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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소

밥은 먹었소- 인권운동사랑방 20년의 '밥' 이야기

이번 달 ‘밥은 먹었소’는 사랑방에서 활동가들이 함께 지내며 생긴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사랑방은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영화제와 함께 당번을 정해 매일 점심, 저녁을 함께 해서 먹고 있습니다. 사랑방에서 밥을 함께 먹기 시작한 이후 다양한 활동가들의 취향이나 재주만큼이나 많았던 밥 에피소드 함께 해요. 참고로 사랑방 주방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밥을 해먹기 시작한 그 시절은 언제부터?

인권운동사랑방이 종로구 낙원동에 있던 시절(1993년경), 서준식 선생님은 손수 만든 ‘카레라이스’로 인권활동가들을 환대했다. 인권활동가를 위한 공개강좌가 있던 시절, 공부하는 재미보다 먹는 재미로 사랑방을 들락거렸던 어떤 활동가가 있었다는데...

그러나 이때 본격적으로 밥을 해먹었다라고 하기에는, 좀 아니고. 인권운동사랑방이 용산구 갈월동(1995년)에 터를 잡으면서, 은숙 언니가 본격 나섰다. 변변한 부엌하나 없던 시절, 은숙 언니는 마술 같은 솜씨로 7~8인분 음식을 뚝딱 만들어냈다. 회의실 탁자를 식탁으로도 사용했다. (이때 은숙 언니 모습은 TV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 정태호 같았다.) 넉넉하지 않은 활동가들의 재정형편, 조미료 들어간 음식은 싫고 당시 주변에 괜찮은 식당이 없었던 조건 때문에 사랑방에서 밥을 해먹었던 것 같다.

 

△중림동 시절

부엌 변천사

그러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종로구 명륜동(1997년)으로 이사 왔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3층 하나만을 임대했는데 공간이 비좁아서 그 후 4층까지 임대했다. 당시 사무실을 방문했던 우리 엄마 말씀, “짐을 이고 사는구나.” 한 층을 더 임대하고 한참 후 (아마 2000년대 초반) 복도를 개조해 부엌다운 부엌을 만들었다. 이때 ‘부엌다운 부엌의 의미’는 휴대용 부탄가스가 아닌 LPG 가스를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고 (화력의 차이가 엄청나기에 음식 맛이 다르다), 화장실에 가지 않고 물을 쓰면서 음식 재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또한 명륜동 시절부터 밥 당번을 만들어 돌아가면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중구 중림동(2007년)으로 이사 왔을 때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부엌도 획기적이었다. 매번 LPG 가스를 시키지 않아도 됐으니까. 막 밥을 하려는데 가스가 떨어져서 한참을 기다렸던 상황이 이제는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좋았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마포구 와우산 자락으로 옮겨온 후 (2011) 지금 부엌은 과거에 비해 럭셔리하다. 그런데, 가끔은 부엌도 없이 화장실에 쪼그려 않아서 음식재료를 다듬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화장실에서 만든 음식은 먹을 수 없어!” vs “우린 맨날 먹는데....”

처음 명륜동으로 이사 와서 그 좁은 공간에 어찌어찌해서 부엌을 만들었다. 당시 식재료를 다듬는 일은 화장실에서 했다. 어느 날 손님이 와서 그날 당번이 점심을 만들어 접대했는데 손님은 “화장실에서 만든 음식은 먹을 수 없다”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난 속으로 읊조렸다. ‘우린 맨 날 먹는데... 맛있기만 한데.’

활동가를 광분케 한 비빔밥 릴레이

그날 점심, 저녁 식단이 무엇이 될 지는 오로지 당번 마음이라는... 그런데 명륜동 시절 한 활동가의 경우 비빔밥만 주구장창 준비해주는 대담함을 보였다죠? 결국 참다못한 한 활동가가 욱하면서 폭발한 후 그나마 그 활동가가 당번일 때 식단이 다채로워졌다네요. 다른 활동가는 본인 스스로 ‘산채 주간’처럼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당번일 때마다 주제에 맞춰 식단을 짰다고 하네요. 본인이 만족하고 나면 다시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 ㅎㅎ

퐁퐁 콩나물국

위에 언급한 활동가와 관련된 또 다른 에피소드. 이 활동가가 또 한 번 다른 활동가들을 욱하게 했다고 하네요 글쎄. ㅋㅋ 콩나물국을 했는데 콩나물을 제대로 안 씼었는지, 그릇을 제대로 안 씻었는지 콩나물국에서 퐁퐁 맛이 나는 참사가... 결국 그 날 그 활동가 다시 다른 활동가들의 공분을 샀다는. ㅠㅠ

감히 소고기국을...

