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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문제적 행동’의 다른 이름을 찾아라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권리로서 옹호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좀체 이해하기 힘들거나 우려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타인들과 끊임없이 마주치게 된다.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흘려보내면 그뿐이겠으나, 일생을 혹은 일정 기간 삶을 나누는 관계라면 이만저만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에게만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문제’로 지목할 권력이 주어져 있는 경우라면, 판단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돌봄이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는 사회복지사나 교사, 부모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 행동은 정말 문제인가, 아니면 나의 가치관이나 제한적 경험이 어쩌면 자연스러울지 모르는 인간의 행동을 문제로 지목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설령 그 행동이 문제적일지라도 문제 상황이 낳은 결과적 반응이라면, 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상황이나 조건이 문제로 지목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이 사라진 돌봄이나 교육은 폭력적 관계를 낳기 쉽다. 인권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적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이들을 만나는 인권교육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적 행동’과 권리라는 단어의 어색한 조합

최근 몇 차례 청소년 복지기관 종사자들과 만난 교육에서 청소년들이 보이는 ‘문제적 행동’에 권리의 이름을 붙여 옹호해보는 연습을 해보았다. 보육원, 쉼터, 그룹홈, 거리청소년 지원기관 등에서 일하는 이들은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청소년들의 ‘문제적 행동’을 이유로 청소년 인권에 대한 지지를 저어하곤 한다. 그이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고민하다, 만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서 이해하기 힘들거나 걱정되는 행동이 있다면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말에 쉽게 굴복하는 것이 걱정된다는 아주 훌륭한(?) 걱정을 제외하곤, 대개 사회 통념상 ‘문제행동’으로 분류되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 설명] 청소년 복지기관 종사자들이 '문제적 행동'으로 떠올린 행동의 목록들

▲ [사진 설명] 청소년 복지기관 종사자들이 '문제적 행동'으로 떠올린 행동의 목록들


“애들이 왜 그렇게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떼를 지어 다닐까요?”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 밤늦게 야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안 돼죠.”
“술․담배를 많이 하는 게 걱정돼요.”
“자립할 준비를 해나가야 하는데 대책없이 사는 걸 보면 속상해요.”
“센 척 하기, 세상 다 살아본 듯이 구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아요.”
“왜 그렇게 어른들과 맞먹으려 드는지 모르겠어요.”
“자해를 하는 게 걱정돼요.”
“애들이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지 모르겠어요.”
“자기가 잘못해놓고서 왜 계속 변명만 해대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는지 이해가 안 돼요.”

쏟아져 나온 얘기들을 대략 유형화해보니 ①위험한 행동 ②자해 또는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행동 ③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대책 없이 살기 ④무책임한 또는 쉽게 포기하는 행동 ⑤가오 잡기(센 척 하기) ⑥욕을 섞어 이야기하는 등 품위없는 행동 ⑦떼쓰기(고집 피우기) ⑧윗사람에게 예의없이 구는 행동 정도로 분류가 되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청소년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그/녀들의 변화를 기대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고민이 되겠다 싶은 행동들이다. 그 행동을 대하는 대안적 접근을 곧장 제시하기보다 참여한 이들 스스로 다른 접근법을 찾아볼 기회를 갖기로 했다. 모둠별로 하나씩 ‘문제적 행동’을 택해 그 행동을 권리로서 옹호할 수 있다면, 그 근거를 최대한 찾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위험한 행동을 할 권리? 자해할 권리? 미래에 대한 대책 없이 살 권리? 가오 잡을 권리? 품위없이 행동할 권리? 예상대로 참여자들은 평소에 잘 이해하기 힘들었던 행동에 권리라는 단어까지 붙여놓고 나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 세 가지 ‘징검다리 질문’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진행해봐 달라고 요청했다. ‘문제적 행동’을 있는 그대로 옹호하기보다 그 행동의 밑바닥에 있는 바람과 행동의 맥락을 파악해 보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였다.

