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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교육의 시작과 끝, ‘좋은’ 질문 던지기

질문의 중요성, 질문의 유형화, 후속 질문 던지기 연습

이미 수년 간 교육 경험을 쌓은 인권교육가들이라고 해서 교육이 만만한 상대일 리는 없다. 오히려 참여자와 관계 맺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자기 한계와 마주치기도 한다. 훌쩍 넘어서기 어려운 벽 앞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교육을 진행한 후 더 이상 짜릿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 인권교육가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그 숨고르기의 시간을 동료와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서 등을 긁을 수도 있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쓱쓱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면 훨씬 더 시원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권교육센터 ‘들’은 올해 초, 흩어져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권교육가들을 모아보는 연대 사업을 기획했다. 교육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역량강화 과정은 지속적으로 운영해왔지만, 일종의 중간 점검 형식의 워크숍을 준비한 것은 처음이었다. 장애운동, 지역운동 등의 맥락 속에서 인권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6개 단체가 모여 5월부터 준비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그 결실로 지난 달 <서로 등 긁어주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1) 이틀간의 연속 워크숍 여정의 말미를 장식했던 꼭지가 지금 소개하려는 ‘교육의 시작과 끝, 좋은 질문 던지기’ 프로그램이다. 제목 그대로, 인권교육에서 질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참여자와 말문을 트고 사유를 여는 시작점에도 질문이 놓여있고, 교육이 끝난 후 참여자가 고이 품고 갈 삶의 열쇠도 정답이 아닌 질문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가가 교육을 구성하는 단계에서도 질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것은 교육가가 참여자와 나누고픈 질문을 구조화하는 과정이다. 참여자가 현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질문을 생각해내고,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생각의 교류를 낳는 것이 인권교육에서 프로그램의 역할이다. 그러나 준비해간 질문(프로그램)만으로 교육을 채울 수는 없다. 참여자들의 삶의 서사를 교육가가 모두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참여자의 반응에 따라 즉시 질문을 이어가는 역량도 필요하다. 워크숍의 전반부를 '미리 준비해 가는 질문', 후반부를 ‘현장에서 즉석으로 이어가는 질문’으로 나누고, 각각의 목표에 부합하는 역량강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질문의 힘은 어디에?

질문의 힘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여는 강연’으로 워크숍의 문을 열었다. ‘여자니까~ 해야지, 청소년이니까 ~해야지’ 등과 같이 사회가 요구하는 존재의 자리가 부당하다는 것을 느끼며, 나의 존엄을 되짚을 수 있는 기회는 질문으로부터 열린다. “내 치마 길이를 왜 학교가 정하는 거야?”, “사장은 맨날 앉아만 있는데 왜 나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버는 거야?”와 같은 질문들의 언저리에서 인권은 움튼다. 그 밖에도 ▲ 인권감수성의 전제가 타인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것 ▲ 새로운 진실을 파헤치고 따져 묻는 과정도 질문을 통해 매개된다는 것 ▲ 인권(운동)은 행동과 실천을 통해 사회적 질문을 던져왔다는 것 ▲ 질문은 프레임을 선점하는 효과를 낳으므로 질문의 권력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것 ▲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한 출발점은 ‘온전히 듣기, 제대로 이해하기, 비로소 공감하기’에 있다는 것 ▲ 자기 삶을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여는 것이 교육 속 질문의 역할이라는 것 ▲ 기존의 질서와 긴장을 벼리며 사회적 각본에 갇혀 있던 진짜 이야기(서사)를 불러 세울 수 있도록 질문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 ▲ 참여자의 갈증, 의구심, 궁금증 등을 외면하지 않고 그/녀들의 질문에 동행하는 것의 중요성 등을 이야기했다.

미리 준비해 가는 질문: 교육 속에서 던지는 질문을 유형화 해본다면?

질문의 중요성을 서로 되새긴 후, 워크숍에 모인 교육가들의 지혜를 모아볼 수 있는 시간으로 이어갔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참여자들과 인권을 논하기에 괜찮은 질문들이 교육가 각자에게 남기 마련이다. 워크숍 준비 모임이 사전 논의 과정에서 ‘내가 교육 때 자주 던지는 질문’을 모아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질문들의 유형을 분류해 보았다. 이를 본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과 간단히 공유한 후, 각각의 유형별로 효과적인 질문들의 예시를 채워가는 공동 작업을 했다.


유형별 예시들을 모아보니, 참여자들의 마음과 머리를 흔들기 위해 교육가들이 어떤 식의 노력을 기울이는지 파노라마처럼 드러났다. 도입형 질문의 예시로 등장한 ‘하루 중 언제,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와 같은 질문은 인권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고도 쉽게 인권적 삶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참여자들을 안내할 수 있다. ‘시설은 00이다’와 같은 완전 열린형 질문은 참여자들이 시설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과 생각을 그러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참여자들이 쏟아낸 이야기를 그저 확인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그 느낌과 생각을 인권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교육가가 적절히 해낼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질문이다.

