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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독자들의 편지

[독자들의 편지 ④] 고마워, 친구야

<인권오름> 창간 1년, “인권오름과 나” - 이용석

<편집인주> 1993년 출발해 2006년 2월 3천호를 끝으로 마감한 <인권하루소식>에 이어, 인권운동사랑방은 지난해 4월 26일 새로운 주간 인권소식지 <인권오름>을 창간했습니다. “가려진 인권현장, 민중들의 삶과 소통하는 인권매체, 어깨 힘 빼고 살아있는 고민을 전하는 매체”를 고민하며 창간한 <인권오름>이 이제 1년을 맞이했습니다. 1년 전 이맘 때, 모래바람에 점령당한 하늘처럼 흙빛으로 가리워졌던 우리 인권의 현주소는 지금도 여전히 어둡기만 합니다. 그 속에서 ‘갇힌 인권’의 경계를 넘어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다른 인권’을 이야기하겠다던 1년 전의 ‘포부’가 수줍게 떠오릅니다. 인권의 가치가 삶의 한가운데로 녹아들 수 있도록 삶살이 가까이, 나지막이 인권이야기를 전하겠다던 창간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게만 보입니다. 이리저리 휘청이듯 중심을 잡은 듯 헤치면서 걸어온 1년, <인권오름>의 지난 1년을 <인권오름>과 함께 해준 독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봅니다. 3회에 걸쳐 실린 [독자들의 편지]는 이번 회로 마칩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은 없다. 자각하지 못했든, 의식적으로 지워버렸든 간에 누구나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은 소수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우리는 삶의 어떤 부분에서는 권력과 기득권을 가지고 있고, 그 기득권들을 거부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그것을 자각하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어느 정도는 세상과 타협을 하고 살아간다. 다만 어떤 사람은 타협을 당연시하고 세상에 맞춰가고, 또 다른 사람은 타협을 부끄러워하고 세상에 양보했던 것을 조금씩 줄여가고자 노력한다. ‘완벽’이라는 단어가 인간의 것이 아님을 겸손하게 인정한다면, 문제는 ‘타협’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권력을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나로 인해 누군가의 존엄이 위협받지 않는지를, 가능한한 많은 삶의 부분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성찰은 때로는 진지하고 진중한 내면의 소리와 마주하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또한 내 삶을 비춰보고 가늠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는 이 관계를 ‘친구’라고 부르고 싶다.

수감시설들도 사람 사는 곳이다보니 다양한 권력관계가 서로 얽혀있고, 그 모양새는 감옥 밖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군대처럼 선임자(구속된 날짜와 상관없이 해당하는 방에 먼저온 순서를 따진다)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여기에 나이, 소득수준, 학벌, 흔히 ‘사회적 지위’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빽’까지 저 밖에다 두고 온 것들까지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나 역시 이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나이와 죄명(병역거부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편견으로 나를 대하기도 한다)은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이유들이고, 학벌과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다. 심지어 민가협 소식지나 <인권오름>(민가협이나 사랑방은 이곳에서 은근히 ‘이름이 갖는 힘’이 크다)도 나에게 주어지는 권력 중의 하나다. 부끄럽지만 이 보잘 것 없는 권력이나마 움켜쥐고 늘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비참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비겁한 내 모습이 안쓰럽고 서글퍼진다.

조금 더 편해지고자 알량한 기득권과 권력에 집착하는 순간 무너져내리는 내 인격의 존엄성을 붙잡아주는 친구 중의 하나가 <인권오름>이다. 때로는 조곤조곤 나지막하게, 하지만 준엄하게 나를 꾸짖고, 또 때로는 사근사근하게 희망을 속삭이며 나를 들뜨게 한다. 텔레비전 뉴스의 영상과 신문의 활자에 갇혀있는 진실을, 눈물 흘리는 법을 일깨워주려는 듯이 펼쳐 보여주기도 한다. 무언가 마음은 찜찜한데 두루뭉술 정리가 되지 않는 느낌들에 따끔한 일침으로 속 시원한 처방을 내려주기도 한다. <인권오름>은 나를 공감해주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이면서, 내 삶이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가늠해보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인권오름>이 도착하는 동안 일주일이 휙휙 지나가버리는 쏠쏠함(여기선 세월 가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없다.ㅋㅋ)은 덤이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난 애독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불성실하며 심한 편식쟁이다. 도착한 <인권오름>은 소지품의 한 구속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갑자기 책도 보기 싫고 편지 쓰기도 귀찮을 때, 아니면 갑자기 <인권오름>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한꺼번에 몰아서 본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아둔 <인권오름>이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 쯤 ‘해치워버린다’. 이렇게 한꺼번에 읽다보니 모든 글을 꼼꼼하게 읽지는 못한다. 워낙 어려운 글이나 딱딱한 글들을 싫어하는지라 아무래도 ‘솟을터’와 ‘세움터’는 꼼꼼하게 보는 척하다가도 은근슬쩍 넘어가버리고 ‘놀이터’와 ‘나들터’에 집중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솟을터’와 ‘세움터’에 의미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취향 혹은 지적 능력과 거리가 좀 있을 뿐이다.

편지가 내 가까운 곳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라면, <인권오름>은 내가 사랑하는 세상-아프고, 슬프고, 행복해서 아름다운 세상과 나누는 대화다. 어쩌면 나중에 출소하고 나면, 그래서 세상과 대화하는 다른 여러 가지 방법들이 추가되면, 난 <인권오름>을 조금 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인권오름>을 사랑하게 될 거라 믿는다. 그러니 내 사랑이 조금, 아주 조금 줄었다고 서운해하지 말기를. 생일 축하한다, 친구야!
덧붙임

이용석님은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서 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