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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무기와 경제적 권리(존 매들리, 1982)

“인권은 아침식사와 함께 시작된다.”

이것은 세네갈의 시인이자 초대 대통령을 지낸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가 1960년대에 유엔에서 연설할 때 했던 말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말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가 경제‧사회적 권리의 어렴풋한 윤곽을 제시했다면, 아프리카의 소국 세네갈의 상고르 대통령이 말한 “인권은 아침식사와 함께 시작된다”는 느낌이 팍 오는 구체적 표현이었다. 그래서 이 문장은 경제‧사회적 인권을 함축한 표현으로 널리 사랑받으며 인용돼왔다.

지구상의 남북문제나 지구화와 인권문제 등을 연구하는 전문 저술가인 존 매들리도 이 문장을 즐겨 인용하는 이들 중 하나이다. 그가 80년대에 유엔 영국 위원회의 기획으로 쓴 경제‧사회적 권리의 팜플렛 제목이 “인권은 아침식사와 함께 시작된다”이다. 이 팜플렛은 국제원조, 무역, 초국적기업 등과 경제‧사회적 인권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의 한 장이 군수산업에 대한 것이다.

이십여 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시차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변치 않는 현실, 아니 손에 잡힐 만큼 턱 앞에 가까이 온 문제들의 다급성 때문일 것이다. 핵 안보 정상회의가 열린 서울은 삼엄한 경계에 싸였다. 그런 도시의 한복판에서 정리해고 되어 장기실업상태이거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노동자들이 희망텐트를 치고 꽃샘추위를 여러 날 버텼다. 뭔가 변화가 있지 않으면 ‘외롭다’는 그들의 힘든 버팀은 계속될 것이다. 평화롭던 제주에서는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연일 군사기지 건설 강행의 폭음이 멈추질 않고 있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이란 콧노래가 ‘초록빛 바닷물에 화약과 케이슨을 던지네’란 탄식으로 바뀌었다. 핵 사고와 방사능 유출을 현실적인 공포로 느끼면서도 원전을 포기 못하는 이중성이 갈짓자(之) 걸음이다. 핵발전소에서 대도시로 전기를 나르기 위한 죽음의 송전탑이 농촌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다.

그런데 정치의 꽃이라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주류 정치권은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고 남의 다리 긁는 소리들만 해대고 있다. 변덕스런 봄 날씨 만큼이나 내가 서 있는 땅의 공기가 불안하고 삶의 안정성은 시소를 탄다. 그래서인지 ‘모든 무기는 가난한 이들의 몫을 훔친 것’이라는 이 글의 메시지가 뒷덜미를 잡는다. 무기, 무기산업, 전쟁, 핵발전 등의 단어는 일상어가 아닌 듯 여겨지면서도 생활 구석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순간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소비하는데 중독돼있고, 늘 ‘모자란다’고 푸념하면서도 엉뚱한 곳에 자원을 퍼붓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원은 거저 생긴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이들의 몫을 도둑질한 것이다.

이 글을 읽다보니 ‘너도 같이 훔쳤지? 훔치는 걸 보고도 가만 있었지? 그냥 계속 지켜보고만 있을래?’라고 묻는 목소리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러구 살아!’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번갈아 들린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멘붕’(정신이 나간 상태)으로 살아갈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약탈로부터 지킬 것을 지켜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나뿐 아니라 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살면서 곤란한 문제에 닥칠 때마다 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 답을 애써 피해 다녔고 그래서 오랫동안 질척거리곤 했다. 도망치기를 그만두고 애초에 생각했던 답대로 결정을 하고나면 홀가분했던 경험이 많다. 요즘처럼 정신 사나운 때, 나 자신이나 내 주변 사람들이 도망치기를 멈추고, 당당한 선택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지기를 시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희망해본다. 무기를 먹거리와 바꿔서 근사한 아침밥상을 차려보는 꿈을 여럿이 같이 꾸고 싶다.

무기와 경제적 권리(존 매들리, 1982)

“제작된 모든 총, 진수된 모든 군함, 발사된 로켓이 최종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굶주리고 먹지 못한 사람들, 춥고 헐벗은 사람들로부터 훔쳤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 장군으로, 이 말은 무기 소비가 가난한 이들에게서 식량과 기타 필수품을 훔치는 것이며 따라서 빈민의 경제적 권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을 잘 요약하고 있다.

