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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한광호 노동자를 기억하는 시

-임성용, 유순예, 양은숙, 송경동의 추모시

슬픈 날에는 비가 오는 것인가. 비가 오는 날이라 슬픔이 복받치는 것인가. 장마가 시작되는 6월 24일은 유성기업에 다니던 노동자 고(故) 한광호가 세상을 떠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싸우느라 마음껏 울지 못했을 고인의 가족과 동료들이 장맛비를 틈타 실컷 울기라도 하면 좋으려만! 열사라는 호칭이 주는 거리감으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동료들이 그를 열사라 부르는 이유를 알기에 다시 적는다. 한광호 열사. 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싸우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동료들. 그를 죽게 한 현대차와 유성기업의 책임을 묻고 있지만 아직도 묵묵부답. 그를 사랑하는 그의 가족과 동료들은 100일째 장례를 못 치른 채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를 추모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에 쉽게 지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료들과 시민들이 서울 시청광장에 차린 한광호 열사 시민분향소로 오기 시작했다. 매일 촛볼문화제가 열렸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들도 그곳에서 함께 추모문화제를 하고, 추모시 낭송도 해주었다. 100일을 앞두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나직하니 함께 읊고자 임성용, 유순예, 양은숙, 송경동 4명의 시인들이 쓴 4개의 작품을 싣는다.

임성용 시인의 시를 읽으며 노동자가 열사가 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가능한지 아프게 묻고 물었다. 유순예 시인의 시를 읊으며 그가 '하늘의 유성(流星)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라 위안삼았다. 양은숙 시인이 낭송하는 추모시를 들으며 '바늘처럼 빼곡이'쌓인 상처들이 대답하는 싸움을 그리고 승리를 꿈꿨다. 송경동 시인의 '이윤을 위한 합법적 살인'을 멈추기 위해 행진하자는 구절에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서울 분향소를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으로 옮겼다. 정확히 경찰과 현대차 용역경비들의 폭력으로 제대로 된 분향소를 차리지는 못했지만 금속노조 유성지회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 100일이 되는 6월 24일 현대차 앞에서 많은 이들이 모여 추모의 행동을 하면 좋겠다. 시처럼, 별처럼 그리고 사람으로서....
-- 추모시를 엮으며, 명숙

노동자가 열사가 될 때
- 임성용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봄날은 이리 환한데
한 노동자가 목숨을 놓았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아닙니다
강요당한 죽음은 자살이 아닙니다
죽게 만든 죽음은 타살입니다

누가 죽였습니까?
노조파괴 주범 유성기업과 현대차 자본입니다
이들이 살인자입니다
이들이 죽이니까 죽었습니다
죽어서라도 외치려고 죽었습니다
저 세상 먼저 보내야할 것들에게 맞서 싸우다
저 세상 먼저 가서 그들의 죽음을 기다리겠다고
영원한 결의를 다짐하러 떠났습니다

1995년 유성기업 영동공장 입사
스물 둘,
2016년 3월 17일 자결
마흔 셋,
스물 두 살에 노동자가 되어
스물 두 해를 노동자로 살다
짧은 생을 내건 한광호 열사여
한 목숨이 질 때
눈 앞에 다가오는 사람들
이지테크 양우권, 하이디스 배제형
금호타이어 김재기, 버스노동자 진기승
비정규직 노동자 최종범, 염호석, 박정식, 윤주형
열 명, 스무 명 넘게 죽어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한 목숨이 질 때
다시, 또다시 살아오는 목숨들

탄압과 폭력
감시와 파괴
해고와 처벌,
싸늘하게 식은 핏줄을 타고
한 목숨이 질 때
끊임없이 지고야 마는 목숨 끝으로
흐르지 않고 목 맨 세월이 흐릅니다
기어이 한 목숨이 질 때
풀리지 않고 묶인 분노가 터집니다

마지막, 체온이 단단한 돌이 될 때
마지막, 고통이 저항의 숨결이 될 때
마지막, 그립고 슬픈 사람의 얼굴이 지워질 때
이렇게 봄이 올 때
이렇게 꽃이 필 때
이렇게 한 목숨이 질 때
목숨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피어나야 하는가
노동의 기억이 눈을 감을 때
노동자가 열사가 될 때
피맺힌 목숨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시든 국화의 비가(悲歌)
- (故) 한광호 열사의 전언


유순예

기도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네
그 기도를 허공에 매달았더니
숨쉬기가 편안해졌네

