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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자유언론에 대한 열 가지 시험(조지 셀더스, 1938년)

피디수첩을 위하여

나는 시사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늘 보고 듣는 것이 인권소식이고 그건 대개 우울한 뉴스이기 때문에 굳이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는 시사물까지 챙겨보는 것이 정신건강상 별로여서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피디수첩의 본방을 일부러 사수했다. 피디수첩은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보도로 시민들에게 당연히 알려야 할 것을 알렸다. 언론의 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3년여 재판과 온갖 괴롭힘에 시달렸다. 대법원에서 최종무죄판결을 받아서 그간의 고난에 대한 작은 위로나마 될까 했다. 그런데 정작 해당 언론사에서는 수치스런 사과보도를 한 것도 모자라 징계까지 한다고 하니 본방사수로라도 그 언론인들을 응원하고 싶어서였다.

피디수첩 사건을 보면서 영화 하나가 떠올랐다. 1996년 제1회 인권영화제 때 내가 자막을 넣었던 <진실을 말하고 튀어라>란 작품이다. 유난히 사연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자막작업을 시작하려는데 자원봉사자가 해준 번역문이 영화 전체의 1/4도 되지 못했다. 중간 중간 듬성듬성 번역한 상태라 자막 작업이 불가능했다. 영화 상영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영어 대본도 없었다. 게다가 110분이 넘는 긴 작품이었다. 정말 큰일이 난 것이다. 재미 동포 두 명을 긴급수배했다. 그 둘이 영화를 보며 영어를 받아 적고, 나는 그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바로 옆에서 자막기사가 자막을 넣는 동시작업을 밤새 했다. 아침 첫 상영 시간에 맞춰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뛰었다. 거의 정각에 도착했다. 자칫하면 상영을 못했을 것이라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기억이다.

자막을 넣을 때는 왜 이리 길고, 말도 많고, 자료화면도 많은 것인지, 좋아하는 여배우 수잔새런든의 속사포 같은 내레이션까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부담을 덜고 작품을 찬찬히 보게 되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 작품은 104세라는 긴 생애동안 80여년을 언론인으로 산 조지 셀더스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를 빛나게 한 것은 힌덴부르크 나치최고사령관, 레닌, 무솔리니 등을 인터뷰했다는 경력이나 수많은 언론상을 수상했다는 등의 업적 때문이 아니다. 그의 생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추구한 평생에 걸친 투쟁으로 요약된다. 대상이 정부 또는 군부와 정보기관이 됐든, 대기업 또는 교회가 됐든 간에 비판에 성역을 두지 않고 펜을 휘둘렀다. 자본의 심각한 언론지배에 저항하고자 그는 독립 언론인의 삶을 추구한다. ‘자유언론을 바라는 수백만을 위하여’란 구호가 새겨진 주간지를 창간하기도 했고 많은 언론 비평서를 썼다. 영화에는 당시 98세인 셀더스가 출연하는데, 고령에도 타자기를 힘차게 두드리며 언론비평을 가하는 모습 그 자체가 비판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진실을 말하고 튀어라>란 작품에 대한 인권비평도 내가 썼는데 검열에 관한 부분을 옮겨본다.

타자기 앞에서 자기의 입을 틀어막고 글을 쓰는 언론인을 그린 삽화가 있다. 그림의 제목은 “자체 검열의 7가지 원칙”이며, 그 원칙이란 1) 검열은 국가 안보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2) 나는 우리의 지도자들을 신뢰한다. 3) 나는 고위층과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4) 나는 이 직업이 필요하다. 5) 나는 승진이 필요하다. 6) 나는 감옥에 가지 않아야 한다. 7) 어쨌든 반대편은 나쁘다.

이런 검열원칙이 고전적인 정치권력의 압력에서 나온 거라면 셀더스는 그것과 더불어 자본의 언론지배를 더 중요하게 본다. 자본의 언론지배에 대한 경각심을 그가 했던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다.

-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무엇입니까?
셀더스: 여론이죠.
- 여론을 만드는 건 뭡니까?
셀더스: 주요한 힘은 언론이죠.
- 당신은 언론을 신뢰합니까?
셀더스: 야구경기점수는 이따금 있는 오타를 제외하곤 늘 정확하죠. 주식시장시세표도 일정 한계 내에서 정확합니다. 하지만 뉴스는 말이죠. 당신과 당신의 일상생활, 당신의 직업, 당신과 타인들과의 관계, 사회경제적 문제에 관한 당신의 생각, 그리고 요즘 더 중요하게는 당신이 전쟁에 나가느냐 위대한 이상을 위해 생명을 무릅쓰느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뉴스로 말하자면, 거대 신문과 거대 잡지사의 98%(아니 99.5%)를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 왜 언론을 신뢰할 수 없죠?
셀더스: 왜냐하면 언론이 거대 사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대 도시의 신문과 잡지들은 상업화되었거나 거대 기업이 되었고 소유주나 주주들의 이익 말고는 다른 어떤 동기로도 운영되지 않습니다. 거대 언론은 광고 없이는 단 하루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광고는 대기업으로부터의 돈을 의미합니다.