이런 식으로 유형별 질문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조건을 나누다 보니, 준비 모임이 마련한 분류가 딱 떨어지는 분류가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임의적 분류에 지나지 않으며,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에 따라 같은 질문이 다른 유형에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을 공유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이어가는 질문: 발화자의 서사 분석, 후속 질문 연결하기

참여자가 용기 있게 건네 온 이야기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서는 이야기 속에 담긴 가치를 제대로 해석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이어가는 질문’ 꼭지는 구술 인터뷰 기록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일대일로 대면해서 진행하는 구술 인터뷰와 다수의 참여자가 동시적 대화를 나누는 인권교육을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발화자의 서사 구조를 분석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더 잘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의 기술을 꼽아보는 데는 보탬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몇 가지 구술 인터뷰 기록을 발췌해 모둠별로 제공했다. 일종의 ‘연습 문제 풀이’ 훈련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1] 19세 탈학교 청소년의 자기 역사 구술/ [이야기 2] 경증의 장애를 가진 여성의 차별 경험 구술/ [이야기 3] 학교 현장에서 학생인권이 강조되는 흐름이 못마땅한 교사의 교육관 구술 기록을 받은 각각의 모둠은 ▲ 발화자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 어떤 이야기를 청자에게 건네고 싶은 것인지 ▲ 발화자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끌어내기 위해 던질 수 있는 후속질문은 무엇이 있는지 꼽아보는 활동을 했다.
<활동예시>2)

[이야기 2: 장애 여성_ 이숙]
출처: 수신확인 (인권운동사랑방 편, 오월의 봄, 2013) 요약 발췌 및 재구성

“...이력서를 쓰면서 장애인 칸에 표시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지만 사는 데 불편함은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는 게 걱정이었죠. 사람의 첫 인상에서 외모가 큰 비중을 차지해서 그런지 면접을 보러 가면 “한쪽 눈이 안 보이시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어보는데 저를 걱정해서 물어본 것 같지는 않아요. …중학교 때 생각이 나네요. 저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거의 친구들과 이야길 하지 않았어요. 그때 우리 반에 소위 왕따 같은 애가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담임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니 “넌 다른 애들이 왕따 시키지 않는 걸 고마워해야 되는데 너도 왕따를 시키네”라고 말했어요. 그때 제가 왜 왕따를 당하지 않는 걸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학교에 가면 애들이 말을 걸지 않아도 쳐다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어요.…고등학생이 되니 반 애들이 점점 예뻐졌어요. 그래서 인지 내 눈모양이 못 생겨 보이고 우리나라는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얼굴이 못 생긴 것 같아 콤플렉스가 생겼죠. 내가 못 생겨서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어떤 남자애도 저같이 생긴 애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았어요. 요즘은 콤플렉스가 없어졌지만 누가 나에게 예쁘다고 하면 쉽게 마음을 열어요. 예쁘다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지금도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면 저와 같은 치료를 받는 중고등학생 애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죠. 걱정 하지마. 너는 예뻐. 너는 건강해. 너는 그냥 다를 뿐이야. 제가 예쁘다는 말을 기다렸던 그때처럼 그 아이에게 반가운 말을 건네고 싶어요. 제 스스로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처럼, 평범함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저보다 짧기를 바라죠.”

이숙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로 모둠에서는 타인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존감’을 꼽았지만, 타인이나 사회의 기준으로부터 멀어져서 혼자 사는 개인은 없다. 사회적 시선을 내면화하고, 끊임없는 자기 검열에 괴로워하는 것이 ‘평범한’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니던가. 발화자 스스로도 ‘예쁘다’는 말에 자신이 지나치게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한 말들에 거리두기 할 수 있는 ‘지금’이 되기까지 이숙은 수많은 자기와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을 거쳐 왔을 것이다. 이숙은 청자들에게 장애여성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순적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애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틀로도,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 구조를 바꾸면, 장애는 사라질 것이다’는 틀로도 이숙의 삶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숙이 겪고 있는 모순 자체에 집중해 장애 여성의 삶의 조건을 충실히 읽어낼 때, 그 이후의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참여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인권교육을 하다보면 사회의 주류적인 기준들이 도리어 자기 삶을 배반하고 있음에도, 인권의 언어를 불편해 하는 참여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저 꼰대 같은 인간이 내 교육을 망치고 있네.’라거나, ‘저 애들은 왜 저렇게 무기력하게 살지?’라는 마음이 움트는 순간, 참여자와 교육가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와 같은 책 제목처럼, 오히려 교육가는 궁금해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가가 인권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들 때, 참여자들은 드높은 마음의 방어벽을 세우고 교육가의 언설들을 밀어낼 뿐이다. 인권교육은 참여자가 그간 키워온 삶의 관점을 ‘리셋’ 시키고, 그 자리에 ‘인권’을 주입시키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폭력에 가깝다.) 자신의 관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느끼고, 무엇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일지 끊임없이 벼리는 과정을 안내하는 것이 인권교육이다.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다른 해석을 거쳐 되돌려 주는 작업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 통역의 과정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질문이 아닐까 한다.

때로는 교육가의 시야를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가 교육 중에 펼쳐지기도 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야기는 외면하고 싶은 유혹 앞에 교육가는 늘 흔들린다. 당혹감에 휩싸인 교육가에게 등대가 될 수 있는 것 역시 질문이다. 참여자의 힘을 믿고, 교육의 열쇠를 참여자와 함께 나눠 쥐겠다는 용기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고, 당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초대하고 싶다고. 질문을 통한 지평의 확장. 인권교육가 역시 교육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는 건, 이런 장면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1) 2014년 10월 31일, 11월 1일 이틀간 진행된 전체 워크숍의 흐름 및 내용은 인권교육센터 ‘들’ 홈페이지(http://www.dlhre.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 기사의 분량 상 실제 활동에서 제공한 사례의 일부만을 싣습니다.
덧붙임

한낱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