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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종간 좌담회] ①인권오름의 의미를 돌아보다

인권활동가들이 만든 매체

<편집인 주>

2006년 4월 26일, 진보적 인권운동을 일구겠다는 다짐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을 창간했다. <인권하루소식>의 뒤를 이어 시대에 걸맞는 인권매체가 되려고 노력했다. 다시 11년이 흘렀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오름>이 만들어온 성과를 소중히 기억하는 만큼 변화한 조건을 쫓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하며 종간을 결정했다. <인권오름>은 무엇을 만들어왔고 어떤 어려움에 부딪쳤을까? 동료들의 애정 어린 이야기를 2회로 나눠 싣는다.

진행
명숙, <인권오름> 편집인이다.
좌담
강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의 편집인이었다. 인권매체에 관심이 많다.
낙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다. '인권이야기' 현재 필진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로 자유권운동에 고민이 많다.
쥬리,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로 청소년 관련 기획연재에 많이 참여했다.


왼쪽부터 쥬리, 강곤,낙타,장여경,명숙

▲ 왼쪽부터 쥬리, 강곤,낙타,장여경,명숙


역사의 뒤안길로 가는 인권운동의 한 시대

명숙: <인권오름>을 매주 꼬박꼬박 내고 있으면서 왜 종간하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종간 소식을 듣고 어떤 마음이었나?

쥬리: 몇 달 전부터 종간 얘기를 듣고 매주 <인권오름>이 잘 나오는데 왜 종간하지 싶었고 아쉬웠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논의한 내용을 듣고서는 갑자기 나온 이야기가 아니고 고민이 많았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오름이 종간하면 청소년운동 이야기들은 실어줄 데가 있을까 싶다. 매체들이 청소년문제는 좀 예민한 글이면 보통 언론들에서 잘 받지 않기도 하고 지지를 받지 못하기도 해서…….

강곤: 올게 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잡지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으니까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왜 종간하지 하는 생각은 안 들었고 아쉬웠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니까 <인권오름> 종간이 아쉬운 게 아니라 <인권하루소식>의 명맥이 끊기는 게 더 아쉬웠다. 노동과 통일밖에 모르다가 인권이라는 낱말을 처음 들은 게 하루소식이다.

낙타: 꾸준히 나오는 <인권오름>을 종간한다고 해서 매우 놀랐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게 오름이었는데 그게 역사의 뒤안길로 간다고 해서 아쉬웠다.

장여경: 당연히 아쉬웠다. <인권하루소식>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니 1993년부터 무려 24년이 아닌가. 인권운동의 한 시대가 지는 것 같다. 진보넷도 매체적인 실험을 많이 해본 편인데 사회운동 매체의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하는 소수자의 목소리

명숙: 각자 소회를 밝히면서 <인권오름>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한 것 같다. 오름이 했던 역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눠보자. 성과와 한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자.

강곤: <인권오름>에서는 다른 데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여성이라든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문가나 기자들의 목소리를 거치지 않고 현장의 활동가들이 생생하게 전한다. 그것도 한군데 모아서 싣는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 오름에 두 번 글을 쓴 거 같다. 다른 매체에서도 서평 같은 거 자주 청탁받는데 개인적으로는 오름에 쓰는 게 제일 긴장됐다. 첫 번째는 안면 있는 독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 두 번째는 이 매체의 독자들은 인권감수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 때문에 실수하면 안 된다 싶었다. 잡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편집할 때도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우리 잡지에 글을 쓰기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게 다른 매체와의 차별성이 아닐까.

낙타: <인권오름> 끄트머리에 와서야 인권이야기 필진이 되기는 했는데 A4 한 장 쓰는 데도 꽤 걸렸다. 누가 읽을지 짐작되니까 이런 걸 써도 되나, 이 단어가 맞나, 고민하게 됐다. 인권연구소 창에서 류은숙 님이 썼던 ‘인권단어장’ 같은 걸 읽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쓴 인권의 언어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가지는 못해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들이 있어서 좋았다. 성소수자운동 안에만 있다 보니 다양한 연대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하고 다양한 운동의 이슈들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지 않았나 싶다. 기존 언론에서 다뤄주는 거랑 기자들이 다뤄주는 느낌이랑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들이 적어주는 느낌이랑 확연히 달랐던 거 같다. 날 것의 느낌이 생생하게 있던 것도 같고. 그런 느낌과 동시에 신중하게 뭔가를 썼다는 느낌도 있다.

