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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파트, 땅으로 꺼질라

무너져가는 스카이아파트엔 사람이 살고 있다

장맛비로 온 세상이 회색빛이던 오후, 정릉3동 스카이아파트를 찾았다. 붕괴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보도를 이미 접했었기에 예상은 했으나, 건너편의 스카이아파트를 첫 마주했을 때 숨이 턱하고 막혔다. 높은 지대에 위치하여 한 눈에 찾을 수 있었던 스카이아파트는 날씨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짙고 음울한 회색빛이었고,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무척 허름했다.

출처: 스카이아파트 주민대책위 카페

▲ 출처: 스카이아파트 주민대책위 카페



단지 내로 들어가니 더 가관이었다. 지반은 이미 꺼지기 시작하여 내려앉은 땅 위에는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고, 건물 외벽은 금이 가있고 곳곳에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주민의 안내로 둘러본 6동은 상태가 더욱 심각했다. 외벽이 기울어져 있는 복도에서 안전이라는 두 글자는 찾을 수가 없었고, 이미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주위에 설치한 그물망에 쌓이고 있었다. 그물망 바로 아래가 통행로로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여 무척이나 아찔했다.



아찔한, 너무 아찔한

스카이아파트는 38년 된 서민아파트로 3평, 6평, 10평의 작은 평수로 되어 있다. 임대료가 저렴한 편이라 단신 가구와 수급권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편이다. 전체 141가구가 살 수 있지만, 곰팡이와 녹물로 인한 위생 문제,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안전 문제로 집을 떠난 이들이 40여 가구가 된다.

3년 전, 스카이아파트는 SH공사에서 실시한 안전 진단에서 즉각적인 철거가 요구된다는 D등급, E등급을 받았다. 재난위험 시설로 본다는 의미다. 이에 서울시는 그 심각성을 인정, SH공사와 성북구가 공영 개발하는 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었다. 그러나 재건축은 추진되지 않았다. 자연경관지구로 묶여있고 고도 제한에 걸려 4층 이하의 건물만 지을 수 있다보니 수익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3년이 지난 현재, 건물은 더욱 낡고 골조도 부식돼 이로 인한 붕괴 위험은 더욱 커졌지만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스카이아파트는 주민의 60% 이상이 영세한 세입자이다. 이들 중 대부분이 단신가구와 수급권자인 상황에서 임대료를 돌려받아도 그 돈으로 다른 서울 시내에서 집을 마련하기란 불가능하다. 건물 지대가 기울고 있어 대다수 가구가 이사를 간 6동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직까지 이전하지 못한 15가구는 붕괴 위험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 생활하고 있다.


누가 안전을 볼모로 삼는가

지금 스카이아파트 주민대책위는 아파트를 허물고 공원을 조성하는 대신 부담을 낮춰 이주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작년에 조사가 진행되었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공원화가 추진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성북구청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 사안을 시청으로 떠넘겼다. 그러자 시에서는 공원화 과정에서 스카이아파트 주민들이 ‘불로소득’을 취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통한 재개발 구역 지정 및 사업 추진을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6월 21일 서울시의회 제32차 정례회에서 이와 관련된 질의가 있었는데,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안전을 볼모로 하여 불로소득을 가져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스카이아파트가 위치한 정릉3동은 아직 재개발 구역으로 확정되지 않았지만, 재개발 바람과 함께 투기세력들의 관심이 정릉으로 쏠리고 있고 그 대상에서 스카이아파트도 예외는 아니다. 공유지였던 주변 주차장은 이미 조각조각 나뉘어져 외부 투기세력들의 소유로 넘어간 상황이다. 투기꾼들이 정릉으로 몰려들면서 이미 집값이 치솟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은 투기꾼들에게 막대한 불로소득을 취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이아파트의 대안을 오직 재개발이라고 말하는 서울시청의 태도를 과연 진정으로 투기꾼들이 가져갈 불로소득을 우려한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재난위험 속에 방치하공 있는 현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개발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펼치는 과정에서 스카이아파트 주민들의 안전을 볼모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서울시청과 성북구청인 것이다.


이해 타산이 주민 안전 발목 잡아

스카이아파트의 상황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가 여전히 공공이 아닌 개인의 영역 안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붕괴 위험에 놓인 스카이아파트 주민들에게 ‘사적 재산권에 해당하는 만큼 입주민들이 보수와 보강 등의 안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서울시와 성북구청의 답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위험에 노출된 채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 대부분이 영세한 세입자임을 고려할 때, 이를 개인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보는 것은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겠다는 태도이다.



개발 사업은 흔히 주거취약계층에게 적절한 주거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명분과는 달리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진되려 했던 계획들이 모두 취소되고 주민 안전이 방치되고 있는 스카이아파트의 상황은 개발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되묻게 한다.

5년째 스카이아파트의 대책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주민 한분은 이제껏 추진될 예정이었던 재건축, 공원화가 모두 취소된 것은 관련 건설기업, 시청과 구청이 그 과정에서 얼마만큼 수익을 따낼 수 있는가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는 구조 때문이라며 분개하셨다. 정릉3동의 1/3을 차지하는 스카이아파트는 그들에게 더 큰 수익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무런 대책 사업도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미 재난위험 시설로 인정되어 철거 등 긴급 대책이 요구되는 스카이아파트,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안전을 볼모로 하여 지자체와 개발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파이가 더 커질 수 있는가만 고심하고 있을 뿐이다.


거주민의 안전, 공공의 책임

미국의 경우, 건물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 진단이, 이를 통해 적절하지 못함이 진단될 경우 철거하는 것을 건물 소유주에게 의무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정부가 함께 부담하고 있다. 이런 체계를 통해 안전한 건물 안에서 거주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을 공공이 나서서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급박한 철거 대책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스카이아파트는 개발업자들의 수익성에 발목 잡힌 채 안전 위협에 몇 년째 방치되어 왔다. 개발 과정에는 세입자, 소유주, 개발업자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얽혀 있고,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속적인 갈등이 표출된다. 개발의 우선 목적이 개발로 인한 이익이 아니라 적절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음을 상기할 때 적극적인 공공의 역할이 요구되어야 한다.

살 수 없는, 살아서는 안 되는

정릉3동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아니 살아서는 안 되는 아파트가 있다.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 굵은 장맛비와 거센 바람 속에서 붕괴되지는 않을까,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지금도 스카이아파트 주민들은 불안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스카이아파트를 둘러싼 지지부진한 계획 논의들, 그러나 그 중심이 되는 이익 논리에 앞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지금 붕괴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는 거주민들의 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