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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박하순의 인권이야기

죽어간 자들의 가장 진실했던 순간

농민에 이어 노동자들의 자결과 분신이 이어지고 있다. 이경해 씨의 죽음을 칸쿤 현지에서 접했던 나는 엊그제 비정규직 대회에서 이용석 씨가 분신해 오그라드는 것을 직접 목격해야 했다.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이들이 가장 진실했던 순간에 토해낸 말들이다. 귀를 기울여 보자.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 해고자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 유서에서

"내일 모레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월이 다 되어 가는데, 내가 85호기 크레인 위로 올라온 지 벌써 90여일, 조합원 동지들의 전면파업이 50일이 되었건만 회사는 교섭 한번 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준엽아 혜민아 준하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 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 금속노조 김주익 한진중공업 지회장 유서에서

"법에도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수십 억원의 손배·가압류와 구속, 수배, 해고까지 당해야 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삶이라면 차라리 이런 나라에서는 살아갈 가치를 느끼지 못해, 옳지 않은 방법임을 알면서도 많은 동지들에게 욕을 먹을 각오로 죽음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이해남 세원테크 지회장 유서에서

"동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그 흔한 단체사진하나 없네요. 수개월동안 동고동락한 기억과 추억과 감동 속에서 아무런 상의도 없는 제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를 바랍니다.…짐을 꾸리기 위해 목포서 내려가는 버스가 유난히 과속을 하네요. 자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는 없지만 이를 악물고 울지 않을 것입니다.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동이라 욕하며 비웃어주세요. 어머님 얼굴 뵙지를 못하고 가네요." -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이용석 광주전남본부장 유서에서

시대를 닮아 어지간히 강퍅해진 나로서도 김주익 씨의 유서와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흔한 말로 눈물만 훔치고 있을 수만 없다. 고생만 한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을 뒤로하고 목을 맨 김주익 씨의 권력과 자본에 대한 분노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자초한 과잉축적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적 노동수탈과 손배 가압류 등 소유권의 절대화를 통해 탈출하려는 자본의 횡포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최소한의 권리인 생존권과 노동권을 쟁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결과 분신으로 이들이 우리에게 명하는 바가 아닐까.

(박하순 님은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