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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구_창] 유럽인권협약에서의 평등과 비차별 (1)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세계인권선언 제2조)
모든 국제인권법이나 헌법에는 ‘평등과 비차별’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평등이고 차별인지를 친절히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인권에 관심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반대와 평등의 진전을 얘기하지만, 그 구체적 범위와 기준과 내용을 정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이다.
이에 하나의 사례로서 유럽인권협약에서는 평등과 비차별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보려 한다. 1950년 채택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 협약’(아래 유럽인권협약)은 지역인권기준 중에서 일찍이 자리 잡았고 상설유럽인권재판소를 설치하고 있기에 실효성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출처: Oddný Mjöll Arnardóttir, Equality and Non-Discrimination under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03)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 [출처] 유럽인권재판소 홈페이지(www.echr.coe.int)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 [출처] 유럽인권재판소 홈페이지(www.echr.coe.int)


법에서 평등을 논할 때 오랫동안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의 차이에 주목해왔다. 전통적으로 이 둘 간의 차이는 ‘법의 내용에 상관없이 법의 적용만을 문제 삼느냐’ 아니면 ‘혜택과 부담의 정당한 분배 내지 일종의 사회정의의 요구 속에서 법의 내용을 문제 삼느냐’이다.

이런 기본적인 구분에 기초해서 ‘실질적’ 평등에는 또 다른 두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차이에 따른 다른 처우에 대한 인정이다. 여기에는 평등을 증진하고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집단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목적의 적극적인 조치들이 포함될 수 있다. ‘실질적’ 평등은 차이에 따른 다른 처우를 허용하는 것으로 이것은 차별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둘째, ‘적극적 의무’를 실질적 평등의 개념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는 차별을 방지하거나 차별로부터 보호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받을 수 있다.

평등에 관한 법률규정의 정교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차별은 지속적이다. 형식적 평등이건 실질적 평등이건 평등에 관한 법률규정이 법적 절차를 밟을 때는 형식적 요소만 남게 되어 버린다. 이에 대한 비판들은 더 많은 실질적 평등을 주문하지만 평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인권법에서 평등 문제에 대한 아주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크게 3가지 접근 이론에 기초해서 평등의 문제를 살펴보자.

형식적 접근

첫번째로 형식적 접근법이 있다. 이는 “엄격하게 똑같은 처우”, 대칭적 접근 또는 동일성의 접근이라고도 말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한다는 격언에 기초한 것으로 성‧인종‧종교 등 특정한 구분을 아주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 성‧인종 등의 특성이 아주 무의미한 것이므로 다른 처우로 귀결될 수 있는 ‘차이’를 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접근법은 동일한 처우에서 파생될 수 있는 불평등한 결과에 상관없이 동일한 처우를 강조한다. 이 접근법이 ‘대칭적’이란 의미는 불리한 집단에게 혜택을 주려는 다른 처우를 이미 특권층인 집단을 이롭게 하려는 다른 처우와 마찬가지로 유해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식적 접근법은 자유주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동일한 처우’에 대한 강조는 개인주의에 대한 강조와 직접 연결된다. 차별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장점이나 결점이지, 어떤 집단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지속되는 구조적 불리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등에 대한 형식적 접근법으로는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해 계획되는 적극적 조치(차별수정조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 이런 점은 국가의 수동적인 역할에 대한 강조와 연결되기 때문에 국가에 요구되는 것은 적극적인 의무가 아니라 외적으로 명백한 차별을 삼가기만 하면 되는 소극적 의무이다.

이 접근법의 강점은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한다니 간단명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이 접근법의 단점이 있다. 누가 똑같고 다른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또한 처우의 내용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는다. 또한 ‘누구와 비교되는가’라는 문제점이 있다. 평등의 문제가 다뤄지기도 전에 이미 비교대상이 결정돼있고 분명한 비교대상이 없는 문제 같은 건 아예 제쳐 놓는다. 예를 들어 임신, 파트타임 노동, 장애 같은 문제 영역은 무엇과 비교되는가를 생각해보자.

