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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최저임금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최저임금 노동자 증언대'에 올라선 노동자들

올해 9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액이 이달말 결정될 예정인 가운데, 최저임금액 인상분에 생사를 건 '밑바닥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민주노총,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 23개 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가 16일 오후2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최저임금 노동자 증언대'(아래 증언대)를 연 것.

1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증언대

▲ 1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증언대



"임금이 오른다면 일은 힘들어도…"

증언대에 나선 노동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현행 최저임금액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8개월 전부터 한달에 65만원을 받으며 아파트 청소용역으로 일해온 여성노동자 윤 아무개 씨는 "아무리 힘들고 돈이 적어도 이 돈이라도 벌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은 하고 있지만 65만원은 너무 낮은 임금"이라며 "나를 포함하여 이러한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 적은 급여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윤 씨는 "그저 바람은 하나"라며 "임금이 오른다면 일은 얼마든지 힘들어도 좋겠"다고까지 말했다.

대치동 소재 한 아파트 경비로 일하는 60세의 서 아무개 씨의 근무시간은 아침 6시30분부터 다음날 6시30분까지 격일제. 경비 한명이 100세대를 담당하는 이곳의 한달 기본급은 48만원에 불과하다. 서 씨는 "겨우 1평도 안되는 좁은 관리실에서 잠을 못자고 24시간 일을 하다보니…남들처럼 주변 경조사도 챙기기 힘들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은 생각조차 못한다"며 "자식들이 장성한데 부모로서 결혼준비도 못시키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토로했다. 서 씨는 "이 아파트 시세가 10억이 넘는데 주민들은 경비를 종으로 보며 쓰레기 분리까지 시킨다"며 "나는 노동자 중에서도 최고로 질이 낮은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경총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한 최저임금 요구안은 시급 2925원으로 주40시간 기준으로 보면 한달 61만1325원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노동계의 최저임금액 요구안은 81만5100원으로 지난해 5인이상 상용직 노동자의 정액급여 평균의 50%이다. 이는 전가구 생계비의 35.4%,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출한 29세 이하 단신노동자 생계비의 71.8%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또한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지난 2월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아래 단병호안)은 "최저임금은 전체근로자 임금 평균의 50% 이하가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했다. 이는 저임금노동자의 최저생계 보장과 소득격차 해소라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에 맞게 노동소득 분배율을 고려한 것. 하지만 4월 국회 법제사법위 심의 결과 나온 최저임금법 대안에서는 이 규정이 삭제된채 통과돼, 저임금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위원회만 쳐다보게 됐다.


원청업체가 하청노동자 최저임금 책임져야

증언대에서는 최저임금의 현실화와 함께 최저임금제도의 개선과제도 제기됐다. 지하철 차량기지 청소용역 노동자 이 아무개 씨는 "현 최저임금 수준이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없을만큼 낮은 것도 문제지만,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는데도 이를 적용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2004년 9월 최저임금 인상 이후 용역업체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니 원청인 지하철공사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이 나와야 지급한다고 하고, 원청인 지하철공사에 책임을 물으면 모든 법적 책임은 용역업체에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단병호안은 "사업이 수차의 도급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경우에 하수급인이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에 미달하는 금액을 지급한 때에는 그 직상수급인은 당해 수급인과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국회 법제사법위 심의 과정에서 "2차례 이상의 도급으로 사업을 행하는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 해석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씨는 "청소용역의 경우 2차 도급에 해당되는 사례가 거의 없어, 잘못하면 원청의 연대책임 규정이 거의 유명무실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이 주40시간제에 따른 임금삭감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이 주40시간제에 따른 임금삭감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주40시간 도입으로 임금깎여"

올해 7월 300인 미만 사업장에 실시되는 주40시간 노동제는 내년에는 1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이 씨는 "지난해 1000인 이상 사업장에 도입되었을 때 철도공사와 같은 공기업에서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임금삭감으로 최저임금 인상분 지급을 회피했다"고 고발했다. 증언대에서 소개된 한 청소용역 노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5년째 대학에서 청소일을 하면서 최저임금을 밑도는 58만원을 받는 그는 "올해 2월부터 퇴근시간을 1시간 당기라고 해서 모두들 좋아했는데…가만히 보니까 8시간에 해야할 일을 결국 7시간 안에 다 해야 하니까 그만큼 더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주44시간 노동이 아니어서 시급으로 따지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게 되는 것. 그는 "예전에는 휴식시간도 조금씩 근로시간에 포함시켜줬는데 이젠 아예 그런 것도 없다"고 작업장 분위기를 전했다.

저임금노동자들의 임금보전 기능을 해온 월차·생리수당의 폐지 문제도 심각하다. 증언대에서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이 소개한 한 여성노동자의 경우 주44시간 사업장에서 현행 최저임금인 64만1840원이 기본급인데 월차·생리수당을 합해 실수령액은 월 68만7천280원. 하지만 주40시간제가 도입되면 월차·생리수당이 사라져 최저임금이 10% 인상된 65만2916원이 되면 실제 받는 임금은 현재보다 오히려 줄어든다. 심지어 20% 인상된 71만2272원이 되어도 올해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 전망치의 합계 7%를 고려한 실질임금 보존액인 73만5390원에 비해 오히려 삭감되는 것.


"고발은 꿈도 못 꾼다"

증언대에서는 사업주의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피해받아도 고발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냈다. 형광등 제조업체에서 1년동안 일했던 이주노동자 세레나 씨는 "최저임금조차 못받아도 추방 위협 때문에 어디 고발할 곳도 없다"고 털어놨다. 오전8시부터 오후9시까지 형광등을 조립하고 포장해 옮기는 일을 맡았던 그녀의 한달 월급총액은 식대까지 포함해 70만원. 토요일에는 오전8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요일에도 오전9시부터 12시까지 일했으나 연장근로와 휴일특근에 대한 어떠한 수당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고용허가제 이후 노동시간은 늘어났지만 오히려 임금은 줄었다"며 최저임금이라는 울타리에서마저 배제되는 이주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매주 금요일 전체회의가 열리는 서울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새벽집회를 열고 있다. 또 이달 28일로 예정된 마지막 전체회의에 앞서 27일 저녁 7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다음날 최저임금액이 결정될 때까지 노숙투쟁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