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상임활동가의 편지 하나] 인권운동사랑방 10돌, 그 못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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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인권운동가의 고민과 희망</b><br>
인권운동사랑방이 많은 분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 10돌 잔치를 치렀습니다. 사랑방 10돌 행사는 3월 4일 낮 3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활동가 10명이 풀어놓는 '인권운동과 나'로부터 시작됐습니다. <br>
혜화역에서 리프트 추락사고를 당한 후 장애인 이동권 운동과 자립생활운동을 하게 된 이야기, 운동 사회 내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노동자들 안에서도 2등 노동자 취급을 당하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을 해나가는 다짐들, 동성애자라고 집회 동참도 거부당했던 아픈 경험을 딛고 운동에 나선 과정, 노동현장 운동에 대해 빚을 갚는 마음으로 하게 된 노동감시 및 지문날인 반대운동, 인권운동의 씨앗을 심어나가는 지역운동, 왜 여성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편견 섞인 질문을 수시로 받곤 하는 평화운동가의 이야기, 학원 폭력으로 인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시작된 인권운동 등.<br>
인간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저항 속에 폭넓게 '인권'이 자리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습니다. 단 3시간만에 듣기는 사실 아까운 10명의 운동과 삶의 이야기는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그려놓았습니다. 들으러 오셨던 한 분은 사랑방 홈페이지 게시판에 "돌아오는 길에서 내내 인권활동가들의 얘기에 대한 토론을 벌였답니다. 모두 다 하나같이 너무 느낌이 좋았다는 것이지요."라고 소감을 남겨주시기도 했습니다.<p>

<b>50인분과 100인분 사이</b><br>
10돌맞이 행사 준비를 하면서 고심했던 것 중 하나는 몇 명 쯤이 저녁식사를 하게 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실제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에겐 남아서 버리지 않게 또 모자라지 않게 음식을 준비한다는 게 여간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녁식사가 끝난 시간 즈음 본 행사에 맞춰 올 것이다' '그 분들에게는 본 행사 후 다과를 좀 풍성하게 준비해 대접하면 된다' 이런 생각 속에 저녁식사는 50인분과 100인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막판에 70인분으로 낙찰이 됐습니다.<br>
그런데 웬걸 '인권운동과 나' 행사부터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저녁식사를 해야 할 사람들의 숫자가 100명을 훨씬 웃도는 게 아닙니까. 사람이 많이 와도 걱정이라니…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들과 자원활동가들에게는 한끼 '금식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게까지 먹는 사람 입을 줄여볼 거라고 애를 썼건만, 식당에 내려가 보니 밥도, 반찬도 바닥이 드러나고 심지어 수저까지 모자라 늦게 식당에 도착한 사람들 몇몇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남은 반찬과 수저 내오고, 서둘러 찬밥을 데우는 등 법석 끝에 아주 민망한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음식이 모자라도 모자란 대로 이해해주는 사람들의 너그러움 덕분이었습니다.<p>

<b>출판기념회와 10돌 행사가 합쳐진 사연</b><br>
이날 행사는 서준식 자문위원(전 대표)의 산문집 '서준식의 생각' 출판기념회를 겸한 것이었습니다. 서 자문위원의 오랜 벗들인 채만수, 차병직 두 분이 서평을 했습니다. 채만수 선생님은 "공부도 안한 준식이가 뭐 이런 걸 썼는지 모르겠다"는 농담으로 시작해 "당당한 글쟁이로서의 네 각혈이 이 땅을 붉은 양심으로 물들일지니"라며 동지로서의 뜨거운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차병직 변호사 역시 과거 서 자문위원의 구속으로 자신이 인권하루소식의 시평을 대신 메꿔야 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이 책은 인권운동 그 자체이며 인권의 역사와 전망을 담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br>
사실 처음부터 출판기념회와 10돌 행사가 한 날에 기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방 안에서는 출판기념회와 10돌 행사가 각각의 취지를 잘 살리려면, 한 날 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서 자문위원은 '굳이 출판기념회를 따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10돌 행사의 부대행사처럼 간소하게 하지 않을 거라면 출판기념회를 그냥 안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사랑방과 관련된 행사를 비슷한 시기에 두 차례 하면 인사 차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걸음 하게 해서 민폐'라는 말이 나오자, 활동가들이 '그래? 민폐 끼치면 안 되지. 한 날에 몰아서 하자.'라고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br>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중엔 앉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와서 한 날 두 행사를 한 것이 잘 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다른 한편, 서 자문위원은 자신은 사랑방 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출판기념회를 사전 행사로 하는 바람에 여전히 사랑방 대표인 듯한 모양새를 깨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보였습니다.<p>

