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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권리를 이야기하자- "2008 성소수자 권리선언"

[2008년 인권선언운동] 12월 2일 발표 예정

LGBT들, “성소수자 권리선언”을 만들다

지난 11월 22일, <2008 LGBT 인권포럼>이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LGBT'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말한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주최한 이 포럼에서는, 최근에 벌이고 있는 릴레이 인권선언의 일환으로 <2008 성소수자 권리선언>을 완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무지개행동’의 ‘열린회의’(정기회의)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만든 선언을 발표하고 수정 의견을 취합한 것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시고 수정 의견을 보태주셔서, 짧지만 의미 있는 선언을 만들 수가 있었다. 완성본은 12월 2일 ‘무지개행동’의 ‘열린회의’에서 최종 검토를 거쳐 곧바로 대외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무지개행동’이 릴레이 인권선언에 참여하면서도 고민은 있었다. <LGBT 인권포럼> 준비 중에 급하게 진행돼 현실적으로 집중적인 활동을 만들기가 어려웠던 점이 컸다. 거기에 더해, 우리 내부적으로도 인권선언이라는 형식이 성소수자의 인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충분히 논의될 수 없어서 아쉬움도 있었다.
그렇지만 ‘무지개행동’에게 인권선언 만들기는 중요한 일로 다가왔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적’이고 혐오적인 존재로 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선언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올해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었다. 소수자의 삶이 인권이라는 이름을 얻는 데 세계인권선언이 미친 영향을 생각하는 한편, 세계인권선언이 과연 성소수자를 ‘모든 사람’에 포함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인권선언이 말하고 있지 못하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우리는 외칠 필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권리를 선언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는 계기기도 했다. 우리는 아직 인권선언이라는 형식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인권선언이라는 것이 해외의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었는데, 우리가 주체가 된다고 하니 긴장을 느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릴레이 선언이라는 형식 속에서 여러 권리 선언들이 이어지고 있는 하나의 흐름에 함께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인권선언이 던져준 질문들

성소수자 권리선언을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항목을 설정하는 일, 형식을 확정하는 일부터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성소수자에 SM(가학-피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도 넣어야 하지 않을까?” “남자끼리나 여자끼리 커플로 여관 갈 때 있잖아, 뻔히 빈방이 있는데도 방 다 나갔다고 안 주는 거, 이런 거에 대한 권리는 뭐지?” “트랜스젠더가 동성애자랑 겪는 것이 다른데, 이 내용들이 한 데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분리를 해야 하나?” “기존의 선언문과는 형식부터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 속에서 내용과 형식을 잡는 데 혼란을 겪었다. 결국에는 쉽게 가기로 했다. 성소수자는 노동권, 의료권, 가족구성권 등을 가진다는 식으로 기존의 권리 양식에 맞추기로 한 것이다. 일반적인 시각이나 형식에서 벗어나는 재미있는 텍스트가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그래도 성소수자의 이러한 권리 선언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성소수자가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의 형태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쓰고 집단적으로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권리와 내용을 생각하며, 성소수자의 권리와 차별에 대한 감각을 섬세하게 할 것이다. 가령 <LGBT 인권포럼>에서 나온 ‘성소수자 권리선언’에 대한 의견 중에는, 이성애자이면서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성별에 따라 고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성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이들도 성소수자라는 지적, 에이섹슈얼(asexual, 무성애자.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성별에도 성적 이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도 하나의 성적지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지적 등이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담론을 한층 넓고 깊게 할 것이다.

