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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여성가족부, 놓지마 정신줄

’성평등’에 성소수자는 배제된다고?

지난 8월 4일, 여성가족부는 대전시로 공문을 보냈다. 대전시가 7월 1일부터 시행한 <대전광역시 성평등 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에 대한 규정을 둔 것은 상위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취지를 벗어나기에 개정하라는 공문이었다.

제3조(성평등정책 시행계획 수립) 성소수자(“성소수자”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등 성적지향과 성정체성과 관련된 소수자를 말한다) 보호 및 지원
제22조(성소수자 지원) ① 시장은 성소수자도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② 시장은 성소수자에게도 법과 이 조례에 따른 지원을 할 수 있다.

- <대전광역시 성평등 기본조례> 중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규정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하여 남녀가 함께 만드는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한 법으로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을 포함하거나 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개정 요구의 근거로 들었다.

보수 개신교 성소수자 혐오 단체도 아니고 ‘여성가족부’가 직접 공문을 보내 성평등 기본조례를 개정하라고 했다는 소식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이럴 수가-는 아니었고,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는데 생각하던 것보다 더 심각하게 바닥이라는 충격이었다) <양성평등기본법>을 근거로 들이밀며 개정 요구를 했다는 것에 속이 더더욱 쓰렸다.

애당초 성소수자는 여성/남성이라는 구분과 완전히 배타적인 제3의 카테고리인가? 성평등이면 성소수자 규정이 들어가도 되지만, 양성평등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규정이 있을 수 없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성소수자 여성도 있고 성소수자 남성도 있기 때문이다. 장애, 인종, 종교, 계급이 여성/남성과 교차될 수 있는 조건이듯이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역시 여성/남성과 교차될 수 있다. 고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대전시의회 관계자는 성평등 기본조례에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조항을 삽입한 것은 “성소수자도 남성과 여성의 하나로 부분에 포함돼 성별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는 전제하에 차별금지 인권보호 취지”였다고 한다. 대전시의회 관계자도 알고 있는 교차 정체성의 가능성을 여성가족부는 왜 모르나? 국어부터 가르쳐야 하나, 도대체 뭘 어떻게 말해야 이런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지 참 까마득하다.

8월 13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성평등’에서 성소수자를 배제한 여성가족부 규탄 기자회견

▲ 8월 13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성평등’에서 성소수자를 배제한 여성가족부 규탄 기자회견


양성평등기본법 기출문제 : 다음 중 여성을 고르시오

혹시 몰라서 설마 양성평등기본법에 성소수자 여성이나 성소수자 남성은 포함이 안 되는 개념 정의가 되어있는지 몰라서 법문을 찾아보았다.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헌법」의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기본이념) 이 법은 개인의 존엄과 인권의 존중을 바탕으로 성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해소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참여와 대우를 받고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함으로써 실질적 양성평등 사회를 이루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양성평등"이란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을 말한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분명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의 다양성을 명시하는 규정은 없다. 기본이념에는 대전시에 공문으로 보냈던 내용처럼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참여와 대우를 받고’라는 내용이 적혀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이야기하는데 성소수자 여성과 성소수자 남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여성가족부가 그 여성과 남성을 비성소수자로 전제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양성평등기본법>을 이성애자평등기본법이나 시스젠더(Cisgender:태어난 육체의 성별과 정신의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평등기본법으로 만들어버리는 좁은 해석 속에서 레즈비언 여성, 바이섹슈얼 여성, 트랜스젠더 여성, 인터섹슈얼이 경험하는 성별에 따른 차별과 편견, 비하와 폭력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에서 내쳐진다. 이성애자 남성이 충분히 남성적이지 못하다고 ‘게이같다’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성적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것은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인가? 수술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폭력을 경험한다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스럽지 않아서’ 레즈비언 여성이 해고를 당한다면 (이것은 ‘어떤’ 성소수자에 대한 예시일 뿐 레즈비언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런 설명까지 쓰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그것 역시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인가?

