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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석의 인권이야기] 고유가 시대에 민주주의라는 처방을

에너지, 국민의 주권 찾기가 필요하다

Energy(에너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이지만, 에너지라는 단어는 순우리말이나 한자어로 풀어쓰기 힘든 단어이다. 그만큼 일상생활에 가까운 것 같지만, 사실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에너지 문제이다.

최근 기름값 폭등이나 기후변화 문제로 에너지 문제가 언론에 언급되는 횟수는 늘었지만, 아직 우리사회에서 에너지 문제에 대한 관심과 합의는 그다지 높지 못하다.

미국 대선에서 매년 알라스카 유전 개발을 비롯한 연근해 유전개발이 주요 선거 이슈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이나, 최근 메케인 후보가 자신의 입장을 바꿔 TV 광고까지 만들어가면서 연근해 유전 개발을 강조하며 오바마 후보를 맹공격하고 있는 점은 에너지 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러운 사실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유럽 각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류세 인하 문제와 에너지원 선택 문제는 매우 중요한 국가 이슈였다. 70년대 이래 스웨덴, 이탈리아, 스위스 등이 국민투표로 핵발전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하였고, 대만에서는 비핵가원(非核家圓-핵없는 고향)을 주요 선거 공약으로 내건 민진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낮은 사회적 합의

에너지 문제는 사실 정책결정자들과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최근 고유가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잘못된 에너지 정책이나 예상되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거하지 못할 경우, 저소득층 및 사회적 약자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물이나 공기처럼 가장 기본적인 공공재로서 에너지는 생활에 밀접한 요소이다. 2004년 단전으로 인해 촛불을 켜고 자다 화재를 당한 여중생 사망사건이나, 올해 화물연대 파업, 자영업자들의 고통 등은 에너지 문제가 갖고 있는 중요성을 잘 드러내 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에너지 문제에 대한 언급과 논의는 대부분 묵살되는 분위기였다. 전체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나, 에너지 소비는 세계 10위인 우리나라는 그동안 중화학공업을 육성시키면서 에너지 다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를 고수해왔다. 원유를 100% 수입하고 있는 국가에서 2008년 상반기 석유화학이 수출 1위를 차지한 아이러니에 대해 우리사회는 제대로 된 성찰을 하지 않았다. 또한 중복 투자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 도로보다 에너지 효율이나 친환경성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철도 중심의 교통-물류체제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전 국민의 91%가 고유가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지금조차도 세제 혜택 등 단기적인 방법만을 고민할 뿐이다. 전 세계가 지난 20여 년 동안 고민해 온 재생에너지 보급과 확대가 왜 매년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지, 심지어 고유가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올해 태양광 발전에 대한 지원금이 왜 오히려 줄어들게 되었는지 함께 모니터링하고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에서 주권 찾기

혹자들은 “우리 사회에 고민할 문제가 너무 많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운동진영이 단일한 사안을 갖고 싸우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고민할 문제가 너무 많아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성숙해지고, 그동안 국가와 일부 권력자들이 독점해 오던 것들을 하나씩 챙겨오는 과정으로 본다면, 고민할 문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이들 문제에 대해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자신의 입장을 갖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다.

고유가 시대, 국민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틈을 타서 정부는 자신들만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려 한다. 고유가가 문제라고 지적하고는 있으나, 많은 양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는 산업구조와 교통-물류 체제는 손대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는커녕 핵발전소 추가 증설을 통해 더 많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계획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이 얼마나 올바른지, 에너지 빈국인 한국은 어떤 방향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정부출연연구소 몇몇 전문가만 답할 것이 아니다. 그 계획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우리 모두의 몫이 되어야 한다. 국민으로서의 주권 찾기는 적극적인 개입과 입장 제출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에너지 문제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덧붙임

이헌석 님은 청년환경센터의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