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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질문의 방향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연속토론회 <문제적 인권, 운동의 문제> ‘3차 토론회 :‘을’, 노동의 돋보기인가 지우개인가(9.6)’후기

언젠가부터 등장한 갑을관계라는 말, 갑질이라는 말은 노동자와 사장, 원청과 하청, 관리자와 직원 등 노동의 영역에서도 권력 관계를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권력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만큼 갑을로만 설명되지 않는 여러 노동의 문제들을 인권운동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권운동더하기에서 준비한 연속토론회 중 3‘‘’, 노동의 지우개인가 돋보기인가에서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미’조직

 

“저는 직장갑질 119 활동을 하면서 ‘미조직’이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

 

심화 발제를 맡은 오진호 님이 했던 말이 와닿았다.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 역시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토로하고 싶은 사람이다. 다만 말할 조건이 갖추어져있지 않기에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갑질을 매개로 노동자를 만나온 직장갑질 119의 지난 1년의 과정은 이런 현실을 보여줬다. 익명성을 전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열리자 이들은 참아왔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6개월 상담 건수만 1만 건이 넘었고,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쉽게 미조직 노동자라고 말해온 사람들은 조직을 만나지 못한 미완의 상태가 아니라 조직을 선택하지 않아왔던 것이다. 미조직이라는 말이 노동자의 현실보다 노동자를 조직해야할 대상으로밖에 보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에 대해 운동의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촛불이 정권을 바꿨어도 직장에는 아직 민주주의가 없는 지금의 현실에 가장 뼈아파 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나와 같은 활동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을은 가깝고 병정은 멀다.”

 

또 다른 심화 발제자 백선영 님이 했던 말이다. 새삼스럽지만 핵심을 마주하게 만든 말이었다. 갑질 문제가 세상에 던져졌을 때 기업 회장도, 정부도 호들갑을 떨면서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청 사장이 원청에 갑질을 당하는 처지여도 자신은 노동자에게 또다시 갑질을 하고,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갈등하고, 내국인 노동자가 이주민 노동자를 배척하는 현실이다. 흔들리지 않는 권력관계, 서열화된 노동의 구조에서 갑질만 이야기 될 때 병과 정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다. 갑질만 문제제기 한다고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다. ‘갑질은 분명 노동자들이 모이고 말을 꺼낼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했지만 바꿔나가야 하는 현실은 갑질 근절 대책만으론 부족했다.

 

노동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그래서 도대체 어떤 대책이 가능할까를 궁리하면서 발제에 집중할 때 흥미로운 문제의식이 던져졌다. ‘괴롭힘을 당하는 노동자의 문제를 어떻게 공동의 문제로 만들 수 있을까였다. 갑질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직장내 괴롭힘의 입법례와 관련하여 발제를 맡은 김두나 님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가, 어느 직종의 사람이 괴롭힘을 당했는가, 성별이나 나이 등의 요소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에 따라서 각기 다른 대안과 해결책이 난무하는 사이에 공동의 해결은 사라지기 십상이다. 개별 행위를 규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괴롭힘을 인권 침해의 문제로 규정할 때, 노동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문제제기하는 언어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직장 상사의 부당한 명령, 요구에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공단에서 노동자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 경제적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권력관계에서 약자이기 때문에, 또 대처 방법을 찾지 못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서 참는 것이 남는 것이라 당해주고 마는 선택을 하고 있다면, 질문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견딜까?’가 아니라 나와 내가 속한 운동, 더 넓게 인권은 이들에게 어떤 선택지를 줄 수 있는지 묻는 방식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토론회는 이 고민의 현재를 확인시키고 지평을 넓혀주는 이야기가 오갔던 자리였다. 앞으로는 다시 나의 몫이 생긴 것 같다. 내가 활동하는 공간을 어떻게 노동자에게 열린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