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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개발의 첫 단추] “뭘 해도 결과는 찬성인걸요?!”

구청에서는 지역에 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지역 내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수 설문조사를 시행하게 된다. 이 설문은 지역 주민들이 개발에 대한 정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첫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몇 년에서 십 수 년 전부터 ‘개발한다더라’고 동네를 떠도는 소문과는 다른 수준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우리동네 소모임은 중림동 재개발 관련 활동을 하면서, 설문 결과가 ‘주민들의 대부분은 개발을 원한다’고 둔갑하는 문제를 알게 되었다. 이런 뜨악함과 답답함을 가지고 설문조사의 문제점을 짚어보게 되었다. 서울시 각 구청에 이와 비슷한 설문조사의 문항과 결과를 정보공개청구하여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구청은 주택 및 토지 소유주, 주택세입자와 상가세입자로 세분화된 권리영역별 설문지를 통해 지역주민이 주거와 상업시설 등을 이용하는데 겪는 불편사항과 개선해야 할 사항 등을 체크하고 개발추진 여부에 대한 찬반의사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었다.

개발을 원하는 ‘대다수’ 뒤에 감추어진 낮은 설문 응답률

설문은 우편조사를 기본으로 하는데 설문 문항과 개발 사항에 대한 문의를 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안내되지 않은 설문지도 있었다. 개발에 대해 별다른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채 지역 주민은 설문에 응답해야 하고, 20~30일에 걸쳐 회수된 설문 결과를 구청이 집계한다. 보통 한 차례의 설문조사가 이루어지는데 거의 모든 지자체의 설문에서 개발 찬성 의견이 80%를 상회한다. 정말 개발예정구역은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여 소유주나 세입자나 모두 동네의 개발을 오매불망 염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중림동 도시환경정비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도 찬성률이 높다. 문의나 항의를 위해 구청에 전화를 하면 구청은 언제나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주장하며 반대 의사를 무시한다. 작년 7월 시행된 ‘중림 도시환경정비계획 의견수렴조사’의 결과를 정보공개청구하여 살펴보니 소유주의 85.4%, 세입자의 66.7%가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응답자 수를 보면, 소유주 중 82명, 세입자 중 45명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설문 대상 가구 수가 1,064가구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11.9%)다. 중구청은 100명의 의견을 중림동 ‘대다수’의 의견이라며, 실제로는 주민 대부분의 목소리를 삭제한 숫자놀음을 하는 것이다.

신월주택재건축사업 주민설문조사 결과

▲ 신월주택재건축사업 주민설문조사 결과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신월주택재건축사업 주민설문조사 결과서에는 다른 설명 없이 83.5%의 주민이 개발에 찬성하는 것처럼 표기됐으나, 전체 781세대 중 247세대(31.6%)밖에 응답하지 않았다. 영등포7가 뉴타운 개발지구는 전체 2,141세대(가옥주 281, 세입자 1,860세대) 중 300통을 회수하여 겨우 14%의 회수율을 보였지만, 설문조사 결과는 찬성 91%로 표기했다.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주민이 개발에 찬성하는 것처럼 이용되는 것이 바로 지자체의 개발 관련 주민설문조사인 것이다.

개발찬성? ‘예’ ‘아니오’로만 답하시오!

그런데 설문에 응답한 주민들이 개발에 찬성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까? 중림동 설문지를 뜯어보자. 모두 16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설문지는 현재의 주거에 관한 기본 정보(6개 문항)를 묻고, 개발 찬성 여부나 재개발될 경우 원하는 주택 형태 등(3개 문항)을 묻는다. 그리고 나서 현재 이용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상업시설 등을 묻고(5개 문항), 개발방식과 필요한 시설을 묻는(2개 문항)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중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이 체크할 만한 문항은 ‘현재 상태 유지를 희망하는 이유’와 ‘개발 완료 후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고자 하는 이유’ 정도다. 현재 생활에 대한 기본 정보를 묻는 질문을 빼면 대부분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질문이다. 게다가 개발의 찬성 여부를 묻는 질문 바로 앞에는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이나 주택에 대해 가장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묻는다. 질문의 배치에서도 찬성을 유도하고 개발에 대한 환상을 심고 있는 것이다.

‘중림동 개발을 걱정하는 주민모임(이하 주민모임)’에서는 이런 설문조사의 문제점 때문에 반대서명도 모았고 구청에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구청과의 면담을 통해 주민설문조사를 다시 하기로 하고, 설문문항을 중립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주민들과 협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참 소식이 없다가 지난 9월 기습적으로 설문이 시작됐다. 문항은 간단했다. “아래의 참고자료를 확인하시고, 중림동 일대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을 위한 정비구역 지정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① 구역지정 찬성 ② 구역지정 반대 ③ 기타”

참고자료에는 주택재개발사업과 역세권시프트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비교되어 있었다. 어려운 전문용어들과 숫자들이 어지럽게 등장하는 한 장짜리 참고자료가 분명히 말하는 것은, 중림동은 주택재개발사업을 할 수 없고 도시환경정비사업은 할 수 있다는 것.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주택재개발사업 용적률의 두 배로 할 수 있고 그래서 주택재개발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아파트가 확보된다는 것이다. 구역지정 찬성과 반대를 판단하는 데 참고하라고 준 자료는 결국 도시환경정비사업을 하자는 주장에 가깝다.

