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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국제질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를 멈추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절도 한참 지난 걸 떠올리면 사회운동이 국제질서와 무관하다 느낄 겨를은 없었다. 가깝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그랬다. 국가마다 국경을 꽁꽁 걸어 잠글수록 세계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돼있는지 드러났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일을 국제질서 변동이라는 맥락에서 읽어내는 일이나, 다른 나라를 무대로 벌어지는 일을 한국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접근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못 본 척 할 수도 없다면 사회운동에는 어떤 도전이 필요할까? 지난 11월 27일 열린 길내는모임 3차 쟁점토론회 주제는 <국제질서 변동과 사회운동의 달라진 과제>였다. 

 

 

국제질서 변동과 사회운동의 공간 찾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국제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쏟아져나왔다. 어떤 변동인지 해석이 조금씩 달랐을 뿐이다. ‘신냉전’이 본격화된다는 말들이 가장 흔했다. 이는 미국과 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정부가 앞장서 주장하기도 했다. 가치를 내세워 진영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높아졌다는 점은 그만큼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조선이 신냉전 정세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북-중-러 연대가 취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우리가 흔히 '북한'이라고 부르는 국가의 공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한'이라는 명칭은 탈식민 시대 분단된 역사의 질곡을 환기하며 평화통일의 지향을 확인하는 효과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동시에 대한민국 영토를 불법 점령한 '반국가단체'로 호명하는 명칭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권국가이자 고유한 체제로서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며 '조선'이라고 썼다.

소련 붕괴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로 통합되어갔다. 중국이 미국과 본격적으로 ‘커플링(동조화)’되면서 중국은 세계 패권을 노릴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미국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경제위기를 외부화하며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가 파괴하는 사회를 재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 되지 못했고 미-중 갈등은 점차 양국 관계를 넘어서 국제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신냉전 구도는 실질적인 대립 구도의 반영이기보다 국제질서 재구성에 이르지 못하고 세계적 수준에서의 전망을 내지 못하는 현실의 반영에 가깝다. 미국과 중국이 진영으로 포섭하려는 여러 대륙의 국가들에서 균열과 머뭇거림이 확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조건에서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동맹 강화 기조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가치 외교’냐 ‘실용 외교’냐로 단순하게 접근하는 건 어느 쪽이든 저물어가는 배에 올라타는 것을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과 다름 없다. 가치도 경제도 모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하는지 사회운동은 역사적 질문 앞에 놓여있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박기형(서교인문사회연구실)은 국제법과 국제규범에 다시 주목할 필요를 제기했다. 그러나 기존의 규범을 재확인하는 데서 그칠 수는 없다. 국제질서를 국가 간 관계로 상정하고 외교의 문제로 한정하는 시야에서는 세계사회 속에서 심화되는 불평등과 정치의 위기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박기형의 제안처럼 “누구의 시선에서 현 정세를 규정할 것인가” 답해야 한다. 미국과 무기에 의존한 안보는 누구의 안전을 지켰는가, 중국의 경제에 올라탄 성장은 누구의 자산을 키웠는가. 동시에 그는 “국가를 가로질러 작동하는 상호교차의 선들을 포착할 날카로운 관점과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낼 연합의 기획과 실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주권과 권리 개념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가두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자도생의 단위로서 국가 수준에서 완결되는 요구를 찾기보다 우리의 상호의존성과 취약성을 새로운 윤리/정치/질서의 기초로 삼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른 관계 양식을 재발명하는 만큼 국제질서가 존엄과 평등, 평화의 조건이 되어갈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다르게 사유하기

