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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이름값 좀 합시다 (feat. 여성가족부)

이 글을 쓰는 오늘(2015년 11월 25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는 많은 여성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였다. ‘양성평등기본법 개정 이후 후퇴되는 성평등 정책에 대한 기자회견’을 위해서. 기자회견의 주요 내용은 성평등 정책의 후퇴에 앞장서고 있는 여성가족부(*)를 규탄하는 것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떠돌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님이었다. “14년 전, 2001년에 여성부가 신설되었을 때의 벅찬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여성부를 없애겠다고 했을 때, 많은 여성 단체들이 인수위원회 앞에서 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여성부의 존치를 소리 높여 외쳤다.”


대한민국에 여성부가 존재한다는 것은 여성주의자와 여성단체들의 피땀 어린 운동의 열매이며, 그리하여 자부심이다. 단지 ‘여자’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에 직면하는 많은 여성들의 기댈 곳이며, 믿음이다. 적어도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함부로 여성을 폄하하거나 만만히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며, 가능성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에 한 귀쯤은 내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증명이며, 그리하여 세상이 조금은 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모든 문장을 과거형 혹은 가정문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새삼스레 그리고 서글프게 깨닫는다.

2015년 대한민국의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 취지에 벗어난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한 지자체의 ‘성평등조례’ 조항 중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부분을 삭제하라고 종용했다. 이에 항의하는 여성단체들과의 면담 또한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며칠 전, 여당의 대표(김무성, 새누리당)는 “아기를 많이 낳은 순서대로 비례대표 공천을 줘야 하지 않겠냐.”고 이죽거렸고, 한 경찰청장(김재원, 전북)은 여성 기자에게 쌈을 싸 주면서 “고추를 먹을 줄 아냐? 여자는 고추를 먹을 줄만 아는 게 아니라 잘 먹어야 한다.”며 서슴없이 성희롱을 해댔다. 이런 망발들에도 여가부는 말이 없다. 하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때도, 일본 정치인들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망언에도 여가부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여성부는 소수자 여성들의 인권을 지켜주지도, 위정자들의 폭력적인 더러운 입을 닥치게 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스스로 ‘여성부 무용론’에 힘을 쏟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와 여성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바란다는 것이 무색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경 소장의 얘기처럼 탄생 자체가 감동이었던, 그를 지키기 위해 칼바람에 맞서 싸웠던, 성평등 정책의 토대로 믿어왔던, 여성부다. 그러니 독재정권의 충실한 졸개 노릇이나 하라고, 보수기독교단체의 성능 좋은 확성기나 되라고, 혹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라고,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단 여섯 글자 ‘죽 쒀서 개 줬다’ 뿐일 테니.

지난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성평등지수에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145개 조사대상국 중 115위를 차지했다. OECD 가입국 중에서는 무한히 꼴찌에 가까운 꼴찌 바로 앞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발표가 국내 언론에 기사화되자 사람들(대부분 아직 가부장제를 못 벗어난 남성일 것으로 사료되는)의 반발이 시답잖게 뜨거웠다. 말 같지도 않다, 믿을 수 없다, 우리의 특수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한국은 이미 성평등 국가인데 헛소리 한다 등등. 여성 인권은 아직도 깊은 물속에서 땅 짚고 헤엄치는 중인데, 깊은 물속이라는 전제는 생각도 하지 않고 땅 짚었으니 쉬운 거 아니냐며 역차별 운운하는 무리들까지 득세 중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스모그가 짙게 깔린 끝없는 길 위에 ‘양성평등기본법’까지 뿌려놓고, 누가 여성인지, 누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구분하고 따지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옳을까. 여성들 사이에 수없이 선을 긋고, 벽을 세워 차별을 조장하는 게 옳을까. 여성부가 늘 울상 지으며 하소연하는 힘없는 부처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더 많은 이름들을, 더 많은 존재들을 ‘여성’으로 껴안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혼인과 혈연에 얽매이지 않는 더 다양한 삶을 돌아보고 가족의 의미를 확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간혹 낯선 길에서 헤맬 때가 있다. 그럴 땐 계속 헤매며 돌아다닐게 아니라 가만히 서서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처음 왔던 길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성가족부의 영문 명칭은 Gender Equality & Family 이다. 젠더와 평등의 의미를 새롭게 사유하고,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는 것. 지금 대한민국 여성가족부가 가장 시급히 그리고 절실히 해야 할 일이다.

(*) 이 글에서는 ‘여성부’와 ‘여성가족부’를 섞어 씁니다. 이는 여성부의 명칭이 여러 차례 변화를 겪은 까닭이기도 하고, 필자의 개인적 지향과 이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 이 글은 ‘[대토론회]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2015/11/27)의 토론문으로 쓰여졌습니다.
덧붙임

난새 님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