당번이 식단을 정하니 재료비도 각각 다르겠죠? 그래도 기본적으로 공동 재정에서 나가는 돈이니 최대한 식대를 아끼려는 노력을 하는데요. 사랑방에서 밥을 같이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날! 한 활동가가 소고기를 사와서 국을 끓였답니다. 당연히 칭찬 받을 줄 알았는데, 다들 비싼 식대를 썼다고 혼났다는. 참고로 하루 식단 재료 구입비는 보통 1만 원선인데, 어떤 간 큰 활동가는 요새도 가끔 2만 원 대 후반으로 돈을 쓰고 있네요. ㅠㅠ

공정성 시비가 항상 제기되는 '와우산집 4대 천황'

와우산에 사랑방 사무실이 자리 잡은 지 1년여의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와우산집 4대 천황'이 정해져 있더라고. 한낱(들), 일숙(영화제), 미류, 은채(들). '와우산집 4대 천황'은 와우산로 식구들 중 요리를 잘 하는 사람 4명을 의미. 하지만 이건 한낱이 스스로 만들어서 퍼뜨리고 있는 것이라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ㅋ 다른 누가 반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석진은 자신이 빠진 '4대 천황'이 있을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ㅋㅋㅋ

'원조' 논란- 토마토계란볶음(석진, 정록), 감자조림(석진, 한낱)

사랑방에서 히트한 음식 중에 '원조' 논란에 휩싸인 음식이 간혹 있는데, 토마토계란볶음과 감자조림.(이 외에도 있던가...;;) 토마토계란볶음은 중국에서 먹는 가정식 요리로 석진이 중국까지 가서 중국 요리 장인에게 직접 전수받아 온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석진이 사랑방에서 최초로 선보인 것. 만들기도 간단하고 맛도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음. 그런데 정록 역시 사랑방에서 토마토계란볶음을 즐겨 하며 자신의 요리가 석진이 만든 것보다 더 맛있다며 원조 논란을 불러일으킴. 정록 역시 중국여행을 통해 중국에서 전수받아 온 것. 하지만 정록의 토마토계란볶음은 중국 남방 구석의 윈난식이고 석진의 토마토계란볶음은 정통 베이징 요리라는 사실!ㅋㅋㅋ

사랑방 식탁을 빛낸 '객원 쉐프들' 1

__ 정용욱, 이상렬(이라크 전범민중재판)의 화려한 궁중 요리

사진

△현재 와우산 부엌 모습

가끔 뛰어난 요리 솜씨로 사랑방의 식탁을 빛낸 '객원 쉐프'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쉐프는 정용욱, 이상렬 콤비. 당시 다른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들은 이라크 전범민중재판을 준비하며 사랑방 사무실에서 꽤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사랑방에서 밥도 같이 먹으면서 한 번 날 잡아서 식사 준비까지 직접 하게 된 것. 그때 그 콤비는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궁중 한식 요리 같은 화려한 요리까지 준비해서 사랑방 사람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줬던 기억이.(이름이 뭐지? 여러 가지 야채를 데친 쪽파로 싸서 묶은 요리였는데...)

사랑방 식탁을 빛낸 '객원 셰프들' 2

__ 권율(자원활동가)의 일본식 카레라이스(건포도밥에 사과가 들어있는 카레@@).

당시 사랑방에 거의 매일 같이 나와서 인권하루소식에서 기자 자원활동을 하던 권율 씨가 한 번은 직접 요리 솜씨를 선보이겠다며 식사를 하게 됨. 알고 보니 그는 일본 요리의 숨은 고수! 다년간 일본에서 살면서 직접 본토 일본 요리를 익혔던 것. 일본식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는데, 그전에 먹어보던 카레라이스와는 다르게 밥을 지을 때 건포도를 넣어서 달달한 밥을 만들고, 카레에는 사과 덩어리를 넣어서 상큼한 맛을 추가한 것. 지금이야 일본식 카레 식당도 많이 생겼지만, 당시만 해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획기적인 요리였음.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다는. 권율 씨에 대한 인기도 급상승.ㅋㅋ

사랑방 10주년 기념 자료집의 최은아 '카레 테러 사건'

10주년 자료집을 보면 사랑방 역사를 간담회처럼 함께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정리한 자리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사랑방 역사 논의 내내 최은아 활동가는 '처음 사랑방에 왔을 때 사랑방에서 먹은 카레가 맛있었다.'는 말을 시도 때도 맥락도 없이ㅋㅋㅋ 반복함.ㅋㅋㅋ '식탐 최은아 선생'의 캐릭터에 너무나도 딱 어울리는 금쪽같은 에피소드로 사랑방 활동가들 사이에서 사랑받고 있음. 궁금하면 사랑방 10주년 자료집을 확인해보시라~ㅋㅋ

파 한 단 때문에

류은숙 활동가가 사랑방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류은숙 활동가는 활동과 생활이 방만해지는 것에 대해 '경고'하곤 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부엌과 관련된 질서에 엄격했음.ㅋ 예를 들어, 이미 사놓은 식재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또 사오면 큰일이 남. 실제로 그렇게 해서 식재료를 다 사용하지 못해 상하거나 버리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기 때문.

