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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청량리 개발, 진짜 늑대가 나타난 걸까?

몰랐겠지만, 사람이 살고 있어요

‘대낮인데도 곳곳에 붉은 불을 밝힌 성매매업소가 줄지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묘사가 시작되는 곳. 속칭 청량리 588로 불리는 전농동 620번지 일대는 미아리, 영등포, 천호동과 함께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이다.

청량리집결지내에는 유리방 형태 업소가 85개, 찻집 2개, 여인숙 13개, 쪽방 건물이 17개가 있다.(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집결지실태조사>, 2013, 11.) ‘유리관’이라고 칭하는 유리방 형태의 단층 무허가 건물이 주를 이루고, 유리방 여성들은 출퇴근형식으로 가게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는 여성들은 쪽방과 여인숙에서 ‘살며’ 성판매일을 하고 있다. 쪽방 건물 17개는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내부에 한 평이 조금 넘는 6~7개의 방으로 쪼개진 형태라 청량리에는 100여개가 넘는 쪽방이 있다. 쪽방에는 비단 중장년 성판매 여성뿐만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 달방을 쓰는 노숙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집창촌’이라고 호명되었을 때에는 보이지 않는, 홍등 너머 가려진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고 살고 있다.
청량리 성매매집결지 기록화작업 일러스트 - 청량리 전경<br />

▲ 청량리 성매매집결지 기록화작업 일러스트 - 청량리 전경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제37차 서울시 건축위원회(2013. 12. 26.)에서 전농동 620번지 일대 ‘청량리 4 재정비촉진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축 계획안’이 통과되어 올해부터 착공에 들어간다고 한다. 대로변 상가와 대형병원이 들어선 토지소유주가 집결지와의 통합 개발에 반발해 미뤄져왔던 사업이 상가와 대형병원 1만 7031㎡부지가 개발구역에서 제외되면서 속도를 낼 전망이다.

별일이 없다면 3월경에는 사업시행인가가 날 예정이고 이후에는 관리처분, 소유권이전/수용/이주, 명도소송의 수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토지소유주와 건물주, 성매매업소 업주들이 아니다. 동대문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 지역은 특별히 개발에 대한 반발도 없다고 한다. 건물주나 토지소유주는 감정평가를 받아 보상금과 자기부담금을 계산하고, 업주는 휴업(영업)보상금을 받고 떠나거나 남거나 하면 되기 때문이다.

개발계획에서 배제되는 이는 당연히 세입자이다. 일하는 사람, 사는 사람, 고단한 하루를 받아주며 가볍게 이불을 덮어주는 안도감, 친밀한 관계망을 맺어가는 공간을 하루아침에 지워버리려고 했을 때 이야기되지 않는 사람들과 성판매 여성들은 그저 집결지 내에 갇힌 사람으로 인식되고 보통의 세입자,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동네사람의 지위는 언급되지도 않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청량리 제4구역 개발지역의 구역지정일은 1994년 12월 31일이다. 세입자가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는 구역지정 공람 공고일 3개월 전 전입세대에 해당하는 세입자가 몇이나 될까? ‘청량리588’이 주는 의미로 인해 주소를 옮기지 못한 사람, 발붙일 곳을 찾아 돌고 돌아 이제 이곳 쪽방에 머문 사람들은 30여 년 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개발과 직면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까? 개발구역이 작아 조합설립이 아닌 유사기능을 가진 형태로 사업이 진행되는 청량리는 상업지구이기 때문에 주거세입자 주거대책이 없고 그나마 세대수용시 토지소유주와 가옥주에게 세입자대책을 권고하는데 강제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얼마나마 다른 주거지역을 알아볼 수 있는 숨통이 되는 주거이전비나 이사비는 청량리 개발지역에 살고 있는 쪽방지역 사람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이다.

청량리 제4구역 조감도<br />

▲ 청량리 제4구역 조감도


65층 주상복합이 종교처럼 회자되는 개발계획을 두고 동대문구의 건물주나 토지소유주, 투자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커뮤니티에 모여 개발이익을 점치고 정보를 공유한다. 삶의 조건이 유사한 사람들이 공유했던 공간은 개발이익을 점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지고 각자에게 무게감을 주고 있다. 개발정책에서 배제된 세입자이고, 사회로부터 밀려난 성판매 여성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주거불안정에 처하는 빈곤계층의 악순환이 이제 다시 시작될 터이다.

‘법’이 이런데 법 밖의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 있냐고 항변하는 구청 관계자의 말에 “살던 사람이 대책 없이 쫓겨나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라는 말밖에는 정말 대응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닐 터인데 이 무력감은 어쩔 수가 없다.

철거를 기다린다 : 어쩔 수 없이 맞아야하는 벼락

포기를 했었지. 그런 생각은 항상 했었지만은, 그건 누가 뭐뭐 하는데도 없었고 누가 나서는 사람도 없었고 또 나 역시 그런 걸 나서서 할 엄두도 못 냈고 그러니깐 스스로 포기를 한거야. 어쩔 수 없이 맞어야되는 벼락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A

나는 그냥 한데로 따라가는 거여. 동네 사람들 하는 대로 헐으믄 헐고 말믄 말고 그때 인제 상황이 거석하면은 구녕이 있겄지. 뭐. 잉?-B

솔직한 얘기로 그러니까 목소리를 못 높이고 그냥 그런 거구나 당연히 이렇게 되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 쫓겨나면은. 쫓겨난다는 표현이 어떨 란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여기서 나가야 된다면 진짜 거기에 맞춰서 물론 방을 얻어서 될른지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도 아마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을 할 거야. 아마....-A

(인터뷰 인용-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청량리 성매매집결지 기록화 책자 ‘불온한 확신, 끝나지 않은 천일야화’, 2010)


작년 여름 나는 6개월간 이룸 활동을 쉬게 되고 살았던 월세 방의 계약기간도 종료되어 짐을 친구 집에 옮겨놓고 마땅한 거처를 정하지 않고 6개월을 보낼 무모한 계획을 세웠었다. 그때 두 번의 악몽을 꾼 적이 있는데 한번은 꿈 안에서 잠이 깬 나는 방에 있는 물건들이 내 물건들인지 하나하나 만지면서 내방, 내 집인 것을 확인하고 다녔고, 다른 꿈에서는 아무래도 내 집이 아닌 다른 집구조 같아서 집밖을 나와 동네를 돌아다녔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길을 돌아다니며 동네입구 초입까지 나와 넒은 시야로 내 집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꿈에서 깨어 하염없이 울었다. 평소 꿈도 잘 꾸지 않던 내가 꿨던 이 꿈이 주는 불안한 마음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청량리 중장년 성판매여성과 주거가 불안정한 이들은 이 같은 불안을 가지고 임시방편으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다른 골목을 찾아 들어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지역의 쪽방으로 거주지를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닌 불안한 삶이 계속되는 것은 쪽방에서도, 개발을 기다리는 어느 공간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덧붙임

깡통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