부문과 의제의 연결

강곤: <인권오름>은 단체들에서 내는 웹진이나 소식지보다 열려있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나 친구사이 웹진은 회원 대상이지만 오름은 다르다. 오름을 보면 진보넷도 보고 발바닥도 알 수 있다. 여러 의제들을 한 곳에 모아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장여경: 인권운동사랑방이 냈던 <인권하루소식>이나 <인권오름>은 한 단체의 기관지가 아니라 매체 자체가 담론장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전업 활동가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계기 중 하나가 하루소식이다. 네티즌으로 인터넷표현의 자유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최초로 만난 기자가 하루소식 기자였다. 나중에 기사를 봤는데 앞에 고문이 어쩌고 누가 어떻게 수감됐다고 어쩌고 엄혹한 얘기들 중간에 우리 얘기가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을 인권운동 전체 맥락에서 보게 됐다고 할까? 나는 요만큼 하고 있었는데 사회가 어떻고 하는 그 중에 우리 의제가 있어 신기했다.

강곤: 어떤 사람이 감옥에 잡혀 들어갔는데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에서 소식지를 주면 그걸 받는 사람은 양심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걸 못 받으면 양심수가 아닌 거고. 그런 것처럼 <인권하루소식>에서 다뤄주면 인권문제가 되는 권위가 있었다. <인권오름>으로 넘어오면서 그 정도의 권위는 없었던 거 같은데 오름에 있어서는 부문과 부문의 연결, 만남 이런 의미가 있었던 거 같다.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라든지,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라든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도 시도는 했지만 종이잡지의 무거움 때문에 담지 못한 것을 <인권오름>은 담았다. 종이잡지의 장점과 단점이 있고, 인터넷 웹진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부문운동 간의 연결, 이런 건 하루소식보다 오름이 더 뛰어났다고 본다.

<인권오름>으로 전하고 배우는 인권

낙타: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2012년에 인권에 관해서는 무지랭이였다.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활동을 시작하다보니 LGBT가 성소수자의 약자인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인권오름>에서 오는 소식들은 단체소식들이랑은 확실히 다르다. 읽히게 되는 것도 있고, 내가 인권활동하기 전에 했던 활동이나 사안들에 대해서도 배운다. 개인적으론 언론이라기보다는 교과서 느낌이랄까. 특히 청소년인권이나 장애인권에 대해 접하고 이런 게 있구나 하는 알게 됐다.

쥬리: 2011년부터 청소년운동이랑 성소수자운동으로 활동을 시작해서 그전 운동의 역사는 모른다. 그래서 오름의 전신인 <인권하루소식>을 팩스로 배포를 했다고 해서 참 참신하구나 생각했다. 근현대사도 모르는 게 많다. 그럴 때 제일 신뢰하고 입문할 수 있는 언어로 정리된 게 <인권오름>이니까 인권오름 홈페이지로 들어가 전체기사 보기에서 ‘형제복지원’ 같은 것을 검색해서 본다. 다른 매체에 실리는 기고 글도 있지만 오름은 인권운동하는 활동가들의 글을 모아두는 곳이고 그런 점에서 제일 신뢰했던 매체가 아니었나 싶다.

장여경: <인권하루소식>과 <인권오름>이 다르다는 느낌을 활동을 쉬다 복귀했을 때 받았다. 강곤이 말한 것처럼 하루소식에서 다뤄주면 인권운동의 동지로 호명되는 느낌이라면, 오름에서 다뤄주는 건 달랐다. 일종의 권위가 완전히 해체된 느낌이랄까. 당사자들이 자기 얘기를 하도록 공간을 열어준 느낌을 받았다.

인권담론을 잘 벼려왔는가

명숙: 이제 <인권오름>의 한계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오름에서 다룬 글들이 잘 읽혔는지, 또 진보적 인권담론을 잘 벼렸다고 생각하는가.

쥬리: 내가 인권활동가의 언어에 익숙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잘 읽혔다.

낙타: <인권오름>의 글 중 내게 다소 정보가 부족한 다른 인권운동 영역의 글들은 아무래도 한 번에 읽히지 않는 어려움도 있었다. 또 모바일 환경에서는 더욱 읽기 힘들었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 PC를 통해 메일을 확인하며 자연스레 오름을 접하게 되었다.

