 탓인가? 과거 경찰 고위직으로 재직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들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상태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경찰고위직 출신들이 선거에 나가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다시 그들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다. 그들이 경찰청장으로 재임할 당시 농민집회에서 농민들이 경찰에게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생존권을 위해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이 주검이 되어서 돌아왔다. 또한 그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사망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활동했던 기억도 새롭다. 진실을 밝히라고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를 점거하기도 했던 동료의 얼굴이 떠오른다. 장례를 치르지 못해 순천향병원 영안실을 지켰던 동료는 6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현재 선거권, 피선거권 모두 박탈된 상태이다. 인권운동가의 운명이라면, 운명일까? 대규모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조사활동은 필수다. 경찰이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농민과 철거민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정작 본인들은 발 빼려는 상황에서 인권활동가들은 눈이 빠지도록 증거를 찾기 위해 녹화된 화면을 보고 증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달린다. 겨우 밝혀진 진실 앞에서 달라진 것은 그닥 없다. 그냥 경찰청장이 옷만 벗으면 모든 것은 덮어진다.

그렇게 경찰 옷을 벗은 사람들이 국회로 나가는 것을 그냥 두고 봐야 할까. 그들이 가야할 곳은 국회가 아니라 감옥이다. 그들이 경찰청장이라는 경찰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국민의 생명권을 빼앗았고 단지 그 자리를 물러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들 경찰청장은 경찰의 옷을 벗은 후에도 외교관과 철도공사 사장으로 부활했다. 심지어 지금은 국회의원 뱃지를 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들은 모두 사퇴회견문에서 ‘시위와 농성 참가자의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경찰의 진압을 불법 폭력행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법 집행’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형사적 도덕적 책임을 져도 부족한 판에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다니,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인권침해에 관해 처벌되지 않는 관행을 ‘불처벌’이라고 한다. 국가나 권력이 자행한 인권침해에 대해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인권침해는 반복될 것이다. 국제인권규범은 불처벌과의 투쟁을 통해 불처벌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모든 인권 침해에 관해 국가는 반드시 조사를 하여 진실을 밝히고, 인권 침해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게 하며, 가해자들에게는 책임을 묻고 그러한 인권 침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를 국가에게 부여하고 있다.

경찰이 자행한 인권침해에 대해 우리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결국 비슷한 인물이 경찰수장이 되거나 경찰에서 물러난 후에는 여기저기 공직을 전전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국가는 불처벌과의 투쟁을 통해 인권침해 가해자를 형사처벌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구제를 해야 한다. 또한 인권침해 가해자들이 다시는 공직에 진출 할 수 없도록 피선거권을 제한해야 한다.

전직 경찰청장들이 국민의 대표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국회의원 하겠다고 난리치는 그들을 허용하고 있는 이 사회 분위기와 그들의 뻔뻔함에 있다. 당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주변 사퇴 압력 때문에 공직을 그만 두었다면 적어도 지금은 자연인으로 살면서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뻔뻔하다! 염치없다! 후보사퇴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