소수자의 일상과 인권선언

소수자는 매일매일 권리의 선언을 한다. 차별의 문제가 있을 때, 혹은 불편함이 있을 때 이를 발설하는 행위가 권리의 선언이다. 그 권리의 내용은 사실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이다. 딱히 생존과 관련돼 있지 않은 것들도 많다. 남자가 남자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할 권리, 여성이 여성에게 사랑 고백하는 것이 낯설거나 불편한 일이 되지 않을 권리, 트랜스젠더가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을 권리, 무지개 깃발 아래 있을 때 혹여 아는 사람이 볼까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는 권리 같은 것들이다. 이런 권리들은 표현의 자유라든가 사생활의 자유라는 이름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문서 속의 권리의 항목들과 소수자의 보통 삶 속에서의 권리가 곧바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선언의 권리 항목들은 우리의 일상을 다시 보게 한다. 집과 언론과 가족과 관공서와 사랑과 법정과 직장 등과 관련한 모든 삶이 인권임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소수자가 가져야 할 권리의 항목들을 만들어내는 작업 속에서 소수자 운동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들, 좀더 섬세하게 다가가야 할 분야들을 발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권선언을 한다는 것이 너무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권리선언, 우리의 일상을 더욱 세밀하게 보게 하는 권리선언, 이것은 바로 소수자의 삶 자체일 것이다. 우리가 가진 이런 권리 감각으로, 나와 다른이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좀더 아프고 상처받을 수 있었으면, 그래서 지금의 불편하고 차별받는 현실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 속에서 덜 아프고 덜 상처받도록, 덜 불편하고 덜 차별받도록, 당신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 세상을 만들기. 이것이 우리가 인권을 선언하는 이유일 테니까.

<2008 성소수자 권리선언>(최종 검토용)

모든 사람은 성적 지향과 취향,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지의 여부, 하나의 성별로 확정되는지의 여부, 성별에 따라 고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성역할의 수행 여부와 무관하게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차별은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 제한, 불리한 대우 및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억압적인 상황을 형성 · 유지 · 방치하는 모든 일을 포함한다.

우리는 성별, 인종, 국적, 연령, 종교, 장애, 건강 및 경제적 지위 등을 비롯한 여타의 차별, 그리고 이러한 차별과 연관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한다. 이 선언은 차별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이제까지 충분히 드러나거나 언급되지 않았던 권리들을 실질적인 인권의 내용으로 삼도록 하는 일이 모든 사람의 권리와 의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1. 성소수자는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권리이다.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퀴어, 인터섹슈얼(간성), 에이섹슈얼(무성애자) 등 모든 성소수자는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2. 성소수자는 자신의 성적 지향과 취향, 성별 정체성을 표현할 권리와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는 자신의 성적 지향 및 취향, 성별 정체성에 대해 존중받으며 당당하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다. 또한 자신의 성적 지향 및 취향, 성별 정체성과 관련한 자기결정권을 지닌다. 그리고 자신의 성적 지향 및 취향, 성별 정체성과 관련한 정보를 드러낼지 드러내지 않을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

3. 성소수자는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동등한 노동의 기회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이나 취향 및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하거나 해고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동등한 노동의 기회를 보장받을 뿐 아니라 승진 및 보직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 그리고 직장 내의 공적 · 사적 관계망에서 배제되거나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4. 성소수자는 성정체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이나 취향이 다양할 수 있으며 성별 정체성과 생물학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전제하고 존중하는 환경 속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교육의 원칙은 교육기관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과정에서 지켜져야 한다.

5. 성소수자는 법 앞에서 평등하게 인정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불리하게 법 적용을 받거나 공정한 재판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법적 절차와 관련하여 어느 누구도 성적 지향·취향, 성별 정체성을 숨기거나 부인하도록 억압이나 압력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또한 성소수자는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6. 성소수자는 주거, 매체 등의 공공재에 동등하게 접근하고 생산·분배할 권리가 있다.

공공재의 생산과 분배·구매의 과정에 성소수자의 관점이 반영되어야 한다. 성소수자의 삶을 고려하지 않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내포하는 방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7.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이나 취향, 성별 정체성을 바탕으로 가족과 공동체를 구성할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는 주체적으로 구성한 다양한 가족과 공동체의 형태를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성소수자가 구성한 가족과 공동체는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로서만 구성된 가족과 공동체와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누구나 공적 서류상의 보호자나 동반자, 각종 공·사 보험의 수혜자를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8. 성소수자는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성적 지향과 취향, 성별 정체성에 대해 의료적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는 지속적이고 높은 수준의 의료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 의료 지원의 패러다임을 넘어, 각자의 성적 지향과 취향, 성별 정체성에 부합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성적 지향과 취향, 성별 정체성은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즉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과 취향, 성별 정체성에 관하여 치료를 강요당하거나 억제를 위한 의료적 조치를 당하는 등의 의료적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덧붙임

* 오가람 님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