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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석의 인권이야기] 당신이 소모하는 전력은 어디서 생산되는지 아십니까?

서울사람은 모르는 전력에 대한 '불편한 진실'


서울의 전력자립도는 3.7%

우리나라의 서울-수도권 집중화 경향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천만 서울의 인구를 초월해 버린 경기도를 비롯해 260만 명이 넘는 인천까지 약 2400만 명이 서울-수도권에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다. 옛날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한반도에 온다면 넓은 땅 놓아두고 빽빽하게 모여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교통, 대기, 각종 폐기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고,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서울에서 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수도권의 전력 공급문제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안 가운데 하나이다.
전기는 다른 재화와 달리 생산과 동시에 소비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용량의 발전소를 짓는 것과 함께 이를 공급하기 위한 충분한 용량의 송전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가정집의 전기배선을 문어발식으로 연결할 경우 화재의 위험이 있는 것처럼 충분한 용량의 송전망과 발전시설이 잘 조화되어 있지 않으면 대량정전사태와 같은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서울-수도권은 전력소비는 매우 많지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은 없다는 것이다. 2007년 기준으로 서울, 경기,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은 약 14만GWh의 전력을 소비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전력소비의 38.1%에 해당하는 양으로 제주의 46배, 강원도의 10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은 5만8천GWh정도로 수도권에서 필요한 전력의 40%정도밖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인천지역에 영흥화력, 인천화력 등 대규모 화력발전소 등이 몰려 있어 수도권 전력의 75%를 생산하고 있기에 이정도 수치가 가능한 것이지 서울만 놓고 본다면, 서울의 전력 자립률은 3.7%로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지역 간 형평성을 심각히 훼손하고 있는 발전소와 송전탑 건설문제

나머지 96.3%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서울을 중심으로 발전소 건설계획을 계속 추진 중에 있다. 이미 핵발전소 1기와 용량이 버금가는 80만kW급 대형 유연탄화력발전소인 영흥화력발전소가 1~2호기까지 가동되고 있으며, 3~4호기는 건설 중, 향후 5~8호기도 이후 계획 중에 있다. 영흥화력발전소는 90년대 후반 지역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건설이 강행되었고,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1-2호기만 건설할 예정으로 수정되었으나 매번 전력수급계획이 논의될 때마다 신규건설계획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수도권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충청권과 동해권의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계획도 이미 완료되었다. 당진 화력발전소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당진~신안성간 7,650V(765kV) 초고압송전탑이 이미 완공되었으며, 울진 핵발전소의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해 신태백~신가평 구간의 765kV 초고압송전탑도 건설을 완공했다. 송전탑은 건설되는 구간마다 인접한 인가와의 전자파논란, 송전탑 건설로 인한 산림훼손 및 토사유출문제, 미관상 문제 등으로 한전의 주요 민원 유발사항 중의 하나이다. 특히 신태백~신가평구간은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구간으로 경북, 강원권에 전력수요가 없는 가운데 울진에 계속 증설되고 있는 핵발전소의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어 건설 당시 많은 논란이 되었던 송전탑이다. 초고압송전탑은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부산-울산권의 핵발전소로부터 생산한 전력을 서울-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 노선도 검토되고 있어 이러한 구상까지 현실화된다면 에너지 문제에 있어 서울-수도권 집중화 경향은 다른 문제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과 충청-서해안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 화력발전소 밀집지역, 그리고 동해안을 따라 울진, 경주(월성), 울산(신고리), 부산(고리)로 이어지는 핵발전소 밀집지역은 우리나라 에너지 문제에 있어 지역 간 불균형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자신의 지역에 필요하지 않은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각종 대기오염물질 생산시설을 옆에 두거나 핵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살아야 하는 지역주민들에게 단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그리고 대도시에서 편하게 에너지를 쓰고 있는 우리들이 잊고 살아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기후변화시대, 지역간 에너지 불균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날 인천과 충남 등 서울에 인접한 도시들이 서울에 더 이상 전기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리나라처럼 중앙집권 시스템이 강력한 곳에서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난 8월 보령시는 신보령화력발전소 1,2호기를 유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발전사업자인 한국중부발전은 석탄화력발전소인 신보령 1,2호기를 건설하기 위해 건설의향서를 전력거래소에 제출하였지만, 보령시는 이를 뒷받침할 유치요청서를 제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미 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인 보령시의 입장에서는 지역의견 수렴결과 의향서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론 현행법상 지자체가 발전소 건설을 결정적으로 막을 수 있을 만큼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흔히 세수확보,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이유로 발전소 건설을 적극 찬성하는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기후변화협약의 온실가스 배출 의무가 정해질 것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배출 의무가 정해지게 되면, 이에 따라 지자체의 배출의무와 감축목표 설정은 법제화될 것이다. 이미 지자체의 감축의무 등을 규정한 기후변화대책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할 때 지역 간 형평성 문제는 단지 환경정의 차원의 선언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또한 서울과 같은 인구밀집형 대도시나 울산과 같이 산업집중형 대도시의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부드러운 정책으로는 안 될 것이다. 에너지 자립을 기본으로 하되, 부족한 부분을 타 도시에서 가져오는 기본 발상의 전환과 부족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분산형, 친환경적 에너지원을 개발-보급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필요한 때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극단적일 수 있으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해결책을 찾는 것은 현재 기후변화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자신이 소비하고 있는 에너지가 어디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이동하면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그동안 몰랐던 우리 주변의 '불편한 진실'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일부터 진행되어야 기후변화 시대, 우리의 후손들에게 기후변화의 아픔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덧붙임

* 이헌석 님은 청년환경센터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