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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흔드는 국정원을 111에 신고할 판

화교남매 간첩사건으로 불린,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탈북자 지원 업무를 하며 관련 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유00씨에 대해 지난 8월 22일 서울지방법원 제21형사부(재판장 이범균)는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2월 구속 기소된 유00씨, 그가 간첩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바로 여동생의 진술이었다. 오빠와 함께 살기 위해 2012년 10월 한국에 입국했던 여동생은 모든 탈북자가 입국 후 밟는 수순처럼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수용됐다. 탈북경위 조사는 명분일 뿐 조사과정에서 여동생은 오빠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을 강요받았다. 6개월 가까이 사실상 감금상태로 조사를 진행하면서 강제 출국당할 수 있다는 위협과 감형해주겠다는 회유 속에 여동생의 허위자백을 받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공소사실을 작성했다. 여동생의 진술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보면서 유00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여동생이 허위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유00씨의 무죄 판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정원의 무리한 기소,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성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높다. 물론 지탄해야 마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00씨에 대한 기소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공무원으로까지 간첩이 침투했는데 대북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던 반응, 이는 공안기구를 존립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재심청구로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도 간첩으로 이미 찍혀버린 낙인 속에서 평생을 움추려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8월 28일 오전 형법상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 10명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촛불집회부터 국정조사까지 국정원의 대선개입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더니 적반하장 자신들의 존립 근거를 내세울 희생양 찾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국정원에서 운영하는 111콜센터 홈페이지에는 간첩․좌익사범 의심유형이 개시되어 있다.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들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까지 하는 만화도 함께 있는데, 이를 보다보면 결국 공안기구가 이렇게 선전․선동하고 ‘사건화’하면서 노리는 것은 다른 질서를 꿈꿀 수 없다는 확인 사살이 아닐까 싶다.

지난 정부 때 어느 누리꾼이 패러디로 만들었다며 인터넷에 떠돌았던 <간첩 식별요령>을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마냥 풍자로 웃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이제껏 그러했듯 앞으로도 공안몰이의 바람을 일으키며 ‘적’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우리 스스로를 밀어 넣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지키는 슈퍼맨으로 스스로를 지칭하는 국정원, 기막히고 코 막히는 이런 상황이 바뀌려면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존립 근거를 만들어왔던 죄를 국정원 스스로 자백하는 일이 우선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