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2017프로젝트 <그날들>, 나의 몫

‘내년 그날들은 없다!’고 2016 <그날들>을 만들면서 다짐했지만 어쩌다보니 2017 <그날들>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다. 2013년 말, 첫 번째 <그날들>을 받아보고 세상에 이렇게 멋진 책자가 나오다니 감격했다. 그 이후 매년 <그날들>을 만들 때마다 참여하다보니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촉박한 마감에 맞춰 전화를 30번, 40번씩 돌려서 글을 받고, 오타도 찾고 사진도 찾고, 빼먹거나 놓치면 다시 전화하고 독촉하면서 힘겹게 완성시켜왔다. 그렇게 3년을 참여하다보니 왠지 이제 나는 충분히 참여해왔다고 생각했다. 연말마다 하는 달력식 사업이 되어가는 느낌도 약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올해 또 다시 만들자는 제안에 ‘1’도 함께 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그랬다. 3년을 했어도 사실 앞선 작업부터 코디네이터 역할을 자임한 활동가들이 있었고 나는 전적으로 의존했다. 1년을 소책자에 담는다는 것이 막연하게 좋았고 그래서 실무적인 일들은 열심히 했지만, 이 프로젝트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올해 그날들은 신입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고 신입활동가 중심의 프로젝트 작업에서 유일한 유경험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일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올해 신입활동가 교육에서 만나게 된 이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해서였을까? 아니면 프로젝트 <그날들>에 책임감을 느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결국 다시 그날들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또 다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 즈음 <그날들> 발표를 향해 프로젝트는 달려갔다.

 

네 번째면 능숙해질 법도 하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나는 프로젝트 <그날들>의 의미를 전달하기에도, 필요한 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에도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를 요청해서 받았던 내용을 누락시킨 것이다. 2013년 용산참사의 진압책임자인 김석기(현 국회의원)가 공항공사에 낙하산 사장으로 임명된 것에 대해 규탄하는 집회를 유가족과 활동가들이 열었다. 하지만 경찰은 유가족과 활동가들을 연행했고 검찰은 집시법과 업무 방해로 처벌하려 했다. 2017년 1월 12일, 4년 만에 대법원은 유가족과 활동가들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하지만 소책자에는 이 내용을 담지 못한 것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이야기하던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가와 통화가 생각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책자는 이미 나와서 기자회견까지 마쳤다. 배포는 할 만큼 했고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오만가지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가 공동의 작업에서 너무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나하는 자책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신입활동가끼리만 진행했을까 하는 후회, 선배 활동가들에 대한 원망도 섞이면서 한참 마음이 부대꼈다.

 

결국 이 부대낌을 가지고 앞선 그날들을 함께 만들었던 활동가와 이야기 나누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 프로젝트의 책임을 어떻게 나누어 짊어져야 할지, 앞으로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등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은 분명해지기도 했다. 결국 내가 부담스러워서 발을 뺐다가 넣었다가 하면서 프로젝트를 이어가도, 2017 프로젝트 <그날들>을 만든 기획단에는 내 이름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결국 그 책임의 몫에서 내가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 사실은 내가 하게 될 앞으로의 모든 활동에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이유에도 상관없는 나의 몫에 대한 자명한 사실이 확인되자 오히려 마음은 가라앉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자책이나 후회, 원망보다도 <그날들>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이런저런 사건, 소식들을 소책자 형태로 담아낸다가 아니라 ‘인권운동’의 목차를 만드는 일이 프로젝트 <그날들>의 의미라면 의미가 아닐까. X-레이 사진이 겉에서는 볼 수 없는 단면을 보여주듯 프로젝트 <그날들>은 그 해의 단면을 인권운동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작업을 5년째 이어온 것이다. 그런데 듣기로는 X-레이도 어떤 단면을 절묘하게 잘 찍느냐에 따라서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달려있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 <그날들>을 함께 만들었던 우리는 서툴렀고 부족함이 많았다. 책자는 우리의 서툼이 드러난 결과였다. 그렇지만 함께 기억해야 할 ‘그날’을 열심히 모으고 또 담으려고 애썼다는 사실도 변하지는 않는다.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뼈아픈 실수는 반성적으로 평가하며 자책이나 원망에 빠져들기 보다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또 다른 나의 몫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가분들과 프로젝트 <그날들>을 읽어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과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