주민들이 개발 관련 용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받아든 설문지에는 균형발전지구, 재정비촉진지구, 지구단위계획, 주택재건축사업, 조합주도의 주택재개발사업, 공공기관 주도의 주택재개발 사업 등등 쏟아지는 단어들은 실체가 해독되기 어려운 용어만 난무한다. 각각의 차이와 장단점을 알기도 쉽지 않다. 중화재정비촉진지구의 주민설문지는 사업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기는 하나, 개발로 인해 얻게 되는 ‘혜택’들을 나열하여 찬성을 유도한다. 용적률 증가, 소형주택 비율 감소 등이 그런 ‘혜택’으로 소개된다. 이런 설문지를 받아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라는 것이 개발에 대한 주민설문조사의 실체다.

“왜 반대하세요?”

“세입자가 반대한다고 얘기했는데, 구청에서 나온 사람이 대뜸 ‘아니, 임대아파트 주는데 왜 반대하세요?’ 이렇게 물어보더라니깐.”
“원래 반대했는데 구청 말대로면 어떻게 할지 고민되네요. 저 윗동네는 거의 다 찬성으로 돌아섰어요.”

중구청은 주민들과 설문문항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협의도 어겼지만, 조사 방식에서도 큰 문제가 드러났다. 구청 공무원들이 조사용역을 수행하는 업체의 직원들과 함께 다니면서 찬성을 노골적으로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중구청은 설문조사 결과를 구청의 입맛에 맞춰 집계하는 이상한 셈법을 보여주었다. 이번 설문조사의 결과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구청이 보내온 자료는 작년부터 진행된 모든 조사 결과를 합친 자료였다. 인근의 아현동을 개발 구역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 등 중림동에는 네 차례의 설문이 있었다. 당연히 네 설문은 문항과 내용이 모두 다르다. 게다가 첫 조사와 이번 조사 사이에는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 모든 조사의 결과를 합쳐서 찬성하는 주민이 많다는 결과를 공개한 것이다. 각각의 설문 결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중구청은 달리 이유도 없이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유를 짐작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지난 9월 설문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설문이 진행 중이라는데 설문지를 받지 못한 주민들도 많았다. 구청에서 가가호호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설문지를 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주민모임에서는 구청의 설문지를 복사해서 건네주기도 했고, 반대 의견을 밝힌 주민들의 설문지를 수십 장씩 모아서 구청에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중구청은 이 설문지는 결과에 집계하지 않았다. 이유는 반대의견을 가진 주민이 수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똑같은 설문지인데도 반대의견을 가진 주민들이 모아서 보낸 것은 집계하지 않고, 아예 다른 설문지인데도 찬성 의견이 많은 기존 설문 결과는 합치고 있으니, 구청의 의도는 뻔하다. 중구청이 그렇게 기를 쓰고 늘린 찬성 주민 수도, 주민모임이 지금까지 확인한 반대 주민 수보다 적다.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주민들의 의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개발,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동네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내가 살던 집이나 장사하던 가게는 어떻게 되는 건지,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이웃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헤아려 볼 새도 없이 설문이 ‘들이닥친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이어지며, 주택/토지 소유주와 주거 및 상가 세입자 권리를 따져보기 어렵게 부풀려지는 개발의 환상들이 나열된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이미 동네를 번듯한 상업지구로 포장하여 개발 밑그림을 그리고 문항을 구성하기도 한다.

결과를 분석한 모든 지역에서 개발을 찬성하는 이유로 주택 노후, 좁은 도로, 주차공간 부족이 꼽힌다. 사실 좁은 도로나 주차 공간 부족은 이전의 막개발과 도시의 팽창, 인구증가와 함께 서울 전체가 고민하는 주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주택의 노후도는 건축 연한으로 측정 가능하기도 하지만 집이 낡고 노후했다는 설문 문항에서는 거주민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된다. 집에서 살다보면 공간 활용이 아쉬울 때도 있고, 건축 마감재의 불량 등으로 물이 새거나 다른 하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설문 항목에서 주택이 낡아 불편하다고 체크할 수 있다. 그런데 지자체는 이것을 개발 필요 사유로 번역해버리고 주민들이 개발에 찬성한다고 주장한다.

주차공간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자체에서는 담장 허물기로 주차공간을 확보하거나 사유지 매입을 통해 공공 주차장을 확대하는 등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민관이 협력하여 다양한 방식의 문제 해결이 가능한데도 주택과 주택을 둘러싼 환경의 요인 개선이 필요한 순간에 늘 전면적인 개발을 해답으로 몰아가는 지금의 설문 문항을 돌아봐야 한다.

주민들 요구로 개발이 시작되는 지역은 드물다. 구청에서 개발구역을 지정하면서 개발이 추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애당초 설문지는 개발을 목적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더욱이 설문지를 어느 정도 회수해 결과를 내야 하는지 법적으로 정해진 것도 없고, 설문의 결과를 구역 지정이나 개발 계획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 결국 설문조사는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척 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반대하는 주민들의 설문지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얼 해도 구청의 결론은 이미 ‘찬성’으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덧붙임

깡통, 미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