장여경: 최근에 <인권오름>을 잘 안 읽게 되는데 이유가 두 가지다. 하나는 매체환경이 변해서 메신저나 SNS로 대부분의 글을 읽는다. 활동하면서 기자들한테 메일을 2천통을 뿌리지만 거의 피드백이 안 온다. 메신저나 SNS로 보내야 피드백이 온다. 미디어 환경이 확 달라져서다. 내 자신도 메일함을 잘 안보니까. 두 번째는 당사자들이 많이 쓴다고 했는데 자유권 비중은 많이 줄어든 거 같다. 관심이 있을만한 주제는 많이 줄어들어서 굳이 찾아들어가서 보지는 않았던 거 같다. 자유권은 모두가 당사자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당사자성으로 조직되는 주제는 아니다. 반차별이나 사회권 주제하고는 다른 거 같다.

그리고 <인권하루소식> 만들 때랑 다르게 표현의 자유 이슈를 주류 매체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인권오름>의 지향이 주류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인권담론을 더 진보적으로 다루는 것이라 할 때 자유권은 좀 부족했다. 그건 사랑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단체도 정보인권을 다루는데 네티즌들이나 사회에서 제기되는 이슈를 뒤늦게 따라가는 형편이다. 인권운동 자체가 최근에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 같다. 만약 오름이 진보적 인권운동의 입장에서 자유권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면 형사처벌주의의 강화를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건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인 문제다. 예를 들면 성범죄를 방지한다면서 DNA를 수집하고 전자발찌를 등 국가의 전자감시 장치가 많아지고 CCTV도입을 의무화하는 과정에서 자유권이 전반적으로 후퇴하는데, 그걸 하나하나 쫓아가기보단 형사처벌주의 체제에 대한 성찰이나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이건 인권운동이 겪는 어려움이다.

쥬리: 개인적으로 <인권오름>은 청소년인권의 부분에서는 진보적 인권담론을 잘 벼렸다고 평가한다. 지금 오름에서 청소년인권 관련 연재를 한 게 2006년 ‘청소년운동 길을 묻다’, 2008년 ‘학생인권 마술피리’, 2009년부터 연재한 ‘페미니즘 in걸’, 2011년 ‘나의 대학거부’, 2012년의 ‘빈곤+청소년=쯧쯧쯧’,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의 이야기를 담은 2012년의 ‘다양한 경험으로 빚어지는 의미와 과제’, 2013년 청소년 성적 권리에 대해 다룬 ‘미성숙폭동’, 2015년 ‘청소년의 눈으로 본 학교 성교육’, 2016년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등이 있다. 이 연재들을 보면 인권운동에서 청소년인권 관련 의제들, 담론들이 어떻게 성장해왔는가가 한눈에 보인다. 청소년인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다른 매체에 글을 기고할 때는 대중에게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를 의식하고 쓰는 경우가 많아 글 자체가 담론의 성장을 반영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오름은 주 독자층이 인권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쓰니까 글들이 그런 성장을 반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장여경: 운동을 우리한테 국한하지 않고 더 많은 대중을 만나고 싶어서 <네트워커>라고 종이로 된 월간지를 만든 적이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사회과학 서점이 조금 남아있었고 가판에서 뿌리기도 했다. 그런데 활동을 하면서 글을 쓰기에 우리는 많이 부족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었다. 한 달의 절반은 글을 쓰기 위해 쩔쩔 맸다. 또 역량이 부족하다보니 글을 하나만 쓰는 게 아니라 여러 개 써야했다. 밖에서 지금 진보넷 활동가들 활동은 작파하고 글만 쓰고 있다는 비판도 했다. 우리도 잘 쓰지도 못하는 글 붙잡고 있느니 활동을 하고 싶어 40호 정도 내고 중단했다. 그 첫 달이 너무 시원했다. 써야한다는 압박도 없고. 사랑방도 그러지 않을까?

명숙: 인권운동사랑방은 입장을 벼리고 글 쓰는 활동은 지속하기로 했다. 우선 매주 쓰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인권오름 종간 후에도 계속 낼 것이다. 사랑방이 진보적 인권운동의 담론을 벼리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오름> 편집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