<b>사랑방 활동가들의 다짐, '다시 힘찬 발걸음'</b><br>
사랑방 창립 10돌 기념식은 '푸른영상'에서 만들어 준 '어리석은 자들의 10년'으로 막을 열었습니다. 15분 짜리 짧은 영상물이지만 지난 10년 간 사랑방 활동가들이 걸어온 길이 압축돼 있었습니다. 주연배우는 '서준식', '류은숙'이었습니다.(가장 많이 등장함) 최우수 연기상이 있다면, 수상자는 단연 '유해정'이었습니다. 유해정 씨는 2001년 초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국가보안법 폐지 겨울 노상단식 농성 때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다 현재 국가인권위가 기대처럼 잘 활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만 것입니다.(물론 연기가 아님) 사실, 그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류미례 감독(푸른영상)이 당시 촬영을 하면서 더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br>
사랑방 10돌 기념식엔 오랫동안 사회운동에 헌신해 온 어른들이 많이 와 주셨습니다. 그러나 당일 아침 김규항(야간비행 대표) 씨가 보내온 이메일도 있고 해서, 어른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거나 무대로 많이 모시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김규항 씨가 쓴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사랑방은 그럴 때(행사의 내빈소개) 일어날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곳이잖아요. 내빈의 개념을 뒤집어 바꾼다면 얘기가 다를 수 있겠지요."라며, 내빈 소개 같은 거 빼거나 최소화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온 것입니다.<br>
격려사를 부탁받은 리영희 선생님은 "격려사란 더 많이 운동한 사람이 하는 것인데 나는 격려사를 할 자격이 없다. 부끄럽다."며 오히려 젊은 활동가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이금연 선생님은 이주노동자 인권운동 과정에서 만난 사랑방 활동가들에 대한 좋은 기억을 이야기해 주셨고, 낮부터 캠코더로 행사 찍기에 열심이셨던 문정현 신부님은 "사랑방 식구들을 보면 요지부동 원칙을 고수하는 '근본주의자'"같다며 앞으로도 꿋꿋한 지킴이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br>이밖에도 많은 분들이 굳이 무대에 서지 않았다 뿐, 오가는 자리에서 따뜻한 격려의 말들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전에 밴드 '가객'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가수 박창근 씨는 좋은 노래로 사랑방 10돌을 축하해주셨습니다. 사랑방 활동가들은 "와, 너무 노래 잘한다"는 말을 연발하며 다음에 또 노래를 들을 기회가 없을까 궁리했습니다.<br>
10돌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사랑방 활동가들의 다짐의 글 낭독과 노래 합창이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그 어떤 것에도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반대하며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억압하지 않는 진정한 진보의 세상을 인권의 이름으로 건설하는 길에 다시 우리를 헌신하렵니다. 그 길에 인권운동사랑방이 밑거름이 된다면, 그리고 그 운동에 우리 인권운동사랑방 성원들이 쓰여진다면 아무런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갈 것입니다."라고 사랑방 활동가들은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사랑방 활동가들끼리는 "어쩌냐. 이제 우리 다짐까지 했으니∼. 진짜 한눈도 못 팔겠네."라며 10년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야 할 '진보적 인권운동'에 대한 부담감을 농담 섞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br>
멋지게 나가다가 합창 '다시 힘찬 발걸음'은 그야말로 실수 연발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후진 기타로 노래 연습을 하다가, 가수 박창근 씨의 멋진 기타 반주에 맞추자니 사랑방 사람들이 감을 못 잡는 겁니다. 심지어 언제 노래를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한참 동안 기타 반주만 나오는 우스운 상황도 연출됐습니다. 무슨 집회장도 아니고, 하나∼둘∼셋∼넷에 맞춰서 겨우 노래를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다른 단체 활동가들은 "노래까지 잘 하면 너무 완벽해서 안 돼 잖아."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줬습니다. 사랑방 활동가들 사이에선 "이제 우린 노래 같은 거 할 생각은 말아야 돼."와 "다음에도 또 해야 돼. 좀 못해도 같이 노래 하니까 좋잖아."라는 주장이 행사 끝난 며칠 후까지 맞섰습니다. <br>
사랑방 창립 10돌 행사를 하고 나니, 정말이지 인권운동사랑방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더욱 커집니다. 한눈 팔지 않고, 제도화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야 할 '진보적 인권운동'의 길에 대한 부담감 말입니다. 게다가 사랑방엔 대표도, 간부도 없으니, 사랑방 상임활동가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책임져야 할 길입니다. 노래 부르듯 서툴기도 하겠지만, 서로 믿는 사람들이 함께 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p>

# 행사를 마치고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사랑방 창립 10돌이란 것이 뜻하지 않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 또 하나는 사랑방 평소의 지출 규모에 비해 돈이 많이 지출돼 당분간 적자 구조를 감수해야겠거니 했었는데 행사장에서 후원금이 지출한 것보다 더 들어온 것. 사랑방 아껴주는 사람들 모이는 조촐한 잔치를 생각했던 것인데, 너무 동네방네 소문내고 '10년 됐다' 과시한 꼴이 된 것 아닌가 적잖이 마음에 걸립니다. 누군가는 사랑방 특유의 결벽증이 도진 거라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런 걸까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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