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핵 기술은 전문가에게, 하지만 사용결정은 주권자에게!

[인권으로 읽는 세상] 탈핵이 인권이다

지난 6월 9일 국내 첫 핵발전소였던 고리1호기가 영구 정지됐다. 그로부터 한 달 남짓, 7월 14일에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신고리5·6호기의 건설도 일시 정지되었다. 이제 곧 신고리5·6호기 건설에 대한 공론화위원회가 꾸려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 공론화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그들만의 리그였던 에너지 정책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포함해 핵에너지 정책은 언제나 전문가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왔다. 에너지 정책의 경제성, 안전성을 전문가들이 검토하여 의견을 내고, 국가는 이를 근거로 지금까지 핵발전소 중심의 에너지 생산 정책을 추진해온 것이다. 핵에너지 기술은 고도의 복잡성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그 기술을 다루는 에너지 정책이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진다는 것은 그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고리5·6호기 건설을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에 반발이 이어졌다. 7월 5일에는 공과대 교수들이 현 정부의 탈원전 계획을 '제왕적' 조치라고 비난하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많은 언론들은 정부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에너지 정책을 '일반 시민'에 내맡겨 전문성, 공정성 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정말 그럴까? 핵에너지를 생산하고 이 에너지를 유통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 사회가 무슨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하고 사용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는 정치의 문제다. 에너지 정책의 복잡성은 단지 기술의 복잡성이 아닌, 가치판단의 영역이 뒤엉켜 있는 문제가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이 가치 판단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떠넘기며 소위 핵마피아라 불리는 집단적 카르텔에 국가가 동참하고 용인해왔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경제성과 안전성이 누구의 경제성이며 안전성인지 따져 물어가는 과정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에너지 문제를 정치의 주제로 다루며 어떻게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느냐에 해법이 있다.

어떤 에너지여야 하나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에너지 문제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이다. 핵발전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지진과 쓰나미로 핵발전소 가동이 중단되었을 때 가열된 핵연료봉 냉각을 제때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인재였다. 발전소가 튼튼해도 사고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고, 핵발전소 사고 앞에 국가는 무능하다. 30년 전 있었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사고 당시 31명이 사망했지만, 2016년 방사능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정부는 언제나 "한국의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차단해왔다. 2016년 경주, 울산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더 큰 지진이 와도 끄떡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핵발전에 대한 위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안전은 그 누구도 담보하지 못한다. 이제는 해법 없는 위험한 에너지로부터 결별해야 한다.

나아가 핵발전소를 둘러싼 불평등을 주목해야한다. 체르노빌이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방사능 물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지역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뿐이다.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서 농작물을 재배하고, 먹으며 지내고 있다. 이들에게 이주의 자유는 있지만, 이주할 수단은 없다. 후쿠시마 역시 마찬가지다.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은 일본의 가난한 노동자들을 후쿠시마로 불러들였다. 이들은 하청의 하청 노동을 전전하면서 위험 수당은 물론 건강 검진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제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은 마구잡이식 국책사업 추진의 문제와 더불어 그 근본 원인인 핵발전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지목했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반대 투쟁, 기장 해수담수화 반대 투쟁과 같은 지역의 싸움들도 이어졌다. 하지만 국가는 폭력으로 응답했으며, 사회는 지역이기주의의 문제로 치부했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여전히 초고압 송전탑 아래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또 핵발전소 주변에서 피폭의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핵발전이라는 구조에서 평등한 삶의 조건은 구축되지 않는다.

에너지는 인권, 새로운 공론의 장

핵발전소 건설 재개냐 중단이냐는 논의 앞에서 우리가 세워야 할 가치는 인권이다. 결정은 소수의 전문가가 하지만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에너지, 기업과 자본은 수혜를 얻고 누군가의 삶은 억압하는 에너지,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그런 에너지를 원하지 않는다. 이미 지역과 시민사회는 위험하고 불평등한 에너지 정책을 문제 삼으며 탈핵이라는 사회적 감각을 만들어왔다. 삼척 핵발전소 유치 반대 투쟁은 지역 주민투표라는 방식으로 공론의 장을 열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모이고 쌓여 탈핵을 공약으로 내건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지난 10년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된 친원전 정책의 흐름 속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원자력을 홍보하기 위해 매년 100억 원 이상을 홍보비로 사용했지만 탈핵을 원하는 목소리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이 목소리를 발 딛고 서있다. 위험하고 불평등한 에너지와 결별해야한다는 교훈 앞에서 탈핵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인권적 가치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전문가의 찬반 의견에 시민이 들러리가 되는 것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서 핵발전소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다루도록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