1980년 세계적으로 5천1백억 달러가 무기에 소비됐다. 거대한 규모의 돈이 장차 사람들을 파괴할 수 있는 폭약을 설치하는데 쓰여지고 있다. 하지만 굶주림, 가난, 질병은 당장 사람들을 파괴하고 있다. 빈곤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 그 대신에 무기를 비축하는 데로 간다. 우선순위가 나쁘게 빗나갔다. 한편으론 과잉 살상을, 다른 한편으로 저발전을 한다.

해마다 단 이틀이면, 세계는 유엔과 그 전문 기구들의 일 년 예산에 필적하는 돈을 무기에 써버린다. 군사연구와 우주 연구는 모든 사회적 필요를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공공 예산을 받는다. 50만 명의 과학자와 5천만이 넘는 기타 노동자들이 오늘날 군사 장비의 연구와 생산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 무기에 쓰여지고 있는 돈의 아주 조금이라도 발전에 쓰여진다면 수백만 인구의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의 군수 기계가 향후 10년간 일 년에 단지 3주씩만 멈춘다면, 그리고 그 돈을 3세계 전체의 물과 위생 프로젝트에 쓴다면, 유엔의 물 계획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깨끗한 물과 위생을 모든 사람에게 1990년까지 제공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건강의 증진과 개인으로서 자신의 잠재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전쟁으로부터 물로, 무기로부터 위생으로 6%만 돌려도 10년 안에 수백만 명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데 도대체 왜 안 되는 것인가? 세계의 정치인들은 인류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한 자신들의 기여가 역사를 거스른 것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 더 많은 돈이 실제 또는 가상의 적에 보복하기 위한 전쟁 무기로 쓰여지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적’은 무기 경쟁에서 떠오르고 있다. 이 ‘적’은 정치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현재의 정책에 대해 재고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무기의 성장 그 자체가 적이 되었다. 무기의 성장은 판단착오, 실수 또는 단순하고 평범한 사고로 인해 전쟁 위험을 증가시켜왔다.

1979년 휴전 기념일 바로 전날, 세계는 핵전쟁을 6분 앞두고 있었다. 컴퓨터 에러 때문에, 미국은 ‘적색경보’를 진행했다. 믿어지지 않는 6분 동안, 적색경보는 핵 전쟁을 3시 40분에 시작할 신호를 보냈다. 제트 전투기들이 날았다. B52 폭격기가 즉각적인 이륙을 준비했다. 운 좋게도 이 컴퓨터 에러는 제 시간 내에 발견됐다. 하지만 우리가 늘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다.

무기를 만드는 것이 더 많은 안보를 가져온다고 믿는 정치인들은 근본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더 많은 무기는 서구사회에 더 적은 실질적 국가 안보를 초래한다. 그리고 더 많은 무기는 빈민으로부터의 약탈에 의존한다.

3세계는 전체적으로 보건과 교육에 쓰는 것보다 세 배 이상의 돈을 무기에 쓰고 있다. 서구인들은 3세계를 손가락질하며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서구 스스로가 나쁜 선례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서구에서 우리는 군사력을 우리의 국가다움과 위대함의 표시라는 인상을 주려한다. 우리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 3세계가 빠져드는 것을 비난할 수가 없다. 이런 미묘한 압력위에 서구의 기업과 정부들이 사용하는 고도의 판매 기술(그리고 뇌물)이 첨가된다.

… 3세계와 서구의 무기 소비는 브란트 보고서(the Brandt Report)가 명확히 한 것처럼, “인류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더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인권의 부정은 무기 경쟁 때문에 더 악화되었고, 세계 불안의 원인이다. 오늘날 전쟁무기로부터 평화 장치로 스위치를 옮기는 것은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경제적 인권, 안정, 그리고 더 나은 평화의 전망이란 이익이 상당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이런 요인들에 더 무게를 둔다면 자신들이 공언한 인류에 대한 봉사를 하게 될 것이다. 브란트 보고서는 말한다. “군사 지출이 통제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아낀 부분이 발전에 쓰일 수 있다면, 세계의 안보는 증가되며 현재 존엄한 삶으로부터 배제당한 상당수 인류가 더 밝은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