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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삼척에서 불어오는 높새바람

삼척 핵발전소 유치 철회 주민투표 소식을 듣고

10월 9일 강원도의 작은 도시 삼척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삼척 핵발전소 유치 신청 철회 주민투표에 전체 유권자의 절반 정도가 참여해 그 중 85%에 이르는 주민들이 핵발전소 유치 신청 철회의사를 밝힌 것이다. 2003년 전북 부안 핵폐기장 건설을 치열한 반대 투쟁 끝에 부안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막아낸 경우는 있었지만, 핵발전소 유치 여부에 대해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모아낸 경우는 처음이다. 사실 삼척 주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벌써 세 번째 반핵 투쟁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90년대에도 삼척에 핵발전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밀렸고, 2000년대에는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1999년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내면서 ‘원전 백지화 기념비’를 세운 삼척 시민들이 15년 뒤에 다시 기념비 앞에 모여 핵발전소 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상 핵폐기장은 주민투표를 반드시 실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핵발전소는 지자체의 유치신청서만 접수되면 유치가 가능하다. 이에 정부는 삼척시가 이미 유치신청서를 적법절차에 따라 접수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없는 주민투표를 따를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무슨 법률자문기구인가? 주민투표가 유효한지를 답하기 전에, 정부 스스로 해당 지역 주민의 유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핵발전소 유치에 대한 삼척 주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원점에서 재검토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는 정부에 30여 년 동안 맞서온 삼척 주민들의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 

‘화석연료-핵에너지 체제’라는 거대한 구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국가는 30여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동해안의 작은 도시에 핵발전소를 지으려고 하는 걸까? 지역 주민들의 끈질기고도 오랜 싸움은 왜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걸까? 이 강력하고도 끈질긴 힘 그리고 마치 인간의 조건이라도 된 듯한, 한국사회의 에너지 생산소비 방식을 ‘화석연료-핵에너지 체제’라고 이름 붙여도 될 것 같다. 체제나 구조라는 말이 인간의 행위, 관계, 책임을 은폐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핵발전을 비롯한 에너지 생산소비 시스템에 대해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다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잘 들어맞는다. 또한 지구온난화와 같은 실질적 위험, 스리마일-체르노빌-후쿠시마에서 반복해서 목도하는 핵발전의 재앙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자본이 결코 멈추지 않는 모습은 체제라는 말 말고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화석연료-핵에너지 체제’라는 말만으론 부족하다. 인간은 결코 홀로 자연과 대면하지 않는다. 언제나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서 즉 사회 속에서 자연과 만난다. 소농공동체 사회에서 석유를 이용해 대규모 운송수단을 만들고 온갖 석유화학제품을 이용해 다양한 물건을 생산하고, 핵발전소를 만들어서 감당하지 못할 전력을 생산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래서 ‘화석연료-핵에너지 체제’라는 말은 언제나 자본주의와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을 비판하고 근대 문명을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가 목격하는 욕망과 문명을 만들어낸 ‘자본주의’를 직시해야 한다.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며 모두 사용하지도 못할 상품들을 경쟁적으로 찍어내고 시장에서 판매되지 못하면 폐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력의 대부분을 기업들이 소비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에 더해 핵발전은 국가 간 전쟁과 군비경쟁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2차 대전 때 사용되어 인류를 경악시킨 핵무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완화하기 위해 ‘평화적 핵 이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핵발전이 시작되었다. 특히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게 되는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기 때문에 ‘핵발전-핵무기’는 국가안보에 있어서 핵심적인 관심사안이 되었다. 미국으로부터 군사-경제-에너지 제재를 당하고 있는 북이 핵발전-핵무기를 통해 에너지-군사 안보를 이루려는 게 소위 ‘북핵 사태’의 핵심이다. 국가 간 긴장과 군비경쟁이 치열한 동아시아에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중국, 북조선, 한국, 일본 모두 ‘핵발전-핵무기’ 조합을 결코 놓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얻으려고 하지만 핵무기 확산을 우려한 미국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81년부터 도카이무라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가동해온 일본은 이미 44톤에 달하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몬주 고속증식로-로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통해 더 많은 플루토늄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가동이 모두 중단되어도 전력생산에 큰 차질이 없었지만 일본 정부가 여전히 핵발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국가 간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한 재생가능 에너지가 아무리 대중화되어도 동아시아에서 핵발전이 사라지긴 쉽지 않다.

‘화석연료-핵에너지 체제’는 ‘자본주의-국가’를 통해서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이다. 에너지 체제를 바꿔낸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국가’를 변혁하겠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공멸의 위험을 느끼는 일부 자본과 국가가 나서고 있지만, 언제나 당장의 생존과 이윤, 지배가 관심사인 자본과 국가는 위험을 끊임없이 외부화하거나 미래세대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에 맞서려는 환경, 생태 이슈 역시 인간의 행위, 관계, 책임, 권리의 문제이며 따라서 인권의 문제이다. 


삼척, 부안, 밀양, 강정, 평택 

그래서 삼척에서 들려온 주민투표 소식이 더욱 반갑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후쿠시마 이후 악화된 여론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무려 30여 년 동안 정부와 싸워온 당당한 반핵투쟁의 역사를 뒤늦게 알게 된 게 부끄럽기도 하다. 삼척주민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넉넉하진 않더라도 지금까지처럼 청정한 자연환경 속에서 안심하고 살아가겠다”, “가진 자들 배만 불리는 정부지원금 필요없다” 지역경제의 대부분이 관광과 농어업인 상황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정부가 핵 관련 시설 유치, 고용창출, 지원금으로 설득하려 하지만, 주민들은 지금처럼 살아가게 내버려두라는 답을 한 것이다. 30여 년 동안 싸워오며 주민들은 핵발전소를 유치한 다른 지역주민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생업은 어려워지고 핵발전 시설 하청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특정한 에너지 체제는 특정한 삶의 방식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정부가 핵발전소를 들고 와 삼척 주민들에게 강요했던 삶을 주민들은 당당히 거부한 것이다. 만약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핵발전소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려고 했다면, 주민들은 핵무기 반대 평화운동을 펼쳤을 것이다. 과거 평택 농민들이 미군기지 반대를 넘어 평화운동과 연결되었고 지금 강정 주민들이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키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에너지 체제의 변화가 ‘자본주의-국가’의 변혁과 직접 연결된다는 거창한 주장은 삼척, 부안, 밀양, 강정, 평택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의 투쟁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처지에 몰린 고령의 농어민들이 이대로 살게 해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하면서 시작한 싸움은 언제나 국가권력과 정면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너무 정당하고 당연한 요구여서 시작한 싸움에 조그만 시골까지 수천 명의 경찰들이 내려와서 계엄 상황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정부의 과도한 대응을 문제 삼기 이전에, 정부와 자본으로서는 그 시골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들에게는 그만큼 중대한 일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부안, 평택, 강정, 밀양에서 다른 지역으로 끊임없이 타전했던 투쟁의 울림을 이제 삼척에서 부는 높새바람을 흠뻑 맞은 우리가 퍼뜨릴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