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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탄저균 사건, 안보보다 인권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때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최근 몇 주간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는 ‘메르스’일 것이다. 메르스에 대한 걱정이 확산되면서 메르스 관련 지도가 만들어졌고 공공장소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넘쳐났다. 메르스 사태가 확산되고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진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탓이 크다. 무능력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정부도 모르는 상태로 위험한 세균이 이 땅에 들어왔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바로 언론보도를 통해 5월 28일 밝혀진 주한미군기지로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되었던 사건이다.

누구도 모른 채 이 땅을 오가는 위험물질들

미국 국방부가 5월 28일 미국 유타주의 군 연구시설인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죽거나 비활성화되지 않은 살아있는 탄저균을 한국 오산 공군기지와 미국 내 9개 주에 보냈다고 발표하면서 ‘탄저균 배달 사건’이 알려졌다. 이 문제를 민간기업에서 미국 정부에 알린 것이 22일이었는데, 일주일이 지나서야 주한미군 등에 통고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탄저균은 소량이라도 공기에 노출될 경우 95%의 살상력을 가진 세균으로 생화학전이나 테러에 자주 이용되는 물질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05년에 탄저균 포자가 담긴 편지가 배달되어 5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치명적 살상력을 지닌 이 세균이 이 땅에 들어왔다는 것 그 자체로 문제지만, 이와 함께 나타난 문제는 그것에 대한 정보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발표 이전까지 정부조차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고, 나아가 이후 이에 대한 대응마저 주한미군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의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한미국은 주피터 프로그램(JUPITR, 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의 일환으로 서울 용산, 경기 오산 등 3곳에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1998년부터 탄저균 등에 대한 실험들이 진행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부 당국자는 “이번 사고가 발생한 주피터 프로그램 연구소가 언제부터 어떻게 운영됐고 어떤 균들이 얼마나 실험됐는지에 대해 미군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게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은 치외법권적 조항들을 담은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주한미군에 전달되는 군사우편 등이 세관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SOFA 9조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우리 일상의 건강한 삶마저 위협하는 상황에서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6월 8일 용산 주한미군기지 앞에서 불법적 탄저균 반입 실험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처: 민중의 소리)

▲ 6월 8일 용산 주한미군기지 앞에서 불법적 탄저균 반입 실험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처: 민중의 소리)


안보에 묻힌 인권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더 큰 문제는 안보를 이유로 우리의 건강권을 양보의 대상으로 삼은 정부의 태도이다.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버린 주한미군기지에서 위험물질들이 함부로 다루어진 사례는 이전에도 이미 많았다. 영화 ‘괴물’의 소재이기도 했던 2000년 용산 미군기지에서 독극물을 한강에 무단 방류한 사건은 물론이며, 2007년 반환된 23개 미군기지의 심각한 오염, 2011년 퇴역 주한미군들의 고엽제 매립 증언 등 우리의 생활권 안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각한 위협들이 늘상 존재해왔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근본적 이유는 ‘안보’를 구실로 건강권을 비롯한 우리의 인권을 양보의 대상으로 삼은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불평등한 SOFA는 정부의 이런 태도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북한을 내세워 ‘안보’를 최우선순위로 내세우는 정부의 태도는 주한미군의 비상식적 행위들을 묵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탄저균 등 생화학 무기의 이동시 세계보건기구(WHO) 및 해당국 질병관리센터에 사전 고지해야 한다는 생물무기금지협약마저 무시한 주한미군의 행동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항의도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일어난 미선, 효순 사건을 비롯해 우리의 기본적인 생명권마저 위협당하는 현실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 저들이 말하는 안보라는 것도 결국 생명과 생존에 직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시작점으로 모든 것을 다시 살펴야 하지 않을까. 생존과 평화, 그리고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소파 개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현재도 곳곳에 주한미군기지가 위치해 있다. 이번 사건으로 정부와 새누리당은 “7월 예정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 회의에서 모든 위험가능성 물질의 국내 반입이 철저한 통제하에 진행되도록 협정 운영 방법과 절차상 문제를 의제로 논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위험가능성에 대해 시민들의 알 권리, 그리고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고 위험을 예방하는 정부의 의무를 가로막고 있기에 SOFA 개정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탄저균이 개발되고 무기로 사용되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위험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안보논리로 모든 문제를 쉽게 덮는 저들에게 ‘인권이 먼저!’임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임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