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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갈등론으로 권리를 왜곡하는 연금 논란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5월 6일로 종료된 4월 임시국회에서 어떻게든 밀어붙일 태세였던 공무원연금 ‘개혁’안 통과가 결국 좌초되었다. 5월 2일 여야가 역사적인 ‘합의’라며 자화자찬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공무원연금에서 절감된 재정을 국민연금에 지원하기로 하면서 현행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하기로 한 것에 청와대가 브레이크를 걸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 반대하며 보험료가 2배 오른다, 향후 미래세대가 추가로 져야 할 세금 부담이 1702조원이다 등등 정부의 폭탄론이 쏟아졌다. 공무원연금에서 국민연금으로 불씨가 이어 붙으면서 숫자를 둘러싸고 과도한 뻥튀기라느니 의도된 은폐라느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확한 산출은 기본이다. 그러나 지금 논란의 지형이 공적연금의 성격이나 역할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정치적 힘겨루기로만 비춰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경제활동을 통한 소득이 더 이상 없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 연금이다. 사회보장의 권리로서 공적연금제도가 운용된다. 누구나 노후에도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장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자 정부의 의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공적연금의 대표 격이 바로 국민연금이다. 군인, 공무원처럼 특수직 종사자가 아닌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되었다. 국민연금법은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하여 연금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공무원연금에서 국민연금으로 이어진 공적연금을 둘러싼 논의에서 정부는 자신의 책무를 가리고 지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공무원연금 개악 중단, 공적연금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출처: 참세상)

▲ 공무원연금 개악 중단, 공적연금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출처: 참세상)


국가 재정 고갈이라는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적극적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밀어붙였던 정부는 상대적으로 보장성이 높은 연금을 지급받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공무원들을 겨냥해왔다. ‘형평성’이라는 그럴싸한 말을 붙였지만, 공무원연금 개악으로 공적연금의 하향평준화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연금 논의와 함께 불거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10% 인상 방향에 대해 정부는 즉각 ‘세금 폭탄’이라며 선을 그면서 세대 간 갈등론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는 보험료율 인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2배가 뛰어오를 것이라는 주장과 1% 남짓만 오르면 된다는 주장으로 극단적으로 다른 수치를 제시하면서 보험료율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소득대체율 인상을 위해 보험료율이 얼마나 오를지 정확하게 따지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도마 위에 오른 보험료율 인상은 세금 인상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국민연금은 매달 보험료를 내는 방식으로 적립하는 것이다. 지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하자는 것은 한 마디로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으로서 역할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소득대체율 70% 지급으로 시작했던 국민연금은 2007년 개악 이후 현재 46.5%로 떨어진 상태이다. 거기에다 소득대체율을 매년 0.5%씩 자동삭감 하기로 하여 2028년에는 40%까지 낮아지게 된다. 연금개혁 논의에서 공무원과 비공무원의 갈등으로, 세대 간의 갈등으로 프레임을 설정하며 논란을 빚어왔던 정부이기에 공무원연금 논의에 왜 국민연금 논의를 끌어들여 논란을 키웠냐는 볼멘소리는 이를 분리 처리하고자 했던 속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공적연금에 대한 정부의 책무를 가리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게끔 하면서 사회적 연대를 뒤흔들려는 것이다.

현행과 같은 방식으로는 급여가 계속 삭감되면서 ‘노후 보장’은커녕 ‘용돈’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할망정 기금 고갈설을 유포하며 불안을 조장하는 형국이다. 아니, 유일한 대책이라며 내놓은 것이 바로 공적연금에 기대지 말고 사적연금으로 알아서 갈아타라는 것이다. “공적연금에 크게 의존했던 유럽 국가도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노후소득 보장체계 확립과 자본시장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 한 외신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다층노후소득 보장체계’라 포장하여 정부가 밀고 있는 정책은 사실상 사적연금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2010년 12월 약 187조원이었던 사적연금 규모는 2014년 6월 약 245조원으로 1.8배 증가했다. 그리고 작년 8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노후에 대한 불안이 기업의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현실, ‘불안’조차 사고파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연금은 그 속성상 경제활동기간 동안 장기간에 걸쳐 적립하게 되고, 은퇴 이후 장기간에 걸쳐 지급받는 복잡한 수입-지출구조를 갖는다. 그리고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에서 보듯이 직업군에 따라 소득대비 적립율과 적립기간이 달라지므로 최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연금 논란은 해당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문제는 연금이 이렇게 복잡한 재정 지출 정책사안이 되면서 사회적으로 연금이 갖는 의미와 적절한 역할에 대한 논의마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수식을 들고 나와서 세금폭탄이니, 기금고갈이니 하는 협박을 듣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 모두는 노후에도 존중받고 존엄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 '연금'은 바로 그 권리의 다른 이름이다. 이번 연금 논란이 정부 및 여야 간 힘겨루기로 그치게끔 놔두어서는 안 된다. 연금보험이나 연금정책에 한정되지 않는, 존엄한 삶을 위한 권리,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