이런 한계 속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불리한 집단의 구성원이 요구할 수 있는 동일한 처우의 내용은 특권 집단이 이미 누리고 있는 처우나 특권집단이 누릴 수 있는 수준에 국한될 뿐이다. 불리한 집단의 요구는 그 내용 자체가 아주 다른 것일 수 있는데 그 점이 고려되지 않는다. 따라서 비교대상자(예를 들어 임신하지 않는 남성, 정규직 노동, 비장애인)와 ‘동일성’을 보임으로써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접근은 차이로 인한 배제를 일으키게 된다.

마지막으로 형식적 접근법의 문제점은 지배적인 사회정치적 구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지배적인 집단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된다. 기존의 사회 구조가 특권과 박탈에 어떻게 침투해 있으며 지배적인 집단의 기준이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지배하는 가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지난 7일 장애민중행동대회 참가자 가운데 50여명이 서울 마포대교 북단 강변북로 진입로에서 일산방면 3개 차선을 점거하고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3시간가량 농성을 벌였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지난 7일 장애민중행동대회 참가자 가운데 50여명이 서울 마포대교 북단 강변북로 진입로에서 일산방면 3개 차선을 점거하고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3시간가량 농성을 벌였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실질적 “차이”의 접근

두 번째 접근법은 ‘동일한 처우’와 특별한 처우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차이 모델, 실질적 및 비대칭적 접근이라고도 한다. 형식적 접근법에 기초하고는 있지만 다른 점은 실질적 평등을 성취할 목적으로 어떤 차이들은 인정돼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차이모델에서 문제되는 차이는 ‘불변의 바꿀 수 없는’ 차이로서 예를 들어 임신, 출산휴가, 교육에서의 소수자 언어, 장애 등이다.

이 접근법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격언에 규범적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결과의 평등’에 근접할 수 있는 처우를 요구한다. ‘결과의 평등’을 강조함으로써 간접차별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간접차별이란 의도와 무관하게 집단 간에 다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으로서 차이 모델은 이에 대한 객관적인 정당화를 요구한다. 차이 모델의 중요한 특징은 차이를 받아들이는 상황을 ‘동일한 처우’의 ‘예외’로서 다룬다는 점이다. 형식적 평등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의 효과에 대응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개인주의적 이상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개인이 누릴 기회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특정 집단의 성원이라는 지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차이 모델은 형식적 접근법의 엄격한 개인주의를 거부하고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허용한다.

차이 모델의 강점은 형식적 접근법에서 나타난 규범적 불확정성, 비교대상의 선점, 이미 비교대상에게 인정된 처우만으로 요구를 국한시키는 등의 문제점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차이 모델의 특질은 특별한 적극적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을 허용했다는데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적 보호 뿐 아니라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실질적 평등의 개념과 연결시켰다. 적극적 조치는 비차별적일 뿐 아니라 특별한 상황에서는 국가가 적극적 조치를 규정하거나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차이 모델은 차이에 대한 적극적 수용을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차이 모델의 약점은 ‘어떤 차이가 정당화될 수 있고 특별한 처우를 요구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규범적 답이 여전히 불확정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오직 생물학적이거나 불변의 차이만을 다루느냐 아니면 어떤 차이든지 다룰 수 있느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차이에 따른 다른 처우를 규범적으로 인정한다고 했지만 그 처우의 내용은 여전히 모호하다. 어떤 점에서는 ‘유리한 특별한 처우’를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차이가 또 다른 측면에서는 ‘불리한 특별한 처우’의 구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 접근법에서와 마찬가지로 차이 모델에서도 사회속의 지배적인 집단이 ‘기준’이 된다. 따라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보면 조건부의 내용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비판은 특별한 처우란 것이 그런 처우를 받는 집단에게 낙인을 부여하는 기능을 할 수 있고, 불평등한 상황속의 현상유지를 영속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된 문제로 차이 모델은 ‘다르다’고 하는 집단을 바라보는 판에 박힌 진부한 시각을 영속시킬 잠재성이 있다.

실질적 “불리함”의 접근

세 번째 접근법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최근에 등장한 것이다.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 지배, 불리함의 비대칭적 구조’를 강조하는 ‘맥락에 따른 접근법’이다.

