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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경의 인권이야기] 정부 입장에 반한다고?! 당신의 글은 위험합니다!

천안함 사건 때 "전쟁난대"라고 인터넷메신저로 친구에게 이야기 했다고, 유튜브에 올라온 천안함 패러디동영상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고, 공개된 어뢰 사진에 의문을 제기 했다고 해서 기소가 된 사례가 있다. 그들은 무슨 이유로 어떤 법에 의해 조사를 받고 기소까지 된 것일까?

내가 어렸을 때, 텔레비전 뉴스, 라디오, 신문에 나오는 내용이나 대통령, 국회의원 등 유명 인사들이 하는 말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모두 '진실'로 받아들였다. 언제부터인가 '진실'로 보여 지는 것들에 의구심이 들었던 것 같다. '저 사건은 조작된 것이 아닐까?' '저 말은 거짓이 아닐까?' 아마도 정치인이나 권력자들, 언론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인터넷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설들을 제시하곤 하는데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상상을 뛰어넘는 스릴감 있는 '음모론의 향연'이랄까. 수많은 음모론들은 그냥 한 개인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묻히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의심으로 시작된 의견이 근거가 충분하고 논리적일 경우, 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파헤쳐서 기존의 사실이 거짓임을 밝혀내기도 한다. 인터넷에 의견을 개진 할 때 그것이 사실에 기반 할 수도 있고 사실로 믿는 허위에 기반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허위와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신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권리가 있으니깐!

그러나 요즘 가설이나 음모론을 함부로 인터넷에 펼쳤다가는 어느 날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라. 한국에는 인터넷에 올린 ‘그 내용’이 ‘허위’라고 하여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법이 있다. 나는 이 법이 참 부끄럽다.

전기통신법 제 47조 1항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기통신법 제 47조 1항, 이 이상한 조항은 45년 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2008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2008년 6월 20일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여대생이 경찰에 의해 사망했다는 설이 인터넷으로 퍼지기 시작하자, 검찰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하여 유포자를 기소한다. 이를 시작으로 이 조항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문제시 되었던 코믹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미네르바’ 사건이다.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인터넷에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외화예산환전업무가 중단된 것처럼 글을 작성하고 정부가 주요은행 등에 달러매수를 금지하는 긴급공문을 보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이 기소 된 이유였다. 검찰을 코미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단체휴교령문자를 보냈다고, 이명박 대통령 패러디물을 만들었다고,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정부의 입장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고 하여 이 조항을 적용하여 기소를 해댄다. 최근 연평도 사건에 관련된 허위의 글을 올렸다고 해서 기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관련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 허위 사실을 유포한 행위자에 대해 사건 당일(11.23) 저녁 2명을 신속히 검거하는 등 총 48건을 적발하여 23명을 검거(1명 훈방)하고 25건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수사 중이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위와 같은 사례들을 보면서 이 법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셨나? 이 조항을 적용한 사건 대부분이 정부정책이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관련한 사안들이다. 공인은 언론매체를 통해 대응할 수 있는 폭이 개인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입장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고 해서 법으로 대응하고 논란을 잠재우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고 해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 유포'라고 판단하여 기소를 계속한다면 표현의 위축효과를 불러올 것이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건전하게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당할 것이다. 또한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자의적 해석으로 판단될 소지가 높고 정치, 정책 등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 조항 어디에도 '허위의 내용'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 조항을 적용하여 '허위사실유포죄'로 기소하고 있다.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유포자가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에는 명예훼손, 사기, 상표권침해 등 여러 가지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이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타인에게 피해발생여부를 묻지 않고 형사 처벌할 수 있다. 바로 '허위' 그 자체만으로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명확하게 공익과 허위를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현재 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에 있다. 지난 5월 방한한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 씨는 기자회견에서 이 조항에 관해 "‘허위의 통신’ 이나 ‘공공복리’와 같은 개념들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표현의 자유 행사에 과도한 제한을 가하고 있으며 어떤 의견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단지 그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누구도 기소되어서는 안 된다" 며 이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법은 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엄격한 사회질서의 기준으로 ‘질서’라는 말이 ‘정부에 반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어 처벌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의 존재가 부끄러운 이유다.
덧붙임

정민경 님은 진보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