<양성평등기본법>이기에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에 대한 규정을 넣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양성평등기본법>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여성은 누구인가, 남성은 누구인가,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진짜’ 여성 혹은 남성이 아니라는 편견을 받고 그로 인한 폭력을 경험한다면 ‘진짜’ 여성 혹은 남성은 무엇인가, 그 정의가 누구에게 어떻게 차별과 폭력을 유발하는가를 더 열심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법의 내용은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 라는 법의 이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을 어떻게 포착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지향에 달려있다.

여성가족부, 혼자 왔니?

여성가족부가 이번 대전시 성평등 기본조례 개정 요구를 한 것도 문제지만 더 깊은 문제가 있다. 이번 여성가족부의 <대전시 성평등 기본조례> 개정 요구에 단순히 여성가족부의 입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이번에 대전시에 공문을 내려 보낸 것은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에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규정을 삭제할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대전시 이외에도 이미 2013년부터 성평등 기본조례를 제정하여 그 안에 성소수자 인권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과천시에도 과천시 교회연합회에서 규정을 삭제해야한다고 항의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 구로구 양성평등 기본조례안에 대해서는 성소수자라는 명시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2조 3항 ‘성차별이란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에 기반하여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성을 차별하는 태도, 신념, 정책, 법, 행동 및 언어 등을 말한다.’라는 규정에서 ‘사회적 성’이 성소수자를 이야기한다며 서울시 구로구 교회연합회, 나라사랑학부모연합 등 보수 개신교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삭제를 요구했다.

구로구 사태를 보고 들끓는 분노와 어이상실에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무려 10년도 더 전에 여성주의를 처음 알아가며 샀던 『새여성학강의』((사)한국여성연구소 지음, 동녁 출판)를 다시 펴들었다. 30페이지와 31페이지에 걸쳐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을 구별하는 것은 사회적 성정체성이 생물학적 속성 이외의 다른 사회적 속성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인간의 기질, 특히 남녀의 기질을 생래적이거나 자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려는 입장에 대해 사회적 경험과 훈련에 따라 남녀의 기질이 습득된다는 것”

여성주의의 역사는 여성이 생물학적 성에 의해 여성으로서의 역할이나 여성으로서의 특질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사회구조와 권력관계의 역학에 의해 학습되고 강제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폭로해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사회적 성이라는 말이 성소수자를 포함하고 이를 인정하면 “전통적인 성관념”이 깨져 사회가 큰 혼란에 빠진다는 보수 개신교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논리를 비판하지도 않고 그런 주장을 하는 세력의 민원을 받고 있는 여성가족부의 현재는 실망을 넘어서 여성주의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여성가족부는 각 지자체에 성평등 기본조례 개정요구를 보낼 것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정말 고민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자기반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역으로 “전통적인 성관념”을 주장하시는 성소수자 혐오세력에게 “전통적인 성관념”이 뭔지, 그게 양성평등기본법의 기본이념에 맞는 얘긴지를 좀 그쪽과 얘기를 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성명서] 여성가족부의 대전시 ‘성평등기본조례’ 시정요청을 규탄한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을 포함하거나 이를 규정'하는 것이 '양성평등기본법'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 규범이야말로 여성다운 것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여성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누는 가장 핵심적인 억압의 원인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여성가족부야말로 '양성평등기본법'의 기본 이념에 반하고 있다.

또한 여성가족부의 조치는 여성/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무시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조치이다. 성평등의 주체는 여성이거나 남성만일 수 없다.

‘성소수자 여성’이 여기 있다. 어째서 성소수자 여성의 고민은 여성 문제가 될 수 없는가? 비성소수자 여성의 노동, 교육, 출산, 육아, 가족구성이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고민해야하는 여성 문제라면 성소수자 여성의 노동, 교육, 출산, 육아, 가족구성은 어째서 그렇지 못한가? 여성가족부는 이에 답해야한다.

우리의 페미니즘은 성소수자 차별의 문제를 여성주의의 문제로 보지 못하는 여성가족부의 입장이 반여성주의적이라고 말한다.

여성가족부는 대전시 '성평등조례' 시정조치를 철회하라! '양성평등기본법'이 상위법이라면 상위법다운 가치체계를 담도록 고민하는 것이 여성가족부의 진짜 할 일이다.

2015년 8월 7일
언니네트워크
덧붙임

나기 님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