이 접근법은 따져봐야 할 조치가 취약집단의 불리함을 늘리기 위해 작동하는가 아니면 불리함을 줄이기 위해 작동하는가를 분석한다. 불리함을 늘리는 관행과 정책을 없앨 것을 요구하고 사회정치적 구조를 바꿀 것을 요구함으로써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구조적 불리함에 도전하는 일에 간접차별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간접 차별을 불법화하는 것이 이 접근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접근법은 앞서 살펴본 두 접근법에서 나타난 동일성과 차이의 접근의 약점에 대응하여 만들어졌다. 본질적인 동일성이나 차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거나 체제적인 결과로 강조점을 옮기는 것이다. “X라는 존재나 특성은 사물의 본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X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X는 사회적 사건, 세력, 역사에 의해 존재하거나 형성됐다. 이 모든 것들은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라는 입장이다. 평등이라는 맥락에서 'X'는 특정 집단에게 부여된 특질일 수도 있고 차별이나 불리함이라는 사회적 사실일 수도 있다. 이런 접근에서는 어떤 특질이 ‘자연적’이거나 ‘불변’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며, 그런 특질들에 대해 ‘사회적 구조’이며 사회에서의 권력‧지배‧불리함의 체계적인 유형으로서 관심을 가진다.

무엇보다도 이 접근법은 개인주의와 자유방임국가에 대한 강조를 분명히 거부한다. 이점에 있어 두 번째의 ‘차이 모델’의 접근법과 같지만 ‘불리함의 접근’은 그런 거부를 최대한 밀어붙인다. 특별한 처우를 ‘동일한 처우’의 예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정치적 구조를 철폐하기위해 단지 때때로 요구되는 것으로 본다.

‘불리함의 접근’의 강점은 앞의 두가지 접근법과 비교할 때 규범적 내용을 좀 더 분명히 한다. 예를 들어 ‘불리한 조건을 경감하고, 위계와 지배의 관계를 없앰으로써’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는 식으로 정당한 처우에 관해 얘기한다. 또한 기존의 비교대상에 초점을 두고 그들과의 동일성과 차이를 얘기하는 문제점을 벗어났다. 동일성과 차이라는 용어로 분류하는 것은 ‘불리함의 접근’법이 요구하는 분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접근법은 기존의 사회구조적 구조의 현상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구조적 불리함’에 대해 보다 비판적이다. 결과적으로 구조적 불리함과 연관된 모든 종류의 문제가 평등 문제로 다뤄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접근법에서도 규범적 불확정성의 문제는 여전하다. 불리하다고 하는 집단과 그들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불리한 집단’으로 분류하는 문제는 ‘다른 집단, 차이를 가진 집단’으로 분류하는 것과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어떤 집단이 불리하냐를 결정하는 것과 관련된 법원의 능력이다. 이 접근법에서 요구되는 맥락에 따른 분석은 법원이 전통적으로 다뤄왔던 것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다. 문제되는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그런 사회에서의 개인의 지위,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법률의 정치적 및 사회적 영향에 해당되는 얘기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법원의 분석은 관련 당사자의 분석과 아주 다를 것이다. 또한 법원은 그 자체가 사회구조로서 사회정치적 구조 변화를 위한 효과적 장치라기보다는 ‘모든 것의 척도’로 간주되는 사회에서의 지배집단의 견해를 유지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골치 아픈 문제는 이 접근법에서 보면 평등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평등원칙을 고수하지만 실제로는 평등으로부터 얻을게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평등에 대한 법적 접근

지금까지 살펴본 평등에 대한 세가지 접근법이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장 형식적인 접근법에서 보다 실질적인 접근으로 미끄럼을 탄다고 할 때 어느 지점에서 순간 포착을 했느냐에 따라 이들 관점이 보일 것이다. 가장 형식적인 접근에서의 평등에 대한 법적 보호는 완전히 무익하며, 가장 비판적인 접근에서 볼 때는 사회 혁명 말고는 충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평등에 대한 접근법에는 일정 정도의 규범적 불확정성 내지 모호성이 있다. 이 문제는 하나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공식으로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가치의 판단 문제이다. 실질적 평등에 대한 법적 접근은 궁극적으로 이런 가치 판단에 달려있다.

다른 국제인권조약과 마찬가지로 유럽인권협약의 평등 규정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가치 판단의 문제와 규범적 의미는 법원의 절차를 통해 발생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형식적 또는 실질적 접근이 작동하고 있느냐가 드러난다. 이글은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차별문제를 어떻게 검토해왔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덧붙임

◎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