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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독자들의 편지

[독자들의 편지 ①]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권오름> 창간 1년, “인권오름과 나” - 여미숙

<편집인주> 1993년 출발해 2006년 2월 3천호를 끝으로 마감한 <인권하루소식>에 이어, 인권운동사랑방은 지난해 4월 26일 새로운 주간 인권소식지 <인권오름>을 창간했습니다. “가려진 인권현장, 민중들의 삶과 소통하는 인권매체, 어깨 힘 빼고 살아있는 고민을 전하는 매체”를 고민하며 창간한 <인권오름>이 이제 1년을 맞이했습니다. 1년 전 이맘 때, 모래바람에 점령당한 하늘처럼 흙빛으로 가리워졌던 우리 인권의 현주소는 지금도 여전히 어둡기만 합니다. 그 속에서 ‘갇힌 인권’의 경계를 넘어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다른 인권’을 이야기하겠다던 1년 전의 ‘포부’가 수줍게 떠오릅니다. 인권의 가치가 삶의 한가운데로 녹아들 수 있도록 삶살이 가까이, 나지막이 인권이야기를 전하겠다던 창간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게만 보입니다. 이리저리 휘청이듯 중심을 잡은 듯 헤치면서 걸어온 1년, <인권오름>의 지난 1년을 <인권오름>과 함께 해준 독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봅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유해를 화장했다. 고향 마을이 신행정수도지라서, 이즘엔 묘지를 한창 없애고 있다. 나고 자란 곳을 한번도 떠나본 적 없는 어떤 사람들의 살아온 흔적이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지워지는 중이다.

20년 된 무덤을 파헤치자 잘 삭은 흑갈색 유골이 드러났다. 아버지 친구 분이 뼈들을 추려 고무통에 얼기설기 담았다. 수의를 탈탈 털지 않았다면, 이빨 한두 개쯤은 쌓인 흙더미에 휩쓸려갔으리라. 고무통에 담긴 뼈들은 가운데를 도려낸 LPG 가스통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가스통 옆에 놓인 또 다른 LPG 가스로 20여분 동안 태워졌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불길에 손을 쬐었다. 잠시 뒤 재와 잔해가 쇠절구로 옮겨졌다. 아버지의 또 다른 친구가 쿵덕쿵덕, 절구질을 했다. 간간이 뼛조각이 튀었다. 거친 뼛가루가 절구째 막내 손에 쥐어지기까지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설익어 거무스름한 뼛가루일지언정 훨훨 날려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때마침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뼛가루는 뿌리자마자 빗줄기에 눌려 곧 가라앉았다. ‘겨우 존재하던 자’의 마지막다웠다.

<인권하루소식>을 처음 안 건 5년 전쯤인 것 같다. 갓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 하월곡동 사람들을 취재한 기사를 우연히 접하곤 책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가 한 선배가 “그건 야간비행이 할 일이지!” 딱 잘라 말하는 통에 무안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땐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읽었는데, ‘인권’이란 개념은 접어두고 수감자나 달동네 사람들 얘기가 실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읽어 내려가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때나 지금이나 <인권오름>을 받아보는 건 ‘겨우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다. 특히 [삶_세상]이 그러한데, 이 꼭지를 읽노라면 여러 얼굴이 스친다. 모욕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체화돼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모르는 어머니 얼굴이 설핏 떠오르기도 하고, 공부해서 이 곳을 꼭 벗어나라며 학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나를 위해 저녁을 꼬박꼬박 챙겨 놓았던, 공장을 떠난 후 잊어버린 미싱사 김 언니, 회사에서 병원에 보내주지 않아 기계에 꺾인 제 손이 부어오르는 것을 보고만 있던 남동생과, 동생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어느 날의 나,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회사 잔일을 도맡아 하는, 나 역시도 ‘교묘하게’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회사 후배, 제 할 것 다 하면서 학습지 값은 미루는 회원 어머니의 막 대하는 태도에 마음 다쳐 새벽에 울먹이며 전화하던 집 근처 사는 후배, 빚 독촉 때문인지 일요일 아침마다 온 가족이 사라졌다 밤 늦게야 돌아오는 옆집 사람들, 그리고 개봉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 촘촘히 걸리는 노점상 아주머니들...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내가 알고 있거나 잊었거나 알아야 할 사람들의 삶이 [삶_세상]에, <인권오름>에 있다. 소식지에 등장한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 그건 일주일에 한번쯤, 가슴을 흥건히 적시라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진보는 기회주의적이고 기만적이며 허약하고 위선적이지 않느냐는 불편한 물음이었다.
덧붙임

여미숙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