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다시 남미 여행을 꿈꿉니다

6월 중순부터 4주 동안 브라질과 페루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랜 시간 사랑방 활동을 함께 했던 괭이눈과의 인연 덕이었어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2년 동안 일을 하게 된 괭이눈에게 그곳에 있는 사이 꼭 놀러가겠다고 이야기했었거든요. 일찍 비행기 티켓만 끊어놓고, 손을 놓고 있다가 여행을 코앞에 두고 부랴 준비를 하려고 보니 무척 막막해지더라고요. 날짜변경선과 적도를 넘는 어딘가로, 4주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었거든요. 거기에다 페루에서는 안데스 산맥의 아주 일부를 따라 걷는 3박 4일 트랙킹을 할 계획이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겨울이지만 한국의 겨울과는 다르다, 하루에 4계절이 있다고 생각하고 챙겨와라', 더 막연해지게 했던 괭이눈의 조언을 떠올리며 40리터 배낭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짐을 쌀 것인가 꽤나 고심했습니다. 새벽까지 씨름한 덕분에 거의 하루가 꼬박 걸리는 긴 비행시간 동안 푹 자면서 잘 버텼는지도 모르겠어요.

 

꼭 놀러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에 의의를 두었기에 별다른 계획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동행했던 개굴, 호연과 브라질에서는 이과수 폭포, 페루에서는 맞추픽추는 꼭 다녀오자고 그렇게 1순위만 정해놓고 열어둔 일정이었지요. 그래서일까요? 이과수 폭포와 맞추픽추는 TV에서 각종 여행프로그램을 통해 접해서 그런지 '우와~ 정말 이곳에 내가 왔구나!'라는 감탄이었다면, 별다른 정보 없이 찾아간 곳에서의 만남들이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브라질 하면 아는 도시는 브라질리아, 상파울루, 리우가 전부였던 제게 이번 여행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브라질 동북부 바히아주에 위치한 살바도르입니다. 흑인 노예를 처음 들인 곳이라 주로 흑인들이 산다는 살바도르에서 보낸 3일 동안 소위 동양인이라고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가 전부였어요. 길을 걷다보면 '하뽀네사!(일본인)', '치나(중국인)' 부르면서 호기심 가득 쳐다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식민지배를 받던 시기, 백인 남주인의 눈에 들지 않도록 흑인 여노예에게 일부러 큰 옷을 입히고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했다는데, 지금도 그런 복장을 한 여성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어요. 아픈 역사이지만, 강인하게 삶을 이어왔던 그녀들을 기억하는 바히아 여성들의 기념관도 있었습니다. 치안이 좋지 않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를 많이 받았었는데, 살바도르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한없이 친절하고 여유롭고 춤과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기운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는 마이클 잭슨의 They Don't Care About Us 뮤직비디오를 추천합니다. 살바도르에서 찍은 것으로 olodum이라는 브라질 타악기 퍼포먼스와 함께 어우러지는데, 눈과 귀를 모두 뗄 수 없을 만큼 멋지거든요. 살바도르에 간 덕에 난생 처음 태평양 바다에 몸을 담가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도록 따뜻했지만, 그래도 겨울이라 그런지 바다에 들어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언제 또 태평양 바다에 들어가 보겠냐는 마음에 주춤거리다가 떠나기 전 부랴부랴 들어간 바다, 역시 지구는 둥글고 바다는 이어져있어 그런지 특별한 건 없었지만 망망대해를 보고 있자니 새삼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좌)살바도르 곳곳 벽화가 많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검은 예수'

(우)살바도르 광장 너머로 태평양 바다가 펼쳐진다.

