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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나중에’는 언제까지인 건가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다시 활동을 시작합니다.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대표가 2월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의 비공식 면담에서 “동성애나 동성혼을 위해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 우리 당 입장이 확실하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2월 16일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은 다시 한 번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함을 밝혔습니다.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라는 기습질문에 자리에 참석한 문재인 지지자들이 ‘나중에’를 연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나중에… 너무나 익숙하고 몇 번을 들어도 분하고 분한 말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은 이야기할 기회를 나중에 주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오랜 기간 동안 ‘나중에’와 싸워왔던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겐 지겹도록 반복해서 본 장면의 겹침이었습니다.

2011년․2013년․2014년

‘나중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2011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때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몇 년 동안 준비해 10만 명의 서명을 통해 주민 발의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보수기독교세력에 의해 여러 조항이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보수기독교세력의 압박에 서울시 의회에서는 차별금지 사유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후에 실행하면서 개정도 가능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차별금지사유가 있기 때문에 방지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별금지사유를 명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어떤 소수자들이 살고 있고 그들이 차별에 손쉽게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법적 적용에서도 명시됨과 그렇지 않음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나중에’였습니다. 누군가의 인권이 정치의 영역에서 ‘나중’으로 이야기 되는 상황, 그곳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경험은 여전히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습니다.

2011년만이 아니었습니다. 2013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민주당 김한길․최원식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펼치던 운동사회와는 전혀 무관한 법안 발의였습니다. 당시 민주당 의원 127명의 절반 가량이 공동 발의한 법안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보수기독교의 집중공격을 받자 민주당은 법안을 자진 철회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이 고립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능하지 않냐는 입장도 보였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다 “아, 우리의 인권은 나중으로 밀리는 문제구나”라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서울인권헌장에서 이는 또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서울시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했던 인권헌장은 보수기독교를 만나 차별금지사유가 훼손되었고, 많은 활동가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자는 걸로 끝났습니다.

합의에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열린 ‘촛불’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국정농단 사태, 보이지 않은 지배세력이 마음대로 사람들의 삶을 결정했던 상황은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그리고 이후 문재인의 ‘나중에’ 발언에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체념하기도 하고 또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회복하려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들었습니다. 나 혹은 우리의 문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된 것에 대한 분노가 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문제에서는 사회적 합의로 이야기 되거나 미루어질까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공개성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럴까? 그렇다면 공개적으로 이야기된다면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도 사실 민주주의에 대해 자세히 고민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며 ‘공개적’ ‘다수결’ ‘합의’가 민주주의의 전체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경우, 다수결에서 숫자나 발언의 영향력 자체가 힘을 갖기 힘듭니다. ‘합의’라고 이야기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은 어디서일까요?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 인간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합의의 영역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민주주의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전제조차 합의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합의의 영역이 아닌 전제가 되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말고 ‘지금 당장’

인간 존엄성과 평등, 차별금지가 우리가 만드는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되기 위한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지난 2017년 2월 23일 전국 240개 단체가 함께 #차별금지법없이민주주의없다 #차별금지법제정을요구합니다 “차별금지법도 못 만드는 이게 나라냐!”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2015년 이후 잠시 휴지기를 지낸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재발족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사랑방 또한 재발족에 함께 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이어가려 합니다.

재발족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으로 입법운동을 전개하며 본격적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 합니다. 이러한 입법운동을 준비하며 사실 여러 고민이 있습니다. 단지 국회에서만 논의되는 차별금지법이 아닌 광장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지지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계획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고민들을 담아 다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방향을 세워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 우리가 놓인 지금의 상황을 살펴보며 진행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