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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핵발전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사회를 핵없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

자본주의와 천황제, 그리고 핵발전소

언뜻 보면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 이 3가지 주제에 대해 일본에서는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고 이를 뛰어넘기 위한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들이 많다. 천황제가 근대 일본의 국가, 관료사회는 물론 자본주의 형성에 크게 역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자본주의와 천황제는 현대 일본을 구성하고 있는 근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원주민에 대한 차별, 비정규직과 낙후한 지역주민들에 대한 차별을 포함하고 있고, 더 많은 이윤창출을 위해 무려 8차에 이르는 하청-재하청 구조를 갖고 있는 도쿄 전력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일본에서 핵발전소는 그간 일본을 구성해왔던 사회 근간으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않은 ‘시대가 낳은 괴물’이라는 관점이다. 따라서 핵발전소를 없애기 위해서는 천황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폐해에 대해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접근은 그간 탈핵운동이 견지하고 있었던 주요한 생각 중 하나이다. ‘핵발전소라는 괴물’이 지구상에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고, 이것이 어떻게 확장․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 없이는 이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나온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핵발전소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미치광이이거나 비양심적인 과학자 몇몇이서 만든 물건이 아니다. 매우 조직적으로 국가 권력과 자본이 투입될 때만 만들어질 수 있고,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이 의미하는 바

그럼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돌아보자. 이번 4.11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1번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을 선정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들은 이를 모두 비난했지만, 한 표라도 아쉬운 선거 국면에 그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 건설은 1950년대부터 검토되었지만, 이는 검토단계에 불과하고, 실제 이를 강력히 추진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이다. 197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준공식에서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도정에서 이룩한 하나의 기념탑”이라고 칭송하면서 “(여기서 일하게 될) 여러분은 과학입국의 제1선에서 몸 바쳐 일하는 선구자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맡은바 직책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거듭 당부한다”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핵발전소 고리 1호기는 단지 전력을 생산하는 시설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핵발전소는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으로 표현되었던 자본주의화에서 반드시 성취해야할 목표였다. 지금도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이들을 보고 ‘빨갱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는데 -특히 UAE 핵발전소 수출 성공 직후인 2009년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한 글을 쓰면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달리곤 했다- 이는 단지 국책사업이나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핵발전소가 갖고 있는 우리사회의 중의적 의미를 나타내는 징표이다. (쓰레기 소각장이나 화장터 건설 등 다른 국책사업반대에서 이런 표현을 찾기는 힘들다!)

이러한 측면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 선정은 매우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가 아버지처럼 과학입국의 중요성을 내세워 ‘여성과학자’를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박근혜 대표는 그간 과학기술계 내에서 ‘최초의 이공계 대통령’을 성취할 인물로 언급되어 왔다. 이번 비례대표 후보에는 1번 이외에도 5번 강은희 후보가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IT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은 과학기술계를 배려하고 있다며 홍보하고 있다.

한편 최근 탈핵운동 활성화로 핵발전 문제가 총선쟁점으로 부각되면서 그간 핵산업계 내부에선 ‘위기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동안 어느 정도 믿고 있었던 민주통합당마저 ‘핵발전소 재검토’를 외치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간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 지금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핵발전소 건설은 지속되었다. 앞서 민주당 정권에서 탈핵을 언급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이들 정권에서 기반을 쌓았기에 UAE 핵발전소 수출 등이 가능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랬던 민주통합당이 ‘재검토’를 외치고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재검토’가 아니라 명확히 ‘탈핵’을 외치라고 요구했지만, 이것만으로도 핵산업계의 위기는 컸던 것이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그 위기감을 잠재울 좋은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절전과 방사능 공포를 넘어 한국사회 변화의 시발점으로

[사진: 폭발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출처: 구글 위성 캡쳐)]

▲ [사진: 폭발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출처: 구글 위성 캡쳐)]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탈핵운동은 점차 대중화되어 가고 있다. 그간 일부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의 주장이었던 ‘탈핵’이 이제는 종교계, 생활협동조합, 여성계, 노동조합의 주제로 점차 넓어져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주변에서 ‘탈핵’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가고 있다. 전기에너지를 아끼는 절전운동은 물론이고 식품과 생활주변에서 방사능을 측정하는 등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활동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소수의 국한된 활동범위를 갖고 있었던 탈핵운동이 발전하는데 매우 중요한 매개가 될 것이다. 특히 전기에너지 절약은 탈핵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의 전력수요 증가는 탈핵은 고사하고 핵에너지, 화석연료, 재생에너지 등 모든 에너지원을 사용해도 매우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매년 0~2%대의 전력수요증가를 보이는데 비해, OECD 가입 20년이 다 되어가는 한국은 1년에 10%의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문제의 본질, ‘왜 핵발전소가 만들어졌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핵발전소는 대용량 발전소이다. 이처럼 대용량 발전소가 필요한 이유는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밀집화된 거대 도시(Megacity)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력소비량 중 절반은 산업계의 몫이다. 가정용 사용량은 15%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현재의 전력요금체계는 산업용 전력요금을 가정용 요금이 지원해주는 소위 ‘교차지원제’를 선택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원가 이상의 전력요금을 받아 산업계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계의 전력낭비가 수차례 지적되어 왔지만, 낮은 요금과 산업계의 압력으로 이는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못하고 있다.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절전 캠페인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에너지 빈국(貧國)임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을 주력산업으로 육성해 왔고, 이는 우리 스스로 현재와 같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우리 자신을 취약하게 해왔다. 그리고 그 핵심에 핵발전이 있다.

핵발전 없는 한국사회를 단지 핵발전소 자리에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세우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현재와 같은 대규모-중앙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1.9%밖에 되지 않는 서울의 전력 자급율과 330%가 넘는 충남의 전력 자급률이 갖고 있는 지역 불균형을 극복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 다소비 업종을 어떻게 대량해고, 고용불안 없는 ‘정의로운 관점’에 맞춰 바꿀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었던 ‘탈핵 열풍’은 단지 발전원을 바꾸고 가정의 에너지 절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묶은 일종의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이었다.

후쿠시마 핵사고 2년차, 탈핵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우리에게 체르노빌 핵사고 이후 잊고 있었던 핵발전의 위험성을 다시 일깨우고 탈핵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후쿠시마 핵사고가 갖고 있는 좁은 의미에 불과하다. 핵발전은 단지 발전소의 의미 이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는 것은 우리사회 전체를 뜯어고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쿠시마 핵사고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인류 모두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거대 중앙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의 총아였던 핵발전의 종말. 그것은 20세기 인류에서 하나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인류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탈핵 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 역시 1970년대부터 있었던 반핵운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완전히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조급한 마음을 갖기보다 멀리 보는 마음으로, 그러나 우리사회 전반을 고치겠다는 치열한 마음으로 한국의 탈핵운동이 나아갈 때 우리나라 역시 핵없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이헌석 님은 에너지정의행동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