 

페루로 넘어가기 전부터는 고산증 약을 챙겨먹었습니다. 고산병 증세 때문에 제대로 여행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접했었기에 한 알에 600원 정도나 하는 약을 8시간 마다 챙겨먹었어요. 잉카시대를 느낄 수 있는 쿠스코에서 지내며 근교 유적지인 살리네라스(염전), 모라이(농업연구터)를 다녀오기도 하고, 스페인군과 최후 전투지로 전해지는 샥사이와망('북한산성'같은 곳이지만,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에 올라가보기도 하고... 브라질도 그렇지만, 페루도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어진 성당이 정말 많았습니다. 500년 넘은 성당에서는 세월의 냄새가 짙게 났어요. 잉카의 문화와 만난 카톨릭을 갈색 피부의 예수상으로, 잉카인들의 단백질 보충식이었던 꾸이(기니피그)가 오른 최후의 만찬 그림으로 만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잃어버린 도시'라고 불리는 마추픽추는 1911년 버밍이라는 미국인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사람은 정말 운이 좋거나 정말 집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이 좋아도 순간 바람이 불면서 구름이 끼면 볼 수가 없기에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우리가 간 날은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렸거든요.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하얀 구름뿐이었기에 안타까워했는데, 기다리다보니 바람이 불면서 어느 순간 맞추픽추가 시야에 들어오더라고요. 자애로운 산에 고마움을 느끼며, 비 사이로 오래도록 맞추픽추를 쳐다 보았어요.

▲(좌)잉카인들이 농업연구를 했던 터로 전해지는 모라이

(우)공중도시로 불리는 맞추픽추

 

4주 여행의 대미는 산타크루즈 트래킹이었습니다. 3박 4일 트래킹을 떠나기 전날, 69호수에 먼저 다녀왔는데 단지 6시간 걷는 것인데도 장난이 아니구나 제대로 실감했었지요. 이곳에는 200개가 넘는 빙하호수가 있는데, 69호수는 69번째로 발견한 호수라 붙은 이름이라고 해요. 하얀 설산 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호수가 유독 다른 곳보다 아름다워 유명한 곳이라는데, 그 아름다움을 쉽게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호수를 보러 가는 길 자체가 험난한 것은 아니었는데, 4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를 걷는 것은 장난이 아니더군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습니다. 포기해야 하나 마음을 붙들고 턱까지 차오른 숨에 헉헉거리며 한 발 한 발 내딛다보니 펼쳐진 풍경, 말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한 발 한 발 딛다보면 만난다는 진리를 새삼 다시 배웠고, 그 덕에 다음날 이어진 3박 4일 트랙킹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걷는 동안은 뜨거운 햇살에 덥지만, 해가 지면 기온이 뚝 떨어져서 매일 밤 텐트 안에서 모든 종류의 옷을 껴입고 자야 했어요. 끝없이 펼쳐진 풍경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느끼면서 언제 끝날지 모를 걸음들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날 밤을 보낼 거점에 도착하게 되고, 순간 깜깜해진 하늘에는 쏟아질 것처럼 빼곡한 별이 가득했어요. 트랙킹 전후로 머물었던 와라스는 버스로 3시간 거리인데도, 365일 언제나 설산이 어디서나 보이는 동네였어요. 그런 풍경이 언제나 함께 하는 삶이어서 그럴까요? 가난하지만 넉넉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4주 여행이 끝이 났어요. 페루 여행을 함께 했던 괭이눈은 한국에 오기 전 마지막 여행을 더 이어가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넘어갔는데 종종 보내주는 사진에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여행은 끝났고, 저는 지금 이곳에 있지요. 사람들이 "남미 여행 다녀왔다며? 어땠어?" 물으면, "남미가 아니라 브라질의 아주 일부와 페루의 아주 일부를 다녀온 거"라고 대꾸합니다. 트랙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일 뭐 할 거냐"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었는데, 특별한 계획이 없다는 사람들의 대답이 참 부러웠어요. 4주라는 시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매일매일 빼곡히 들어찬 일정이라 늘 계획이 있는 내일을 준비했거든요. 그래서 다시 남미 여행을 꿈꿉니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다시 보면서 그 시간들을 기다려보려고 해요.

▲하얀 설산 아래 펼쳐진 에메랄드빛 69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