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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한 평반의 권리가 갖는 의미

청소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요구한다 (2)

지하실, 계단 밑, 화장실, 기계실, 피트실……. 청소노동자들이 고된 노동 끝에 잠시라도 허리를 펴고 오순도순 모여 식사를 하는 휴게 공간, 그/녀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자신이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임을 더 서럽게 한다. “하물며 건물 지을 때 나무 몇 그루를 심는 것도 법에 나와 있다는데, 그 건물에서 청소일하는 우리에겐 왜 이런 데밖에 안 주는지, 너무한 것 같다.” 청소노동자 노동조건 개선방안 토론회에 함께 한 청소노동자가 한 말이다. 작년 10월 1일 발생했던 해운대 오피스텔 화재사건은 사람이 머물 수 없는 공간을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으로 사용하도록 강요한 현실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서울시내 모 대학의 청소노동자 휴게공간. 비좁고 어둡고 습하다.

▲ 서울시내 모 대학의 청소노동자 휴게공간. 비좁고 어둡고 습하다.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공간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2011년 7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동안은 산업안전보건규칙으로만 명시되고, 이를 위반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이번 법 개정으로 휴게 공간 제공 의무가 상위법에 명시된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휴게공간을 비롯하여 청소노동자들에게 안전한 일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제도적 변화가 요구된다.

휴게 공간 제공 의무가 형식에 머물지 않으려면

2011년 상반기 서울지역 청소노동자 16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82.8%가 공식휴게실이 있다고 답했다. 휴게공간은 대부분 주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어떤 공간이 주어지는가이다. 휴게실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너무 좁아서 자체간이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12.1%에 달했고, 휴게실이 있더라도 그 위치가 지하실이나 기계실, 피트실, 계단 아래처럼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곳에 설치해놓은 경우는 64.5%나 되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청소일을 하면서 각종 약품을 취급한다. 장시간 강도 높은 노동을 반복하면서 땀도 많이 나고 세균 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작업복을 세탁하고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샤워시설을 갖춘 곳은 36.2%에 불과했다.

이른 새벽 출근해서 하루 종일 바삐 몸을 움직여야만 겨우 작업을 끝낼 수 있는 청소노동자들, 자신이 일하는 건물이고 구석구석 쓸고 닦아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지만 정작 그 건물에서 그/녀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그/녀들이 작업복을 갈아입고, 뻐근해진 몸을 좀 펴보기도 하고, 동료들과 담소도 나누고, 함께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는 휴게공간. 청소노동자들에게 휴게공간은 사무직 노동자들의 책상 자리와 같은, 아니 그 이상의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휴식을 위한 편의시설일 뿐만 아니라 일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업무공간으로써 휴게공간은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청소를 포함한 시설물 유지․관리는 건물 사용에 있어 안전에 대한 일상점검과 재해예방을 위해 중요하고 기초적인 분야이다. 그러나 건축물의 방재, 피난, 보건, 안전을 위해 지켜져야 할 기준에 관한 근거 법률 자체가 적고, 특히 노동환경에 관한 물리적 기준이 소극적으로나마 명시된 것은 산업안전보건법, 건설노동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정도이다. 최근에 신설된 산업안전보건법 29조 8항은 “수급인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위생시설에 관한 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수급인에게 위생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위생시설을 수급인의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애초에는 훈시 규정으로 두려고 했던 것에 벌칙조항이 추가되면서 좀 더 강제력은 부과되었다. 그러나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듯 대다수 청소노동자들에게 ‘명목상’ 휴게공간은 있지만, 그 공간이 사람이 머물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번 개정안이 형식적인 것에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휴게시설, 세면・목욕시설, 세탁시설, 탈의시설 등 필요한 공간에 대한 상세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을 때부터 건물의 유지・관리를 위한 공간을 고려해야

청소를 포함한 건물의 유지・관리 업무는 건물의 사용성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적 관리를 통해 재해를 예방하고 노후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방지한다. 그러나 건물 한 평이 몇 백만 원으로 환산되는 현실에서 적정 위치에 적정 크기와 환경을 갖춘 휴게공간을 마련토록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건축물의 유지・관리 업무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공간에 대한 설계기준이 건물을 지으려고 할 때부터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관련 법 개정 없이도 정부의 의지에 따라 추진될 수 있다. 먼저 공공건축물을 새로 지을 때 청소노동자의 휴게공간을 설치하게끔 관련 기준을 마련해볼 수 있다. 보통 공공건축물 발주시 시설물에 대한 상세한 설계기준이 제시된다. 설계기준에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여 반영토록 할 수 있다. 휴게공간이 형식적 명시가 아닌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일인당 소요면적, 설치위치, 필요기능실, 남・여 구분 여부, 다른 공간과의 연관성을 고려한 체계적이고 상세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청소업무의 특성을 고려할 때 휴게공간은 청소노동자들의 휴식을 위한 편의공간일 뿐만 아니라 건축물 유지・관리를 위한 업무공간에도 해당된다. 따라서 장비, 약품, 탈의, 샤워, 휴식, 사무공간 등 성격에 따라 분화된 공간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이렇게 건축물 유지・관리를 위한 공간이 공공건축물 뿐만 아니라 민간 건축물 설계 및 시공과정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고시나 지침을 마련하고, 이것이 모든 건축행위에서 준용되도록 관리․감독해야 한다.