나는 이제, 자본가에게 짓밟히다 쫓겨난
마흔 두 살의 노동자가 아닌
스물 두 살의 새내기 노동자로 되돌아가는 중이네
굳어버린 내 혀가
노동자탄압, 노조파괴, 부당징계 등등의 단어들을 잊어버리라 하네
야근, 주간연속2교대에게 빼앗긴
단잠이나 편안하게 자라 하네

거리에서, 고공에서, 공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 그대들이여!
공권력 투입도 정당화 되는 민둥산에
그대들을 두고 떠나는 나를 안아줘서 고맙네
내 손으로 풀지 못한 숙제는
노동자, 그대들과 함께 풀어야겠네
몰래카메라를 달지 않아도
권력가들의 언행을 감지할 수 있는 혜안(慧眼)을 불어 넣겠네

시든 나의 육신은 이제
저 하늘의 유성(流星)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네
구린내 풍기는 현대에서 이탈하여
청량한 천상으로 이직(移職)하는 중이네
무차별임금삭감, 폭력탄압, 직장폐쇄 없는
정규직 노동자 입사시험 합격통지서가 앞장서고 있네

노동자, 그대들에게 떠맡긴
잔업을 완수하는 날,
하늘 한번 올려다 봐 주시면 고맙겠네

기도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네
그 기도를 허공에 매달았더니
이제 좀 살만해졌네

- 2016년 4월 9일, 쓰고
- 2016년 4월 10일, 추모시 낭송

초혼, 한광호
- 양은숙


한 죽음이 고스란히, 왔다
시퍼런 숨
완료되지 않은 주검으로, 고스란히 왔다

여섯 번의 겨울을 나뒹굴던
용역들의 쇠파이프와 옥천광고탑 고공의 칼바람

세상은 이상한 지우개
그 모든 절규와 싸움과 처절의 눈물을
잠 좀 자자, 의 밤들을
민들민들하게 지우고 시치미를 뗀다

오! 지랄 같은 봄날
오! 지랄 같은 봄날

서열도 순서도 없이 미친 꽃들이 뒤죽박죽으로, 터지고
완료되지 못한, 뜬 눈의 주검을 밀며
마침내 우리는 저들, 자본의 심장부에 우뚝섰다

냉동고 시체실에 한 세상이 누워있다
서릿발 같은 한 세상의 상처들이 바늘처럼 빼곡이 꽂혀있다
죽음, 만이 매몰찬 세상에 줄 대답이었으므로
죽음, 만이 벗들에게 보태줄 피어린 대답이었으므로

그러니 이제
어머니의 말씀을 온 세상에 돌려주겠다
오오냐,
"싸워라, 그래 싸워라! 싸워서 이겨라!"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 한광호 열사 눈물의 꽃길 100리에 나서며


송경동

누군가 또 쓰러졌다는 이야기
누군가 또 죽었다는 이야기
누군가 또 저 하늘 고공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
누군가 또 길바닥에 나앉았다는 이야기

끊이지 않는 슬픔의 서사
고통의 이야기
단 한번도 책임지지 않는 가해자들의 역사
바뀌지 않는 죽음의 구조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어 달리는
눈먼 자본의 질주를
더러운 권력의 담합을
여기서 멈추게 해야 합니다

차가운 냉동고에서 90일
영문 모를 길바닥에서 90일
그것이 당신의 뜨거운 유언 아니었던가요
그것이 당신이 새기고픈 마지막 묘비명이 아니었던가요

주야맞교대 살인적인 심야노동,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헌법유린 민주노조 파괴,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일상적 가학행위,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현대차 원청의 지배개입,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이윤을 위한 합법적 살인
죽음을 생산하는 상품 생산라인
이 모든 자본의 라인을
여기서 멈추게 해야 합니다

눈물만으로는 안돼
향불 내음만으로는 추모의 꽃만으로는 안돼
쓰러진 당신을 일으켜 세워
분노의 행진에 나섭니다
100리, 1000리라도 걸어 그들의 목전에
이 분노를, 이 원한을 놓아야겠습니다

여기서 멈추었다고
흰 천으로 가려진 현대차 대리석 명패에 새겨야겠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변혁의 길로 나섰다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6월 24일 저녁 7시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 개최될 한광호 열사 산화 100일 추모 행사 홍보 웹자보

▲ 6월 24일 저녁 7시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 개최될 한광호 열사 산화 100일 추모 행사 홍보 웹자보

덧붙임

임성용 님, 유순예 님, 양은숙 님, 송경동 닝은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