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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

‘을’들의 이어말하기에 함께 하며

저는 성매매와 관련해서 차별을 이야기 하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성매매에서 무엇을 차별하지 말자는 것인지가 늘 모호하기 때문인데요, 제가 모호하다고 하는 것은 성판매 여성의 차별의 경험이 모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저희가 생각하는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너무도 명확하고, 현장에 있는 여성들이 직접 호소하는 차별 경험은 너무도 생생합니다. 문제는 성판매 여성이 말하는 피해 혹은 차별을 전해 듣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보통 우리가 어떤 곳에서든 손님들 가운데 유난을 떠는 사람들을 진상이라고 부를 때가 있잖아요? 유흥업계에도 진상이라고 부르는 어떤 형태가 있어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일을 하다보면 문제와 말썽이 많은 구매자들을 경험할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술이 꽐라가 되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토한다거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떼를 쓴다거나, 강제로 원치 않는 체위를 시도한다거나 자기 성기에 구슬 박아 와서 진물이 흐르는 상태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거나, 잠도 안 재운다거나 사정하지 못했다고 돈을 줄 수 없다며 한 번 더 하자고 한다거나 하는 등의 난동을 부리기도 하죠. 언니들은 이런 구매자들을 진상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보통 우리가 진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 진상짓 아니면 문제도 아니라는 거죠.

반면에 얼마 전에 본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야톡(夜talk)’이라는 밤문화 사이트가 있는데요, 성구매자들이 유흥업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어플 겸 블로그였던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아가씨 진상에 대해서 성토를 하고 있는 글이 있었어요. 자꾸 아가씨들이 남자 구매자에 대해 진상 진상하고 욕을 하는데, ‘우리만 진상이냐, 너희도 진상이다’ 하면서. 아가씨가 일을 하려고 왔으면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고발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슴을 만지려고 하는데 몽우리가 져서 아프니 만지지 말라고 한 것, 치마 속에 손을 넣자 팬티가 있어서 빈정 상하게 만든 여성, 생리 중이라며 구매자의 손을 슬그머니 제어하는 여성, 술을 아무리 권해도 조금씩만 마셔서 술 취한 모습을 보는 재미를 안 준 여성, 노래를 시켰는데 노래를 못 부른다며 앉아서 이야기로 접대한 여성들 모두가 진상 아가씨에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을들의 이어말하기'가 열린 대한문 앞 모습< 사진 출처 : 비마이너>

▲ '을들의 이어말하기'가 열린 대한문 앞 모습< 사진 출처 : 비마이너>


자기보호가 진상이라고 익히는 차별

언니들이 말하는 진상과 남자 구매자들이 '고발'하는 진상의 수위가 다르다는 것이 너무나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언니들은 구매자들의 거의 파렴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 진상이라고 이름 붙이는 반면, 구매자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동으로부터 ‘여성들이 감히!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것’ 자체를 괘씸하게 여기며 진상으로 낙인찍고 있습니다. 구매자들은 여성이 이미 직업을 선택한 이상 그 곳에서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직업 선택이 자신의 성을 처분할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남성 구매자 중심의 모든 규칙을 내면화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인 구조를 굉장히 명확히 보여주는 풍경입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혹은 안마시술소나 룸살롱과 같이 구매자를 위해 세팅된 공간에서는, 성판매자들이 권력을 가지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업주나 관리자들과의 관계에 따라 공식적인 대처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고, 대신 성판매자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지침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 안전지침이라는 것은 운이 좋거나 나 자신이 대단한 담력과 싸움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의미가 사라질 수밖에 없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별 것 아닌 개인의 노하우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정말 안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위안이라도 필요해서입니다.

이를테면 함부로 쑥쑥 들어오는 손을 막고 싶을 때 생리중이라고 한다거나, 생리 중인 경우에는 속옷을 여러 겹 입는다거나, 가슴이 몽우리가 져 아플 때에는 참지 말고 아프다고 말한다거나 하는 등등이 그나마 용기 내어 실행에 옮긴 자기 지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안전지침은 오히려 아가씨를 진상이라고 낙인찍게 하고, 낙인찍는 자들은 여성을 남성의 판타지에 완전히 길들이려고 합니다. 이것은 국가를 막론하고 성매매가 합법적이거나 금지되어 있거나를 막론하고 성판매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성판매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는 성산업의 합법화나 불법화와 별 상관이 없고, 남성이 아닌 존재, '정숙'하지 않은 여성에게만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관리와 통제의 문제입니다.

보통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 내에서 혹은 일상생활 공간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다면 분명히 차별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을 성산업 안에서도 예외 없이 경험합니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차별이라고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겪는 안전의 위협과 경제적인 족쇄는 성매매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거나 ‘당해도 싼 일’이 될 때가 많아요.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이 성폭력으로 명확하게 고소해도 경찰이 성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단속 과정이나 조사 과정에서 여성에게 성매매에서의 모든 피해의 원인을 전가하기도 하는 등 공권력이 2차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 번 선택하면 그 안에서의 문제에 문제제기 할 수 없을까요? 이것은 동성애를 선택하면, 결혼 했으면, 공장에 들어갔으면, 아무 것에도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죠.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것 안에서도 끊임없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차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제 3자의 눈으로도 판단하기 힘들다면 그만큼 우리도 차별에 공모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차별이 낙인으로 이동하는 지점입니다.


차별을 넘기 위해서는 법만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가 필요해

어떤 사람은 성판매 여성의 피해 이야기를 듣고, 성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성매매에 대해 합법화를 해야 여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두 가지 모두 성매매시장에 대한 입장과 성판매 여성의 인권 문제를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합법화나 근절주의와 같은 성매매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인 문제로 모든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각각의 입법정책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의 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건 굉장히 이원화되고 단순화한 도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요즘 성판매자의 비범죄화를 주장하고 법 개정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매매 비범죄화에서 구매자와 알선자를 제외하는 것이 마치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인식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별을 막론하고 구매자나 알선업자와 똑같은 조건을 가질 수 없는 성판매자에 대해 똑같이 처벌한다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간접차별입니다.

성매매와 관련한 문제를 성매매 관련법으로만 해결할 수는 절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여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세상에 있는 차별이 몽땅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죠. 하지만 차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해와 보호로만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다양한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성판매자의 비범죄화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라 간접차별에 제동을 거는 일이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고, 여성을 창녀와 성녀로 구분 지으려는 시도를 멈추는 일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임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겁나 어려운' 숨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