한 번은 이미 파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파 한 단을 더 사온 것. 그 사실을 발견한 류은숙 활동가가 당시 주방과 사무실을 누비며 몇 시간 동안 범인 색출 작업을 벌임. 사무실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함. 결국 일주일 쯤 후에 류은숙 활동가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 몰래 자수했다는 소문이...ㅋㅋ 도저히 그 분위기에서 자수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해 달라며...ㅋㅋㅋ

밥상에서 꼬뮨을 봤다던...

<사진>까다로운 입맛들, 오늘은 어떤 반찬을 하나 고심해야 하고 하루 2끼 식사를 준비하다보면 하루가 슉 가버리고 마니 이놈의 밥당번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방 밥상에 함께 하면서 이런 게 꼬뮨이지 않나 생각했다던 어떤 분의 이야기에 감동 먹고 밥상을 준비하는 마음이 경건(?)해졌다. 밥상은 밥상 이상인 것 같다.

중림동 심야식당

△중림동 부엌 모습

일본 만화 심야식당에 나오는 마스터를 꿈꿨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작당모의로 열린 중림동 심야식당. 2010년이 지나가던 그 겨울밤 주점으로 변신한 사무실. 문어모양 소시지부터 명란젓 계란말이까지 무려 11종의 메뉴를 선보이며 대박의 꿈을 꾸었으나, 손익분기점이란 말도 몰랐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메꿔야 할 적자와 그득하게 쌓인 설거지였다고. 그래도 마스터의 꿈은 계속 되어 2011년 2탄 인도 편이었던 시바식당에 이어 올 겨울 3탄을 준비하고 있다는 풍문.

후라이팬 튀김 사건

먹는 입은 즐거우나 치우는 손은 괴로운 튀김 요리. 그래서 밥당번과 설거지당번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게 되는 튀김요리를 다들 기피하는 편인데, 이를 즐겨하는 사람이 있었다. 새로운 튀김요리를 창조하려는 듯 특이하게도 사과니 바나나니 과일을 튀겨대던 그.
그런 도전이 이어지던 어느 날 조야한 프라이팬이 제 스스로를 불살랐다. 튀김 요리를 하려다 프라이팬을 튀겨버린 그때 그득하게 찬 시꺼먼 연기를 빼느라 차가운 겨울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로 먹었던 까만 과일튀김들의 그 맛. 잊지 못할 맛이지만 딱히 침이 고이지는 않는다. (유성, 미안. 그때 맛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ㅠㅠ)

사라지는 사이다

우유, 커피는 사무실의 필수품이지만 탄산음료는 그렇지 않다. 사무실 사람들이 탄산음료와는 거리가 먼 편이라고 보았던 한 활동가는 해장을 탄산음료로 하는 습관이 있었다. 자신의 숙취해소를 위해 사이다 페트병을 냉장고에 사뒀는데, 그것이 자꾸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후 그이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 캔사이다를 따로 보관하게 되었다고.

수 없이 오가는 거래들...

한 달에 최소 한 번씩 밥과 설거지 당번이 각각 정해진다. 그런데 다들 일정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당번을 바꾸어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보통은 밥 당번은 밥 당번끼리 바꾸는데 어떤 활동가는 다른 사람의 밥 당번 날짜와 자신의 설거지 당번 날짜를 바꿔주는 은혜(?)를 베풀기도. 이유는 요리는 재밌지만 설거지는 정말 싫다는. ㅎㅎ 또는 당번 날짜를 바꾸지 않고 먹을 거나 다른 일거리와 거래를 하기도 한다는.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대부분은 결국 부엌에서 이루어진다는 ㅋㅋ

설거지를 하고 싶었어요

주택 밀집 지역에 있었던 중림동 사무실에서는 부엌이 베란다에 있었다. 그렇다보니 더 울려퍼지는 물소리. 이웃들의 타박을 받지 않으려고 설거지 당번은 6시 저녁식사를 마치면 곧장 설거지를 끝내야 했다. 못 다한 설거지는 아침에 일찍 와서 해야 했다는.

복날이 반가운 이유

채식하는 활동가들이 있고, 무엇보다 건강에 더 좋은 것이 이유겠지만 그래서인지 사무실에서 고기를 먹을 기회는 흔치 않다. 최근 영화제에 들어온 활동가는 자칭 육식 매니아(일명 ‘육식동맹’)라서 혼자서라도 제육볶음을 해먹겠다고 할 정도. 그러나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을 견뎌내기 위해 복날 밥당번들은 백숙을 해준다. 별도로 채식 식사 준비도 해야 하니 평소보다 더 바삐 손을 놀려야 하지만 땀 빼며 만들어진 백숙을 땀 빼며 먹다보면 무더위가 싫지만은 않구나 생각이 들었다.

전기밥솥의 중요성

식사시간 전후로 회의가 여러 개 겹쳐있을 경우에는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밥을 먹기도 했다. 그래서 큰 전기밥솥을 썼는데 한꺼번에 많은 밥을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 맛은 별로였다. 이곳 와우산집으로 이사 오면서 전기밥솥을 바꿨는데, 처음 밥을 지어먹었을 때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백미, 잡곡을 선택할 수 있는데다 보온상태가 지속되어도 밥이 덜 마를 수 있다니 정말 기술의 힘은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