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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메르스 사태, 생명과 건강의 권리주체로 서는 것이 우선!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 6월 3일 현재 30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중 2명이 사망했다. 추가감염을 막기 위한 보건당국의 방역조치로 격리된(자택격리포함) 사람도 1300명을 넘어섰다. 메르스가 발견된 중동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은 정부 스스로 시인한 초동대처 미흡이 중요한 원인이다. 전염병 확산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초기 방역이다. 그런데 질병관리본부는 최초 환자와 진료의사가 요청한 메르스 확진 검사를 한 차례 거부했고, 재차 강하게 요구하자 ‘메르스가 아닐 경우 병원 측이 책임지라’는 단서까지 달며 겨우 검사를 실시했다. 결국 이틀 정도 뒤에야 국가 방역체계는 작동을 시작했지만, 격리 대상자를 같은 병실 입원 환자-보호자로만 제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2차 감염자는 같은 병동의 환자와 보호자들이었고 이들에 대한 방역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사이에 메르스는 확산되었다. 대규모 인구가 밀집해 생활하고 광범위한 교통수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100% 방역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너무나 명백한 정부의 초동 대처 실패가 메르스 확산의 주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만약 보건당국이 같은 병실이 아닌 병동으로 격리 대상자를 늘려서 2차 감염자 격리에 성공했다면 메르스 사태는 해결되었을까? 격리 대상자는 대폭 줄고 3차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불안과 혼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게 달라졌을까 싶다.

공동체 성원의 건강, 안전 그리고 권리

2012년 중동에서 발견된 메르스는 아직까지 치료제나 예방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신종 전염병이며, 중동에서는 치사율이 40%에 이르렀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분비되는 타액으로 전염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보건당국-전문가들의 적절한 정보제공과 국민들과의 상호소통을 거치지 않으면, 삽시간에 ‘건강한 사람도 치사율 40%에 이르는 치료 불가능한 공기전염 호흡기 질환’이라는 대공포로 발전한다. 보건복지부가 초기에 공기전염이 된다는 잘못된 정보를 유통시켰음에도 이에 대한 적절한 사과와 정정도 없이 공기전염설을 괴담으로 처벌하겠다고 나서니 사람들은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너무 익숙한 모습 아닌가? 2008년 광우병 촛불, 2010년 천안함,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정부는 괴담 유포자를 처벌하겠다고 나섰고, 사람들은 정부가 기필코 막으려는 이야기가 진실에 더 가까울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괴담 유포자’들이 생각하듯이 ‘괴담’이 정말 진실이거나 국민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통치-관리 대상으로 볼 때라야 가능하다. 특히 전문지식이 중요시되는 안보-보건-안전 분야에서 이런 태도는 더 두드러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의 초동 대처 실패는 단지 행정적, 기술적 문제나 실수가 아니다. 공동체 성원들을 생명과 건강의 중요한 권리주체로 사고하지 않은 채, 바이러스만 막아내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던 방역조치가 갖는 근본적 한계다. 먼저 메르스 사태에서 한국 사회는 적절한 정보 부족-불신에 따른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정부가 사태 초기 감염자를 중심으로 한 방역에만 골몰한 채, 국민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상호소통하면서 예방을 위한 대응요령, 메르스 질병의 증상과 경과, 감염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사회적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는 사태 초기에 보건의료인들과도 감염자 현황과 내원 현황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SNS상에서는 공무원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고 감염 예방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퍼졌다. 전염병은 바이러스의 전파라는 의학적인 현상이지만, 바이러스를 몸에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불안의 전파라는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불안은 적절한 정보로부터 배제되고 그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가 초기 감염자들에게는 달랐을까? 추측컨대 감염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역학조사는 검경의 피의자 심문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질병에 대한 적절한 정보가 없는 감염자, 밀접 접촉자들은 공포에 떨면서 누가 병문안을 오고 누구와 접촉했고, 어디를 갔는지를 가까스로 기억해내야 할 뿐, 적극적으로 자신과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누군가를 감염자로 낙인찍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건당국은 최초 환자와 같은 병실의 보호자를 놓쳤고, 같은 층의 병동으로 확대할 생각을 못했다.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격리자를 대하는 태도도 매우 우려스럽다. 국가격리병상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대다수 격리자는 자택격리자이다. 이들에 대한 관리감시가 철저하지 않다는 보도가 나오고 정부는 감염이 더 확산될 경우 국가기관을 소개해서 수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태도에서는 공동체 성원들의 건강회복과 사회복귀에 대한 고려를 찾기는 어렵다. 오로지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이들을 제대로 격리해야 한다는 의지만 넘친다. 자택격리자에 대한 관리감시강화가 아니라, 격리기간 치료는 물론이고 실직위험 및 생계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직장인들은 유급 휴직, 자영업자들은 실질적인 생계비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능력있는 정부가 아니라 생명, 생존, 안전에 대한 권리를!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에 대해 끔찍하게 무능한 정부라고 비판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정부는 무능한 정부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같다. 반대로 능력있는 정부였다면, 일 잘하는 정부였다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여론이 많다.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상황, 메르스 초동 대처 상황을 돌이켜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소한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능력있는 정부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메르스 감염 불안과 혼란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부와 자본이 관리감독하는 배를 돈 주고 탈 권리는 있지만, 어떤 이유로 사고가 발생하고 구조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알 권리는 없다. 우리는 전염병이 발생하면 감염되거나 격리되거나 공포에 떠는 당사자가 되지만, 이 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는지, 현재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알 권리는 없다. 어차피 전문지식도 없는 사람들이니 정부 지시에 따르고 운 좋으면 감염을 피하면 될 뿐이다. 자신의 생명과 생존, 안전에 대한 정보, 참여, 결정권이라는 거창한 권리는 사실 이리도 소박하고 당연한 권리일 뿐이다.
덧붙임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