셀더스는 1914년에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20세기를 온전히 언론의 자유에 바쳤던 이 언론인이 지금의 한국 언론 상황, 피디수첩 사건을 보면 무슨 말을 뱉을지 상상이 간다. 1938년에 그가 쓴 책 <언론의 제국>에는 ‘자유 언론에 대한 열 가지 시험’이 들어있다. 지금의 언론은 이 시험지에 대해 무슨 답변을 써낼 것인가?

98% 아니 99.5%의 뉴스를 믿을 수 없다는 셀더스의 말처럼 나는 대개의 언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0.5% 내지 2%의 언론에 희망을 건다. 피디수첩은 그런 언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인권활동을 하는 동안 피디수첩과의 인연이 적지 않다. 피디수첩은 전과 7범의 출소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고 감옥실태를 고발하게 했고 법무부장관과 대담하게 해줬다. 인권을 유린하는 폐쇄적인 사회복지 시설을 인권단체가 치러 갈 때 카메라를 들고 호위하듯이 동행해줬다. 자신들이 받은 언론상 상금을 전액 인권단체에 후원했다. 인권단체인 우리조차 대중의 공격적인 힐난이 두려워 꺼려하는 문제에 대해 용감하게 발언했다. 그런 언론이 거짓된 사과방송으로 모욕 받고 말도 안 되는 징계로 유린되는 것을 가만 두고 보는 것은 우리의 인권을 목 조르는 일이다. 다시 한 번 예전에 <진실을 말하고 튀어라>에 썼던 인권비평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인권의 증진은 언론이 능동적으로 개입할 때 가능하며, 언론의 효과적인 작용은 인권 존중에 달려있다. 특히, 국경에 상관없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고 전달할 수 있는 자유(세계인권선언 19조)의 존중에 언론의 생명이 달려있다. 그래서 이상적으로 우리는 언론이 자유롭고 비판적이며 건설적이기를 기대한다. 외부 압력에 의한 보도 통제에서 자유롭고 공공 당국만이 아니라 사적권력이 집중된 다국적 기업 등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실천을 위한 제안과 아이디어를 위한 지면을 만들어내는 건설적인 언론을 말이다. 그래서 검열의 문제는 당사자인 언론에게뿐 아니라 언론이 직시해야 할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일 수밖에 없다.

자유 언론에 대한 열 가지 시험(조지 셀더스, 1938년)

1) 정치 정당들에게 동등한 지면을 할당하라.
2) 소수 정당들에게 일정한 지면을 할당하라. 적어도 그들의 영향력에 비례하는 지면을 주라. (이 두 가지 시험은 독립적인 척 하는 대다수 언론들을 도마에 올릴 것이다.)
3) 연방통상위원회(FTC) 보고서를 보도하라. (이 보고서들은 충분치는 않지만 식량, 음료, 옷, 담배, 우유 등의 최대 생산업자들 다수가 사기 친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4) 담배와 자동차, 즉 최대의 광고주들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
5) 소비자들과 공정한 거래를 하라. (요즘 자유주의와 좌파의 주간지들만이 발행하고 있는 소비자 상품에 대한 보고서를 똑같이 보도하라.)
6) 조직화된 압력을 거부하라. (미국재향군인회, 가톨릭교회조직들, 기업과 광고조직들, 그밖에 또 저널리즘에 겁먹은 소들과 코끼리들에게 알려라. 더 이상 뉴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이다. 모든 발행자들이 한 목소리로 이것에 합의하면 어떤 손실도 없을 것이다.)
7) 노동 뉴스를 전하라. 노동과 공정거래를 하라. (다른 무엇보다도 노동 분야에서 언론이 땅에 떨어질 만큼 악화됐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한다.)
8) 허스트(역자 주: 당대 신문왕이라 불리던 미디어재벌)를 쫓아버려라. (AP 통신사는 뉴스를 훔쳤다고 허스트를 고발했고 재판에서 이겼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를 쫓아내지는 못했다. 미국신문발행인협회도 그러지 못했다. 허스트를 배후에 두고 있는 한 어떤 언론 조직도 윤리적 주장을 할 수가 없다.)
9) 신문팔이소년들에게 몇 푼을 아낄 수 있다는 이유로 아동 노동을 옹호하는 일을 멈춰라.
10) 논쟁의 양측을 다 보도하라. (뉴욕 데일리 뉴스는 루즈벨트 대 랜든 선거전에서 “대통령 선거전”과 노동에 관한 “경제 전쟁” 둘 다를 보도했다. 그 보도는 그 신문에 자유를 줬다. 하지만 자유를 취하는 신문은 거의 없다. 양측 모두를 보도하길 거부한다면 어떤 신문도 자유를 주장할 수 없다.)

* 조지 셀더스의 글을 읽은 언론인, 편집자, 언론학과 교수들이 다섯 개의 목록을 덧붙여 제시했다고 한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공익 대신에 공공의 복지를 옹호하라.
2. 급진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 등에 대해 빨갱이사냥 없이 사실을 보도하라.
3. 미국 내의 협력적인 운동을 발굴하라.
4. 소비자 조합의 광고를 운영하라.
5. 편집 정책에 동의하는 기고만 싣는 것을 멈춰라.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