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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도의 인권이야기] 재벌들과 공단사업주들의 경영‘비법’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노동자들끼리 수군거리는 말이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기 회사들은 전부, 임금 떼먹는 회사들뿐이라는 거다. ‘체불임금 사업장이 그렇게 많나?’ 싶었는데 꼭 그런 의미만도 아니었다. 임금은 쥐꼬리만큼만 주고, 그거에만 의존해서 이윤을 남겨먹는 회사가 대다수라는 의미다. “기술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요. 전부 임금 떼먹어서 회사를 운영해요.”

‘중소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 입찰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하청물량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원하청 관계를 이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업문화, 경영문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이렇다. 원청회사가 원자재 단가 계산해 주고, 인건비 계산해 준다. 그리고 건물임대료와 기계의 감가삼각비는 물론, 사업주가 챙겨야할 몫 ― 회사의 영업이익률, 심지어는 일정한 불량률까지 계산해 준다. 그렇게 해서 ‘부품 단가’가 결정되면, 이걸 할 수 있는 중소기업주들이 그걸 받아서 사업을 한다. 중소기업주들이 이걸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 원청의 하급관리자가 와서 생산기술지도라는 것도 해준다. 그래도 못하면 퇴출당한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면 중소영세사업주―공단사업주들의 이익률은 고정되어 있는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들도 잔재주를 부린다. 인건비를 더 줄이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원청이 예상한 인건비보다 더 적은 임금을 줘도 되는 노동자를 부린다. 하나 더, 원청이 예상한 인원보다 더 적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해 물량을 생산한다.

원청이 예상한 인건비가 최저임금보다 높으면, 더 적은 임금을 줘도 되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법은 쉬운 편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쌔고쌨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청이 책정해준 인건비가 최저임금과 가까우면 이 방법은 녹록치 않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거나,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거나, 잔업․특근수당을 덜 주거나 등등, ‘불법을 감수’ 해야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임금을 적게 주는 방법이 녹녹치 않으면, 공단의 사업주들은 임금지불총액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인원을 덜 뽑는 것이다. 요즘 공단사업주들은 이 방법을 많이 활용한다. 20명이 할 일을 15명이 하게하고, 50명이 할 일은 30명이 하게끔 한다. 그래서 간혹 이런 진풍경이 벌어진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원청에서 감사하러 와요. 그러면 느닷없이 사무직들이 라인에서 일하기 시작해요. 총무부터, 대리, 과장들까지… 라인의 사람 수를 채우는 거죠. 원래 정해진 인원이 있나 봐요.”

“원청에서 품질검사 뜨거든요? 그러면 언니들은 정말 싫어해요. 속으로 욕하죠. 빨리 가라고요… 일을 천천히 해야 하거든요. 손놀림도 달라지고…. ○○ 전자 납품기준에는 ‘이 제품은 이렇게, 이런 속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나 봐요. 그 사람들이 휙 둘러보는 동안은 그렇게 일해야 하고, 그러면 그 시간에는 물량을 절반 밖에 못 만들어요. 품질검사하러 온 원청 관리자들이 떠나야 그 때부터 평소처럼 일할 수 있죠.

그런데, 그날은 일이 늦게 끝나요. 그날 물량을 다 채워야 하거든요. 원청관리자가 있으면 절반밖에 못 뽑아요. 밀린 물량 다 채우려면 그만큼 늦게 퇴근해야 하죠. 그래서 원청관리자 오는 거 싫어해요.”


공단사업주들이 제 날짜에 물량 납품하고, 불량률 줄이는 것에 민감한 이유는 대부분 이 때문이다. 물량을 제 때 생산만 해내고, 불량만 만들지 않으면, 원청이 시비를 걸지 않는다. 그런데 적은 인원으로 이걸 하려니 공단사업주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고 그래서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노하우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다. 욕하기, 다그치기, 협박하기, 으름장 놓기 … 노동자들이 못 견디고 나가면, 빠른 시간 내에 그 자리에 일할 다른 사람 구하기 등등. 맨 마지막 과제는 꽤 힘든 일인데, 그래서 공단사업주들에겐 (인력)파견업체가 정말로 고마울 뿐이다.

“임금 떼먹고 사업하기” 이것이 공단사업주들의 경영비법이다. 더 낮은 저임금 노동자를 부리려는 ‘비법’이 개별노동자의 임금을 떼먹는 방법이라면, 더 적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해 내는 ‘비법’은 원청이 산정해 준 임금전체총액을 떼먹는 방법이다. 공단노동자들이 수군수군 거리는 말들은 이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이런 방법들은 좀 찌질 해 보인다. 기업이라면 무릇, 크게 투자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서,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고…, 그렇게 해서 인류에 도움이 되고… , 뭐 이래야 최소한, 기업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항의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항의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4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5,210원으로 확정되었다. 8월 2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렇게 고시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현재 최저임금대상 노동자의 비율이 14.7%에 이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2014년에는 14.5%가 최저임금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잠깐 환기할 것이, 1988년 처음 최저임금제가 적용될 때 당시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대상은 4.2%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대상이 3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최저임금의 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상승률에 비해 대부분 낮았음을 감안하면(2001년부터 물적노동생산성 연평균 증가율은 6.2%이며, 최저임금 증가율은 6.0%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른 것은 결코 아니다. 경험적으로도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최저임금 노동자의 2013년 한 달 기본급이 101만원이라는 것은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다.

최저임금 영향대상이 확대된 것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최저임금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렇다면 중소영세사업장 ― 공단지역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것인데,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는 우리나라에 고유한 원하청 수직관계에서 비롯한다.

앞서 예기한 것처럼 중소영세사업장의 임금금액은 이미 납품단가에 ‘비용’으로 반영되어있다. 그리고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비율은 훨씬 더 높다. 재벌회사들이 매긴, 납품단가에 반영된 임금‘비용’이 최저임금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적용대상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2014년 시간당 최저임금 5210원, 이 쥐꼬리만한 금액을 놓고도 경영계는 벌써부터 볼멘소리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99%가 근무하는 영세 기업·소상공인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고, 해당 근로자들의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거짓 선동하고, 으름장 놓고, 협박해서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독점적 이윤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것이 장기저성장시대, 재벌들의 핵심적인 경영기법 중 하나다.

그렇다면, 공단사업주들과 재벌들의 경영비법 사이에 근본적 차이란 있기나 한 것인가?
덧붙임

박준도 님은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