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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유신헌법 53조에 침묵하는 헌법재판소, 그 존재 이유를 묻다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선고를 받은 ‘유신시대 긴급조치’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뒷북치듯 위헌결정을 발표했다. 긴급조치 1호로 징역을 산 오종상 씨가 낸 유신헌법 53조, 긴급조치 1호, 2호, 9호에 대한 헌법소원사건(2010헌바70.131.170병합)에서 헌법재판소(소장권한 대행 송두환 재판관)는 3월 21일 전원일치로 긴급조치는 현행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유신헌법의 핵심’인 53조에 대해서는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헌법소원을 제기한지 3년, 긴급조치 1호가 만들어진지 39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세상으로 나왔다. 그것도 매우 앙상한 모습으로, 피해자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 ‘입법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이 인정되지 않고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했다’는 헌법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수식어만 나열될 뿐이다. 국가 차원에서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온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표현하고, 헌법파괴적인 행위에 대해서 국민에게 반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긴급권을 규정한 유신헌법 53조에 대해서 판단을 회피했다. 헌법재판소는 유신헌법 53조에 대해서 ‘긴급조치를 발령할 수 있는 근거규정일 뿐이고 사건 재판에 직접 적용되는 규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판 대상에서 제외했다. 유신헌법 53조는 인권과 민주주의, 국민주권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인식을 헌법재판소는 따라가지도 못했다.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임무를 방기하는 꼴이다. 그나마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투한 피해자들의 노력과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헌법재판소는 1987년 직선제 민주화 개헌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태생부터 양면성을 갖고 있는 ‘정치적인 권력기구’이다. 아래로부터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권력에 대한 민중적 통제가 가능한 때 헌법재판소는 정의와 인권을 보장하는 국가기구로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비추어 판단한다’는 미명하에 중립성, 객관성, 제3자성 이라는 외관을 취하면서 국가의 계급적 법질서를 정당화하고 현존 질서를 유지하며 가진 자들의 특권을 옹호하는 데 기여한다. 즉 민중적 통제 여부와 계급적 정치질서에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언제든 체제수호 기관으로 변신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2008년 야간시위의 위헌성을 판단하는 일에 헌법재판소는 묵묵부답으로 5년째 버티고 있다. 위헌결정이 나올 사안임에도 헌법재판소는 정부와 기업에게 위해를 줄까 전전긍긍하면서 집시법 10조 위헌결정을 보물단지처럼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헌법재판소가 인권과 헌법의 가치에 어긋나는 결정을 수도 없이 했다. 최저생계비 헌법소원 기각 결정, 국가보안법 합헌 결정,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 합헌 결정, 사형 합헌 결정, 군형법 92조(계간조항) 합헌 결정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자칫 긴급조치 위헌결정으로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체제수호에 앞장선 이력까지 가려질까 우려스럽다.

최근 이동흡, 박한철 씨가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내정되면서 ‘자격 부적격’ 여론이 확대되었다. 이동흡 후보자는 스스로 사퇴했고 최근 지명된 박한철 후보자는 공안사건을 진두지휘한 검사로 활동한 이력이 문제되고 있다. 이들이 헌법재판소 소장으로서 인권보장에 앞장서리라는 기대를 어떤 국민이 하겠는가. 지배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헌법재판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헌법정신은 육법전서에 있지 않다. 인권의 가치를 법의 논리로 환원시켜 헌법을 앙상하게 만들고, 체제옹호적인 입장을 대변해온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성격을 정확히 인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