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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20년 전 90년대 중반 인권운동을 처음 시작하던 무렵, 조작간첩 사례를 찾아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하는 일을 했다. 재심을 청구하기 위한 준비였는데 10년, 20년 넘는 수감생활이 끝나고 몸도 마음도 지친 분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때 내 마음이 참 무거웠다. 당시 간첩으로 조작되기 위해서 몇 가지 공통된 경험이 있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영문도 모른 채 납치당하듯 연행되고,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수사공간에서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문을 겪으면서 간첩 행위를 했다고 자백해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사의 공소 사실을 기계적으로 인정해 결국 판결문은 공소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해야 했던 경험들이다. 이런 패턴은 엇비슷하게 모든 조작간첩사건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2013년 ‘종북담론의 실체를 말한다’ 토론회가 있던 바로 그 다음날인 8월 27일, 국정원은 이른바 ‘내란음모’라는 칼을 휘두르며 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을 포함해 5명을 연행했다.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났고 곧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12월부터 국정원에 의한 ‘내란음모’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인터뷰 보고회는 2월 12일 오후 1시~3시까지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있어요.~) 워낙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마녀재판식 여론몰이에 편승하는 꼴을 보면서 뭐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또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공안세력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간접적이나마 살피고 싶었다.

이른바 국정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70~80년대 조작간첩 사건을 많이 떠올렸다. 겹쳐지는 부분도 있고 변형된 부분들도 있는듯하다. 신체에 가하는 물리적인 고문은 사라졌을망정 공안기구 조사관들이 행하는 고도의 수사기법, 일상적이고 체계적인 감시는 신체적인 고문 못지않게 심신을 고통스럽게 했다. 고작 몇 줄 글을 읽어준 후 이 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수사관들의 태도를 보면서 공안기구들은 이들을 ‘확신범’으로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공안기구에 끌려가면 60일에서 90일 동안 세상과 단절된 조건에서 수사관들을 대면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국정원이 이 사건을 터뜨린 후, 지금껏 구속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 압수수색을 경험한 사람들, 5월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된 조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구속자 가족의 말이 계속 귀가에 맴돌았다.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 민주화를 성취했고, 그에 따라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다. 보다 은밀하고 교모하며 선동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국가’라고 말하고 있는 국정원이나 경찰, 군대를 이루고 있는 물리적인 조건들은 변한 것이 없다. 아직도 ‘사상범’을 처벌하려고 혈안이 되고 있는 한국사회, 노골적인 국가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