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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2008 인권선언운동

집이 투기상품이 된 현실을 넘어서

[2008년 인권선언운동] 주거권 선언, 집은 인권이다

유엔은 1985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을 ‘세계 주거의 날’로 정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던 해에 건국된 대한민국에서 주거권은 봉인된 권리였다. 전쟁의 혼란에 이어 개발독재시대를 경과하면서 집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자본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개발의 이익은 건설자본가와 관료, 지역 토호세력들에게 공유되었고 이들의 공고한 ‘연대’는 극단적인 주거불평등을 가속화해왔다. 대한민국에서는 주거권의 보장이 아니라 주거권의 침해가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그동안 삶의 자리를 빼앗긴 철거민들, 몸을 누일 따뜻한 방 한 칸이 필요했던 노숙인들, 주소지도 없이 화재에 노출돼 위태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비닐하우스 주민들, 시설로만 몰아넣는 사회에 ‘집’을 요구하기 시작한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거권을 외쳐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주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모든 정책들은 인간이 아닌 이윤을 위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개발로 인해 서민들의 주거권이 박탈당하고 있지만 이명박은 오히려 개발규제완화와 뉴타운 전국화 등 개발의 선봉에 서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우리의 말로, 행동으로 주거권을 선언하자!

10월 5일, 세계 주거의 날 하루 전날, 철거민과 노숙당사자들, 비닐하우스촌 주민, 시설 장애인, 사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울역 광장에 모여 이명박 정부의 주택 정책 비판과 주거권 보장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오늘날, 부동산과 주거 관련 정책들의 문제점이 민중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며 이것이 ‘인권’의 문제임을 확인하고,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모든 사람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고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며 주거권 선언과 요구를 제시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주거권 선언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집은 일부가 독점하는 재산이 아니다!”
“살던 사람도 쫓아내는 개발을 당장 중단하라!”
“집이 권력이 되는 사회는 정말 싫습니다.”
“시설은 감옥입니다. 시설이 아닌 진정한 자립생활권을 보장하십시오.”

10월 5일 서울역 집회 모습

▲ 10월 5일 서울역 집회 모습



이러한 각각의 요구들은 특정한 집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문제다. 누구나 이러한 걱정을 안고 살고 있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다수의 문제라는 공감을 이끌어내고 많은 대중들에게 다양한 주거권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내 집 마련’이라는 동그라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대중들은 직접 주거권 선언에 동참을 하기도 했고, 집에 대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언은 누군가가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권리를 강화하고 이야기하고,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권리는 누군가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고, 강화하고,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주거의 날에 참여한 모든 대중들은 자신의 권리, 즉 주거권을 자각하고 주위에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또 다른 행동으로 우리의 권리를 외치자

단 한 번의 주거권 선언으로 우리가 제기했던 내용과 요구가 관철될 수는 없다. 여러 단체들이 함께 모여 주거의 날을 계기로 새롭게 주거권을 확보하기 위한 연대를 시작했다는 의미가 오히려 더 클 것이다.

10월 5일 주거권 선언을 마치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 10월 5일 주거권 선언을 마치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아직은 많은 이들이 주거권 선언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상황인지라 직접 자신의 권리를 알리고 이야기하는 선언이 되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나아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빼앗는 현실에 저항하며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다른 권리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인권이 실현되는 질서와 누구나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8 인권선언’에도 참여하여야 한다.

아래는 10월 5일 발표된 ‘2008 주거권 선언’ 전문이다. 그리고 주거권 선언 현황을 보고 이에 동참하려면 http://poor.jinbo.net/zbxe/?mid=housing_foot1017&sub=3로 접속하여 연명하면 된다.


집은 인권이다.

우리는 언제쯤 살만한 집에 살게 될 것인가. 우리에게는 살만한 집이 아니라 삶을 짓누르는 ‘집’만 허용되고 있다.

주거권은 집을 투자 상품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더욱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건설자본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하고 가진 자들을 위해 세금을 줄여주고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집값이 올라 집에서 내쫓기고 개발 때문에 집을 빼앗기고 있다. 개발의 이익은 건설사와 정부 관료와 지역의 토호세력들에게로 돌아갔고 이들은 끊임없이 더욱 많은 개발을 부르짖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떠들지만 각종 부동산정책으로 경제는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빼앗길 것조차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동안 삶의 자리를 빼앗긴 철거민들, 몸을 누일 따뜻한 방 한 칸이 필요했던 노숙인들, 주소지도 없이 화재에 노출돼 위태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비닐하우스 주민들, 시설로만 몰아넣는 사회에 집을 요구하기 시작한 장애인들은 주거권을 외쳐왔다. 이제 우리는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외칠 것이다. 집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되도록 요구할 것이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요구를 들고 주거권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발 한발 전진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밝히는 권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던 땅이나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을 때까지 살 권리가 있다. 누구도 강제로 쫓아낼 수 없다.

2. 모든 사람은 적정 수준의 주거비 부담으로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각자의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주거비로 지출되어서는 안 된다.

3.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조건에 상관없이 적당한 수준의 집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건강을 해치지 않을 쾌적한 주거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 살만한 집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수에 적합한 넓이여야 하며, 부엌, 화장실, 온수시설 등 필수시설이 있어야 한다. 전기, 물, 도시가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고 난방비가 너무 비싸지 않아야 한다.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해야 하며 너무 습하거나 건조하지 않도록 지어져야 한다. 매연이나 먼지, 소음 등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행정이나 사회복지를 이유로 거주자의 동의 없이 거주 공간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5. 모든 사람은 각종 시설들을 이용하기에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대중교통의 이용이 자유로워야 하며 자신이 일하는 곳과 동떨어진 곳에서 살 것을 강요당해서는 안된다. 학교, 병원, 은행, 도서관, 문화시설 등의 공공시설이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 한다.

6. 임대아파트나 비닐하우스촌, 쪽방 등에 산다는 이유로, 혹은 집이 없어 거리에서 잔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국적, 인종, 성별, 장애, 나이, 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집을 구하거나 집에서 살아가는 데에 불합리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7. 살만한 집에 살 권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는 마구잡이 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

8.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및 주택정책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위에서 밝힌 권리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는 정부에 저항할 권리가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는 사람답게 살 권리를 빼앗는 현실에 저항하며 싸우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믿는다. 또한 살만한 집에 살 권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다른 권리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며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대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인권이 실현되는 질서를 가질 권리가 있다.


2008년 10월 5일

덧붙임

* 이재영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