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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나의 인권이야기] 우리는 선을 넘는다

준법 대 불법의 프레임을 넘어


작년 11월 14일 종로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에 모인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파란 물감의 세찬 물줄기가 쉴 새 없이 내리 꽂혔다. ‘불법행위’이고 ‘처벌 대상’이라고 경고하는 경찰 방송차. 차벽을 마주하고 항의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겨냥해 내리 꽂히는 물줄기. 도대체 경찰들에게 거리에 있는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물음이 끊이지 않았다.

‘불법과 폭력’ 프레임에 갇힌 자유

강신명 경찰청장은 12월 31일 신년사에서 ‘”준법 대 불법’의 집회시위 프레임을 완전히 정착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미디어를 활용해 대단히 조직적으로 ‘준법 대 불법’의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 ‘정착’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니 어느 정도는 이 프레임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를 하는 듯하다.

경찰은 11월 14일 민중총궐기가 개최되기도 전에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언론에 “불법”과 “폭력”으로 민중총궐기를 덧칠했다. 집회가 끝난 후에도 경찰은 언론을 적극 활용해 물포 시연에 나서면서, ”주동자”라는 색깔을 입히고 “불법.폭력 시위 엄단”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준법과 불법’의 프레임에 가두었다. 금지통고된 모든 미신고 집회는 “불법행위”이며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설치된 차벽과 물포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설치된 차벽과 물포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불법’의 경계, 질서 유지선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준법의 선으로 강조하며 홍보한다. 경찰은 “‘폴리스 라인(Political Line)’을 침범하는 행위에 대해 채증을 한 뒤 사후에 사법조치를 하거나 폴리스라인을 넘어 경찰력에 폭력을 행사할 때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정부 아래서 경찰의 폴리스라인은 질서 유지선 의미 이상이다. 집회의 속성상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을 수밖에 없으며 그 사안의 중대함은 결국 청와대로 향하기 마련이다. 결국 폴리스 라인은 집회의 물리적 구역을 설정하는 선을 넘는, 도전해서는 안 되는 정부의 입장과 정책을 고수하기 위한 금지선이 되었다. 질서유지선은 정부의 입장유지선이고, 정책유지선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집회가, 그리고 국정화 역사 반대의 목소리가, 밥쌀 수입저지와 노동개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철통같은 폴리스라인에 막힌 이유다.


우리는 선을 넘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경찰은 법을 초월하는 권력이 되고 있다. 금지통고서 한 장이면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권리는 무시되어도 좋을 권리가 된다. 차벽과 물포는 더 이상 사람들이 나아갈 수 없는 제한선을 긋고 막아선다.

그러나 사람들은 또 다시 선을 넘어가고자 한다. 2월 27일 민중총궐기가 예고되고 있다. 지난 29일 한국 방문을 마친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짧은 방한 기간 동안의 인상만으로도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국민간의 다른 대화 및 소통 채널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시위가 우선시되는 옵션이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결국 이 땅의 사람들은 또 집회시위의 권리라는 권리에 기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가지지 못한 이들은 다시 한 번 어깨를 걸고 연대로 이 선을 넘으려 할 것이다. 인권에 ‘불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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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비파나 님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