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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인간화를 위하여

어느 인권단체나 마찬가지겠지만 필자가 일하는 곳에도 감옥 수용자들의 편지가 날마다 도착한다. 병든 수용자들이 겪는 부실한 의료 서비스, 수용자를 길들이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조사수용과 징벌, 서신 검열, 낡은 시설과 과밀수용, 고압적인 교도 행정, 갖가지 권리구제수단의 덧없음, 단식투쟁 등 엇비슷한 사연을 보면 요즘 감옥 돌아가는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답장을 하기 위해 교도소에 연락해서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다보면, 며칠 후에는 감사하다는 수용자의 편지가 도착할 때가 있다. 어느 틈에 문제가 해결됐단다! 이렇게 그다지 품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답답한 일이 풀리면, 뭐랄까, 나름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그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교도소의 다른 수용자가 엇비슷한 문제 때문에 괴롭다는 사연이 도착했다. 몇 달 후에는 처음 문제를 알렸던 수용자가 똑같은 문제가 또 발생했다고 편지를 써왔다. 교도소 내부 사정을 외부에 알렸다고 드러나지 않게 앙갚음을 당하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당장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공무원 특유의 일처리 방식이 그 뒤에 있었다. 어차피 수용자에 대한 처우는 교도소장의 넓은 재량에 맡겨져 있으니, 교도관이 수용자 한 명 정도가 원하는 것을 잠깐 허용해주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니 보람은커녕 지쳐만 갔다. 잠시 다른 수용자에 비해 특혜-실은 특혜가 아니라 현행 법령이 정한 수준의 처우였을 뿐이지만-를 얻었던 그 수용자도 다른 수용자가 겪는 부당한 대우까지 관심을 쓰지는 못했다.

몇몇 인권단체에서 감옥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감옥이 워낙 사회로부터 단절된 공간이어서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응은 하더라도 문제의 뿌리까지 들춰내기에는 시간도 사람도 부족하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무슨 인권이냐’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결코 녹녹하지 않다. 인권 침해를 받은 수용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처우가 인권 침해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자신의 권리에만 갇혀 다른 수용자의 권리에는 관심을 쓰지 못하는 한, 문제는 잠시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결코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에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천주교인권위원회 엮음, 경계출판사, 3만9000원, 아래 법령집)을 발간한 것은 이런 쳇바퀴로부터 일단 벗어나기 위해서다.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표지 입니다.

▲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표지 입니다.


수용자의 일상을 규율하는 46건의 법령

법령집에는 2013년 7월 9일 기준으로 수용자들의 처우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 시행령, 훈령, 예규 등 모두 46건의 법령을 담았다. 1부에는 수용자 처우의 최저선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엔이 정한 국제인권규범이 포함됐다. ‘유엔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과 ‘모든 형태의 억류·구금하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 그것이다. 2부에는 수용자 처우의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을 비롯하여 교도관의 직무에 관한 사항을 정한 ‘교도관직무규칙’ 등을 담았다. 또한 교도작업, 민영교도소, 디엔에이 채취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시행규칙도 여기에 수록했다. 3부에는 2부에 담긴 법령이 위임한 사항을 시행하기 위해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정한 훈령과 예규를 담았다. 여기에는 △급식·영치·구매 △의료 △작업 △사회복귀 △분류·가석방 등 수용자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법령을 수록했다.

4부에는 19세 미만으로 소년교도소에 수용된 수용자와 소년법에 따라 소년원에 수용된 보호소년에 관한 법령을 담았다. 5부에는 보호감호와 치료감호 판결을 받은 피보호감호자와 피치료감호자에 관한 법령을 수록했다. 보호감호제를 규정한 사회보호법은 2005년 8월 폐지되었지만, 부칙의 경과조치에 따라 폐지 이전에 이미 확정된 보호감호 판결의 효력은 유지되어 아직도 보호감호 집행을 받고 있는 피보호감호자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이 책에는 종전 ‘사회보호법’ 가운데 보호감호 집행과 밀접하게 관련된 조항을 따로 수록했다.

6부에서는 앞서 수록된 법령을 바탕으로 감옥 수용자가 실제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안내했다. 권리구제 방법으로 △정보공개청구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고소·고발 △국가배상청구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제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기존 판례·결정례를 수록했다. 그동안 많은 수용자들이 구금시설의 위법·부당한 처우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 등을 제기했다. 권리구제에 성공했든 실패했든, 이들이 만들어 낸 판례·결정례는 법률에 익숙하지 않은 수용자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부록에는 분량 문제로 이 책에 본문 전체를 담지는 못했지만 필요할 때 수용자들이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법무부 소관 훈령·예규의 전체 목록을 수록했다. 수용자들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도록 감옥 관련 인권사회단체와 변호사 단체 등의 주소록도 제공했다. 부록에는 판례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법원에서 운영하는 ‘판결서 사본 제공 신청 제도’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권리구제 절차를 밟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수용자들이 직접 구하기는 어려운 △전국 교도소·구치소·소년원의 주소록 △법원과 검찰청의 주소록 △법원의 관할 정보 △교도관의 직위·계급별 표장 등 유용한 자료도 부록에 수록했다. 마지막으로, 감옥에 관한 학계의 전문적인 자료를 얻고 싶은 수용자를 위해 관련 논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 보고서 등 참고문헌의 목록도 담았다.

법무부에서 만들었어야 할 책

이런 정보는 감옥 바깥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수용자들은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법령을 접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2000년대 초반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당시 행형법 및 관련 법령을 모아 「감옥관련 법령자료집」과 「감옥관련 훈령예규집」을 발간했다. 그러나 2007년 행형법이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로 전면 개정됨에 따라 하위 법령, 훈령, 예규 등의 체계와 내용이 거의 전부 바뀌었다. 이후 감옥 관련 법령집이 따로 출판되지 않아 수용자들이 법령을 구할 길이 마땅치 않았다.

이 법령집이 현행법도 보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종종 무시되는 여러 권리를 수용자들이 스스로 찾아 나가는 토대가 되었으면 한다. 불합리한 법·제도는 수용자들이 스스로 문제 제기를 하여 고쳐나갈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현행법은 침묵하고 있으나 감옥 처우의 인간화를 위해 새롭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찾아 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의 처우를 규정하는 법령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만 생활해야 하는 수용자들 앞에서 법치주의를 운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책은 민간단체가 아니라 감옥을 관리하는 법무부에서 마땅히 만들었어야 한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법무부가 감옥 처우의 인간화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덧붙임

강성준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