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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철회를 넘어 철폐 투쟁으로!

85호 크레인을 보며 잊혀진 전선을 기억해내라

역사적으로 노동법이란 가진 자들의 재산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과 자유를 위한 투쟁 속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자본의 무기가 되고 있는 노동악법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으로 노동법의 역사를 써오고 있다. 단결의 자유를 제한하는 복수노조 금지, 노동자의 기본 권리인 정치활동 금지, 노동자의 계급적 연대를 봉쇄하는 제3자 개입 금지에서부터 지금의 비정규악법에 이르기까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의 투쟁은 그를 가로막는 악법과의 투쟁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당장에 그 법과 제도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악법임을 폭로하고 악법 철폐를 위해 맞서 싸우는 지난한 투쟁을 손 놓지 않는다면, 결국엔 악법을 무너뜨리고 권리를 위해 한 발 더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제도를 인정하는 순간, 악법은 우리의 안으로 스며들어 더 이상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리해고제의 문제이다.

IMF 외환위기를 빌미로 들어온 정리해고제

노동자의 일자리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직접적 수단이기에 누구도 그 일자리를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자의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는 권리로 기능하지 못하고, 자본에게는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무한한 해고의 자유가 주어지고 있다.

정리해고제 도입 당시, 이 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노동운동은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96~97년 총파업으로 정리해고제를 비롯한 악법을 막아냈지만, 이후 IMF 외환위기를 빌미로 들어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 틀에 떠밀려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합의하는 역사적 과오를 범했다. 그러면서도 정리해고가 이미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인정되고 있으니 정리해고 요건을 규제하면 된다는 안이한 사고를 가지기도 했고, 노사정 합의 이후 투쟁을 접으면서는 현장에서 투쟁으로 막아내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다시는 ‘정리해고제 철폐’의 요구가 투쟁의 전선에 세워지지 못했다. 제도의 도입 후 곧바로 이어진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에서부터 현장은 각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정리해고가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 사업장의 현장 분위기는 빠르게 경직되어 갔고, 현장 투쟁의 기운은 잠재워졌다. 그 속에서 노동자 한명 한명에게 주어지는 힘겨운 장시간 노동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정리해고제가 노린 것은 무엇인가

정리해고를 흔히 기업이 경제위기 등에 직면하여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대규모로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일정 인원 이상 정리해고를 할 때에는 노동부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어 자본가들은 숫자를 조정해 단계적으로 노동자들을 잘라냈다. 그렇게 첫 번째의 해고에 저항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순차적으로 잘려나갔고, 한두 명을 잘라낼 때도 이제는 경영상 해고라고 자본은 주장한다.

게다가 정리해고는 자본이 경영의 위기 시에만 자행한 것도 아니었다.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었고, 부당해고의 여지를 피해가기 위해서도 자행되었다. 그렇게 정리해고제는 ‘잘만 하면’ 가장 손쉬운 구조조정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한진중공업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경영이 어렵다면 대량 해고 후 이어진 거액의 주주배당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빅 공장으로 지속적으로 물량을 이동시키면서 국내 공장의 생산률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후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채워나가기 위한 시도라는 의심을 피할 수 있겠는가.

또한 구조조정 수단으로서의 정리해고는 늘 자본이 실제 직면한 위기의 수준을 초과하여 광폭하게 이루어진다. 자본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후 더 큰 이윤을 벌어들이기 위한 구조재편의 수단으로 정리해고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정된 일자리는 극단적인 인력 조정으로 대폭 줄이고, 임금삭감, 최저임금 개악으로 노동조건을 바닥 수준으로 떨어뜨린 후, 그렇게 완전히 헐벗은 일자리에 다시 비정규직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것이 정리해고제와 함께 파견제가 쌍을 이루어 도입되었던 이유이다.

'대표 주자'에 갇힌 시야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 운동이 범했던 또 하나의 오류는 늘 대표 주자를 앞세워 왔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투쟁이 그러했고, 이후 이어진 만도기계의 정리해고,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에서도 그랬다. 2008년 경제위기시 쌍용자동차의 투쟁, 지금의 한진중공업의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정리해고제 철폐를 위한 투쟁 전선을 구축하지 않고, 하나의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투쟁의 집중은 오히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시야를 가둔다. 그리고 그런 대표주자 내세우기는 결국 하나의 사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이어지는 다른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다.

2008년 경제위기시 쌍용자동차에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일어났지만, 당시 정리해고가 벌어진 사업장은 쌍용자동차만이 아니었다. 드러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잘려나갔다. 비정규직이 먼저 소리 없이 잘려나갔고, 정규직 희망퇴직이 이루어지고, 수차례 단계적으로 노동자들이 잘려 나갔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나만 아니면’이라는 생각에 옆의 노동자들이 잘려나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고, 비정규직이 먼저 구조조정되는 것을 외면했고, 대상에 해당되지 않기 위해 정리해고 칼날 앞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정리해고제 철폐를 모든 노동자의 투쟁의 요구로 모아 외치지 못했다.

문제의 핵심은 ‘정리해고’라는 제도에 있다. 정리해고, 즉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해고는 명백하게 노동자의 잘못이 없음에도 노동자의 일자리를 한순간에 빼앗아가는 악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점점 더 느슨해져 ‘경영상의 이유’라는 것이 자본가의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98년 악법에 맞선 저항을 놓아 버린 그 순간부터, 개별 현장에서 힘으로 막아내자고 한 순간부터 그 개별 현장은 자본과 정권의 폭력 앞에 무너졌고, 조직되지 못한 사업장이나 조직력이 약한 사업장에서는 자본의 해고의 자유가 너무도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고제 철폐 투쟁 전선을 세워야

정리해고제 철폐를 위한 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잊지 말자. 단 한 번도 노동자의 잘못은 없었다. 다만, 자본의 책임을 끊임없이 노동자에게 지우기 위한 일상적인 구조조정 책동, 그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정리해고였다. 이 악법을 철폐하지 않는 한, 노동자가 숨 쉴 곳은 없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한다. 이처럼 끔찍한 외침이 또 있을까. 아니, 이처럼 진실을 분명히 드러내는 구호가 또 있을까. 자본에 의한 노동자 해고가 정말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현실에서 보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점거 투쟁, 그리고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 아직도 이어지는 죽음. 그리고 우리는 지금 온 마음으로 35미터 고공에서 투쟁하고 있는 김진숙 동지가 살아 내려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 바로 정리해고제의 완전한 철폐를 위한 투쟁이다.
덧붙임

엄진령 님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