[논의를 돕기 위한 징검다리 질문들]

☞ 사람은 어떨 때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가?
☞ 그 행동을 통해 청소년들은 어떤 바람이나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가?
☞ 이 권리의 다른 이름을 찾아본다면,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문제적 행동’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

모둠별 논의가 끝난 다음, ‘문제적 행동’을 옹호할 수 있는 근거를 발표하고 다른 모둠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모둠 참여자들에게는 그 권리를 우리가 함께 차리는 ‘청소년 인권 밥상’에 올릴지 말지 결정할 권한을 부여했다. 만장일치 또는 명백한 반대가 없는 합의된 권리만이 공동 밥상에 올라갈 수 있다. 소수의 반대 의견도 충분히 고려하고 논의과정에 초대하기 위해서다. 논의 결과 대다수 권리들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질문과 우려 속에 반대 의견에 부딪혀 공동 밥상에 올라가지 못했다. ‘문제적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를 깊이있게 따져보는 과정도 어려웠지만, 다른 권리의 이름으로 번역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적 행동’의 다른 이름을 함께 찾아보려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얻은 지혜는 특별한 울림을 선사했다.
[사진 설명] '가오 잡을 권리'를 제외하곤 다수의 '문제적 권리'들이 반대에 부닥쳤지만, 다른 이름을 찾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 [사진 설명] '가오 잡을 권리'를 제외하곤 다수의 '문제적 권리'들이 반대에 부닥쳤지만, 다른 이름을 찾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위험한 행동을 할 권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행동 자체가 위험하기보다 위험한 환경이 문제이고, 어쩌면 모험 자체가 지닌 위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논의를 이어나가다 보니, ‘사회는 위험이라 부르고 당사자에게는 모험일 수 있는 행동을 통해 경험하고 배울 권리’라는 새로운 이름이 발견됐다. 이들의 모험이 비난이 아닌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모험의 자제가 아니라 위험 환경의 변화가 필요했다. ‘자해할 권리’라고? 이 위험천만해 보이는 권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자해 행위가 주변 사람에게 보내는 신호에 주목하여, ‘긴급한 도움을 요청하고 응답받을 권리’라는 이름을 찾아주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눈앞이 깜깜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자립을 명분으로 일정 나이만 되면 개인의 준비됨에 관계없이 곧장 그룹홈에서 내모는 제도야말로 정녕 문제가 아닌가. 그럼에도 왜 우리는 청소년에게 대책없이 산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데만 익숙할까. 이 같은 자성이 오가면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대책없이 살 권리’에는 ‘타인의 기준과 속도, 제도의 한계 등을 이유로 닦달당하지 않을 권리’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이 어떨 때 센 척하게 되는가를 살피면서 ‘가오 잡을 권리’는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권리’로 변신해 유일하게 참여자 모두의 합의 하에 공동 밥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룬 발견들

이렇게 문제적 행동의 다른 이름을 찾아가다 보니 두 가지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하나는 우리가 찾은 새로운 이름의 권리들이 충분히 보장되는 사회라면, 굳이 ‘문제적 행동’이 출현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 저마다의 연약함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환경에서라면 굳이 ‘가오’를 잡고 센 척할 필요가 없다. 나의 바람이 수용될 거라는 안정감, 기다리면 내 차례도 어김없이 돌아올 거라는 신뢰적 관계가 형성돼 있다면, 굳이 지금 당장 내 요구를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상대방의 허락을 구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약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떼를 쓰지 않고도 곧장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제적 행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외려 권력의 불평등과 문제적 환경/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결국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위험해 보이는 권리들을 옹호한다는 것은 그런 상황에 내몰리지 않을 권리를 옹호한다는 의미다.

또 하나는 새로운 이름의 권리를 찾는 순간, 어떤 ‘문제적 행동’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는 사실이다. 가출할 권리의 다른 이름은 ‘살만한 곳에서 살 권리’일 수 있다. 살만하지 않은 곳을 떠나 진정한 ‘집’을 찾아나서는 행동은 문제행동이 아니라 탈출이자 저항이자 자기 권리옹호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가출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살만한 곳을 찾아 떠나는 행위가 아니라 그 권리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제도니까.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는 구조의 피해자이면서, 구조가 받아야 할 비난마저 대신해서 받아야 하는 억울한 위치에 놓여있다. 반면 그/녀들을 ‘돌보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는 대개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자원을 철회할 힘이, 그 철회를 정당화할 우아한 명분이 주어져 있다. ‘문제적 행동’의 다른 이름을 찾는 과정이 진단의 폭력성과 관계의 불평등을 성찰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구멍 숭숭에다 뒤틀린 세상에 대한 욕지거리를 함께 나누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덧붙임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