건물보다 사람! 노동환경 공간 기준의 도입

“리모델링하고 나서 더 넓어졌으니까 청소해야 할 덴 더 늘었지. 건물이 커지고 좋아진다고 우리가 득 보는 건 없어. 침대 하나 더 늘리는 게 돈 버는 일이니, 우리가 쓰던 자투리 공간도 없어지고 있는 판인데 뭐.”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가 했던 말이다. 공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현실에서 휴게실이 없어서, 혹은 휴게실이 너무 멀거나 좁아서 자신이 일하는 층에 있는 자투리 공간이 그/녀에겐 옷도 갈아입고, 잠시 등도 기대고, 도시락도 먹는 휴게공간이었다.

헌법 35조 1항에 명시된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한 권리’는 주로 환경적 측면에서 얘기되어왔다. 그러나 이를 우리가 일하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건물이 단지 물리적 공간으로,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서만 여겨지는 현실은 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앞서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 마련을 위한 제도화 방안을 얘기했는데, 장기적으로는 전체 노동자에 대한 노동환경 공간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노동환경 공간 기준의 도입은 ‘일터’라는 말처럼 공간과 사람이 분리되지 않고 밀착될 수 있게 하는 씨앗이 될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기에 이를 위한 토대가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건축물을 용도별/규모별/산업별/직종별로 분류, 이에 대한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통해 모든 건축물에 적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쾌적한 노동환경을 위해 필요한 환경, 규모, 안전, 보건 분야의 기준을 신설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기준이 기존 건축물에서 피난, 소방, 구조안전에 관한 기준과 동등한 수준의 중요도로 반영되어야 한다.

안전한 일터를 위한 협의 과정에 참여가 보장되어야

안전한 일터, 건강한 일터를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 기준 마련 뿐 아니라 이를 일상에서 점검하고 교육하는 여러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청소노동자의 작업내용을 대략 건물일반청소, 유리 청소, 쓰레기처리, 조경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각의 작업 속에서 근골격계 질환, 화학물질 사용으로 인한 중독, 밀폐공간 작업으로 인하 질식, 추락 및 전도 등 다양한 노동재해가 발생되고 있다. 산재보험료율은 매년 6월 30일 3년간의 임금 총액에 대한 보험급여금액의 비율을 기초로 재해발생의 위험성에 따라 업종별로 정하여 고시된다. 건물 등의 청소업에 적용되는 산재보험료율은 20/1000으로 요식・숙박 등 기타 서비스업의 산재보험료율 10/1000보다 2배 가량 높다. 이는 청소노동자의 노동재해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 강화를 위해 기본적으로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도구 등을 제대로 지급하고 작업 중 안전표시 설치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시급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부분 용역・도급 형태로 이루어지는 청소업무에 대한 포괄적인 노동안전보건상 조치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의 확대 적용이 요구된다.

산업안전보건법 1조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 확립과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 예방 및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을 통해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3조 그 적용범위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업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29조는 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규정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사업주간 협의체의 구성 및 운영, △작업장의 순회점검 등 안전・보건 관리, △수급인이 행하는 노동자의 안전・보건교육에 대한 지도와 지원, △기타 노동재해 예방을 위하여 고용노동부령이 정하는 사항 등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29조의 적용 대상을 ‘같은 사업에서 행하여지는 사업의 일부를 도급을 주어 하는 사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현재는 제조업, 건설업, 토사석 채취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용역・도급사업에서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한 작업도구 지급, 안전교육 및 건강진단 실시 등 안전・보건조치를 이행해야 할 책임은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하청)에 있다. 청소업무가 대체로 용역・도급에 의해 이루어지며, 청소노동자의 노동 전 과정이 도급인(하청)의 사업장이 아닌 수급인(원청)의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점, 그리고 청소업무가 도급사업주(원청)의 건물의 유지・보수・관리를 위해 필수적인 업무로 생산 활동과의 관련성이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청소노동자에 대한 노동안전・보건상 조치 및 노동재해 예방을 위한 도급사업주(원청)의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29조를 청소업에도 전면 적용해야 한다.


40만 청소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지난 9월 29일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단은 청소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제도개선 요구안이 관련 법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국회에 입법청원을 했다. 임금, 고용, 휴게공간, 노동안전보건 4가지 영역에 대해 △공공부문 청소노동자 인건비 기준 현실화 △낙찰방식 개선을 위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개정 △최저임금법 개정 △포괄임금제 남용 방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직접고용 및 고용승계 의무화 △원청의 사용자성 책임을 명시하는 노동조합법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렇게 8가지로 나누어 청원서를 제출했다.

입법청원과 함께 40만 청소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되길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10만 송이 장미 서명에 돌입했다. 저임금, 고용불안,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현실을 바꾸고 청소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청소노동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장미 한 송이 한 송이에 담으려고 한다. 10만 장미가 모여 그 향기가 이 사회를 채운다면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