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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의 인권이야기] 진심에 대하여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학생운동 내에서 ‘진심’이라는 말이 잠깐 유행했던 적이 있다. ‘진심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더라. 이것은 내 진심이다. 진심을 믿어 달라.’라는 호소. 내 기억으로, 당시 학생운동은 NL파와 PD파의 분화 이후 NL파 내부에서도 분화가 보다 가시화되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한 일종의 ‘분열과 반목’의 시기에 학생회 선거에서 제기된 ‘진심’ 호소는 ‘여러 오해와 불신도 많지만 이것은 진심이니 제발 믿어 달라. 운동하는 사람끼리 사람을 불신하면 되나. 그러니 제발 찍어 달라.’라는 메시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에는. 나는 그 호소가 좀 이상하게 여겨졌다. 뭔가 잘 해보려는 그 사람의 진심에 대해서 그다지 의문스럽지는 않았다. ‘진심’인지 아닌지를 어차피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무언가 절박함은 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진심을 강조하게 된 배경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결코 작지 않았다는 말일 텐데, 그게 과연 ‘진심이니 믿어 달라’는 호소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문제가 누군가 일방적으로 진심을 불신해서 생긴 것도 아니었을 텐데, 정말 진심만 통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오히려 서로 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진정성 있게’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 선거 결과가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와서 보면 결국 ‘진심’은 그다지 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근 두 가지 결이 다른 상황에서 오래전의 그 ‘진심’ 담론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한 번은 최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논란에서 ‘당원을 믿지 못하나’란 말이 나왔을 때였다. 부정선거 논란에서 왜 갑자기 당원에 대한 신뢰 논란이? 당원을 믿으면 당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부실조사가 되고, 당원을 믿지 않으면 부정선거가 된다는 것인가? 어떻게 구조로서의 민주주의의 문제가 인식으로서의 당원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인지. 결과적으로 문제가 있든 없든 이미 작지 않은 논쟁이 일고 있는 만큼 문제가 제기된 지점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과 논쟁이 제기된 맥락을 근본적으로 짚을 수 있는 구체적인 분석, 그리고 이후 해결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어떻게 신뢰의 문제로 해결할 수 있나. 200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던 ‘진심’의 문제가 또다시 제기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인신공격과 폭력이라는 악의적이고 자멸적인 방식으로 제기되었으니.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그리고 또 다른 한 번은, (이 사례를 앞의 사례에 이어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매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최근 진행된 두 영화제를 접하면서였다. 서울환경영화제는 올해 영화제를 진행하면서 삼성물산의 후원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삼성물산이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참여하는 주요 회사라는 것이다. 제주 강정에서 추진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은 군사기지라는 측면에서 반평화적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자연유산인 구럼비 바위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반환경적이기도 하다고 누차 지적되어 왔다. 그래서 평화·인권활동가들은 삼성물산에 직접 항의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엄청난 손해배상액을 삼성물산으로부터 청구받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서울환경영화제에 대한 보이콧운동이 일기도 했다. 서울환경영화제뿐만 아니라 서울여성영화제가 삼성전자의 후원을 받는 것 역시 문제적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 재벌의 악명 높은 무노조원칙을 고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도 인정하지 않는 악덕 기업이다. 최근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젊은 여성노동자 이윤정 씨가 산재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뇌종양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서울환경영화제도 서울여성영화제도 영화제를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참으로 난감할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 누구보다도 환경운동과 여성운동의 입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한 고민에 대한 진정성이 결과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과정에서 주체들이 그러한 고민을 한 것과 안 한 것은 비록 같은 결과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 그러한 고민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전체적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업 진행 주체들의 고민 내용에 따라 상황은 매우 다르게 인식되고 또 해결방안도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결과적인 문제까지도 책임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치열한 고민과 여러 전략적인 구상이 있었다고 해도 이러한 영화제가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과 모순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는 결과는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과정은 과정대로 함께 고민할 몫이 있겠지만, 결과는 결과대로 누군가 책임질 몫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서울환경영화제와 서울여성영화제의 악덕 대기업 후원은 매우 아쉽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은 중요하다, 는 교과서적인 당연한 말. 게다가 뭔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건 기본이 아닐까? 물론 쉽진 않겠지만. 진심의 여부보다는 진심의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지. 종종 보이는 결과가 다가 아니라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맥락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게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결과를 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민의 과정과 진심만이 다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일의 결과는 그 자체로 현실에 개입하는 행위자가 되고 그것은 그 자체로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람의 문제만으로 치환될 수 없는 구조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결과가 되고 입장이 되는 것은 아닐지.
덧붙임

구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