이런 문제의식을 한반도로 옮겨오면 어떤 과제를 마주하게 될까? 조선의 핵무기 보유는 노골적이게 됐고 미국의 핵잠수함이 태연하게 한국의 항구에 입항하는 등 각자 안보를 주장하는 무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그 무기들은 어느 때에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 독자 핵무장을 추진했던 박정희 정권에서 노동자들은 더 착취당하고 억압당했으며 여성은 가족에 떠넘겨진 온갖 부담을 감내하며 차별의 구조에 갇혀야 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정권의 안전을 우위에 놓는 오래된 의식구조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가속화한 군비 증강과 무기 수출은 한국의 군사력을 세계 6위로 올려놓았다. 그 결과는 더 큰 불안일 뿐, 우리의 삶이 안전해졌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군사안보를 안전의 조건으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게 무기 경쟁은 안전을 왜곡할 뿐이다. 우리가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바란다면 안보와 위험만 부각하는 담론을 넘어서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평화에 대한 다른 상상도 필요하다. 한반도 전쟁 위기는 ‘한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상황으로 흔히 묘사되었다. 자연스럽게 통일이 곧 평화의 길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통일’은 전쟁의 명분이기도 했다. 조선을 자본의 미개척지이자 노동력 공급 기지로 간주하며 국력 강화의 수단으로 통일이 추구되었던 민주당 정부의 통일 정책이 신자유주의 정책이었을 뿐이라는 점도 냉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같은 시기 통일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점차 줄어든 것을 역사의식의 부재로 훈계할 일은 아니다. 함께 살아가려는 도전을 좌절시키는 사회에서 더 너른 연결과 연대를 꾀하기란 불가능하다. 통일이 ‘민족의 부국강병’을 위한 것일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두번째 발제를 맡은 홍명교(플랫폼C)는 위와 같은 현실을 짚으며 사회운동의 과제를 제시했다. 통일 담론의 종언을 인정하자, 반전평화운동을 새롭게 건설하자, 한반도를 넘어 한반도 평화 문제를 바라보자, 조선 사회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연대를 모색하자는 제안이다. 이 중 가장 시급해보이는 것은 한반도를 핵무기 없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반전평화운동의 다른 전략과 기획이다. 단지 대한민국 영토의 안전을 위한 비핵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요구로서 이를 모색한다면, 세계가 핵무기 없는 곳이 되어갈수록 한반도도 핵무기 없는 곳이 되어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통일을 통한 민족의 자주성 확립이 해방의 길이라는 오래된 사회운동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과제도 녹록지 않지만 미룰 수 없어보인다. 

 

 

사회운동의 과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질문들

발제 후 이어진 지정토론은 발제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여러 관점에서 구체적 과제를 짚어주었다. 양동민(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은 특히 노동자들이 반전평화운동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고통이나 평화에 대한 지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들려주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집을 부수는 이스라엘 정부의 범죄에 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가 사용되면서 BDS운동-보이콧, 투자철회, 제재를 촉구하는 국제 캠페인-의 대상이 됐다. 자신의 삶을 위한 노동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함께 끊어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은 국제질서 재편의 원리로 제시하는 ‘상호의존성’이 구체적인 운동의 과제로 연결되지 못할 때 느끼게 되는 헛헛함을 고백했다. 군사안보를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바라보는 것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군사안보전략에 대한 개입과 비판 없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를 만들어가는 일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이는 한반도 평화에 관한 논의에서도 중요하다. 조선을 국가이자 체제로서 존중하고 이해함과 동시에 조선의 민중들과 어떻게 연대하면서 함께 억압적 질서를 넘어설 수 있을까?  

박석진(중국 연구자)은 국내 정세와 국제 정세를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넘어서 사회운동의 통합적 시야와 관점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사회운동의 위치와 역할을 현실적으로 판단하며 전략을 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국제연대라는 지향만으로 전략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등 20세기 국제질서를 분석해온 주요한 인식틀을 재평가하며 현재를 설명하기 위한 적실한 담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는 분단과 통일 담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역사적 맥락을 다시 짚으며 문제 설정부터 새롭게 해야 할 때다. 사회운동은 이런 과제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의 일상이 언제나 거대했음을 기억하며

발제와 토론 모두 사회운동의 달라진 과제를 직면하기 위해 필요한 관점의 전환을 제안하고 중요한 질문을 꺼내주었다. 무언가 다른 길이 보이는 듯하여 설렜지만, 이내 희미해지며 다시 막막해지기도 했다.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사유방식에 도전하는 일인 듯하면서도, 이미 여기저기에서 새롭게 형성되어온 관점들을 연결하고 종합하는 도전인 듯도 했다. 어쩌면 이번 토론회의 가장 큰 의의는 어떻게든 한 발 떼기를 함께 약속하는 시간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국제질서를 떠올릴 때면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대상을 다루는 느낌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질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 무관하게 저홀로 형성되고 변동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미 우리의 일상에 거대한 세계가 들어와있는 셈이다. 여러 사회문제를 규모나 무게로 비교하기보다 늘 동시에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연습이 필요해보인다. 상호작용의 속도나 범위에 차이가 있을 뿐, 이미 자본주의 체제로 통합된 세계사회는 언제나 우리 앞뒤에 있다. 우리의 움직임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흔적’으로도 이 세계와 함께 움직이고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사회운동의 구체적 과제를 밝히고 다른 운동을 만들어가는 것도 새로운 영역과 의제를 만드는 것과 다른, 운동의 변형과 전환이 아닐지. 이 숙제를 잘 기억하면서 또다른 발을 내디딜 준비를 해야겠다.

 


<국제질서 변동과 사회운동의 달라진 과제> 자료집은 사랑방 자료실(클릭!)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