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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인권이야기] 법허무주의를 넘어

법과의 첫 대면

법대를 지망한 것은 법에 대한 환상과 주변 사람들의 권유 탓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법이나 재판과의 첫 만남은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법을 배웠다. 한번은 헌법교수가 헌법상 언론·집회의 자유에 대해서 열강을 토했다. 바로 그 순간 창밖에는 언론을 통제하고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전투경찰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그때 법과 현실은 따로 논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법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한번은 선배가 집회를 주동하다가 구속되어서 재판을 받았다. 그때 나는 평생 처음으로 법정에 가보았다. 선배는 판사를 향해서 성토했고, 판사는 무기력해 보였다. 결국 유죄를 선고하긴 했지만. 아하, ‘재판이란 사람 잡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몇 번의 충격으로 법과 재판에 대한 환상은 모두 무너졌고 이후에는 ‘법과 재판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가 나의 입장이 되었다. 법과 재판은 나에게 비본질적인 것으로 각인되었다. 게다가 법은 기만적인 것이고 비판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랬던 내가 사법개혁운동에 뛰어들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법개혁운동에 ‘얽혀들었다’.

사법개혁운동을 하면서도 과거의 망령이 나를 괴롭혔다. 과연 좋은 법은 가능한가? 재판절차를 개혁하는 것이 가능한가? 법은 결국 강자의 것일 뿐이고, 약자의 희망은 법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닐까? 법과 사법절차의 개선은 기득권질서의 정당화만 낳을 뿐이고, 결과적으로 민중의 손해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관념적인 고민들이 발목을 잡는 속에서 사법개혁운동이 지속되었고, 그럭저럭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많은 일을 했다. 수많은 토론회, 집회, 거리에서의 선전, 서명운동, 책 발간, 국회의원 면담, 방송출연 그리고 촛불문화제에 이르기까지 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루두루 다 해보았다.

민주적 사법개혁 쟁취를 위해 열린 집회. '법'과 '사법개혁'은 민중의 힘으로 쟁취해야할 대상이다.<출처; http://delsa.or.kr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홈페이지>

▲ 민주적 사법개혁 쟁취를 위해 열린 집회. '법'과 '사법개혁'은 민중의 힘으로 쟁취해야할 대상이다.<출처; http://delsa.or.kr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홈페이지>


정부 사법개혁법안의 한계

돌이켜보면 많은 일을 했지만, 그로써 사회가 조금이라도 개선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적지 않다. 이러한 기대는 애당초 무리였는지 모른다. 정부가 상정한 사법개혁법안 자체가 너무나 명백한 한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정부안은 그 의제설정 자체가 법조계의 압도적 영향력 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법개혁의 핵심과제는 완전히 도외시했다. 예컨대 사법과거청산, 법관 인사에의 참여, 사법부 행정에 대한 국민 참여 등에 대해서는 애당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마 정부에 의해 마련된 사법개혁법은 그 내용이 매우 부실했다. 심지어 매우 기만적이었다. 예컨대 정부안은 국민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 국민참여재판제, 밀실에서 작성한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공판중심주의, 특권적 로스쿨, 국민의 참여를 봉쇄하는 법조인 징계법안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정부의 개혁법안이 모두 통과된다고 하더라고 과연 국민들이 사법개혁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람을 더욱 참담하게 하는 것은 이토록 알량한 개혁법안조차도 거의 통과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20개가 훨씬 넘는 개혁법안이 상정되었지만, 그 대부분의 법들은 1년 이상 토론조차 없이 국회에서 방치되었다. 국선변호, 법관징계법, 검사징계법, 양형관련한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몇몇 법안이 통과되었다고는 하지만, 정작 사법개혁 3대 입법 과제라고 할 배심제, 공판중심주의, 변호사 3000명 배출의 로스쿨법 등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오늘도 국회 앞에서 그 알량한 사법개혁입법의 통과를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썰렁한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가? 그 알량한 사법개혁법의 통과를 위해서? 아니다. 우리는 보다 원대한 사법개혁을 위해서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지금은 불과 몇 명이 거리에 앉아서 촛불을 밝히고 그 알량한 사법개혁법의 통과를 촉구하고 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앞으로 장대하게 타오를 희망의 불씨를 발견한다. 그것이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다.

새 희망을 밝히다

지난 2년간의 사법개혁투쟁에서 얻은 가장 큰 성취라고 한다면, 사법개혁의 방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이 참여하는 사법과거청산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국민의 사법’이라는 구호를 제기했고, 그 구체화로서 대법관, 법원장, 헌법재판관 등에 대한 선거 실시, 징계를 포함한 판검사 인사에 국민 참여, 민·형사 재판 배심제, 사법행정에 대한 국민 참여, 법조특권의 해체 등이 사법개혁의 핵심임을 명백히 했다.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말하자면 사법에 대한 국민 참여 또는 국민주권의 실현이다. 이를 위해 입법이 필요한지 개헌이 필요한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역사는 그러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확신과 전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법개혁 운동과정에서 획득한 이러한 철학과 전망의 발굴로 인해 나는 대학 시절 이래 집요하게 나를 괴롭혀온 법허무주의적 함정에서 거의 탈출할 수 있었다. 이제 법은 멀리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쟁취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법은 단순히 강자의 도구인 것만이 아니라, 역사적 성취의 축적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은 한편으로 비판되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호되고 확충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중운동을 한다는 것은 민중의 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민중의 이익에 봉사하는 법은 오직 민중만이 제기하고 관철시킨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민중이야 말로 역사의 주체이다.

이제 사법개혁의 방향은 정해졌고, 방법과 수단도 정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법개혁의 방향과 방법과 수단이 ‘발견되었다’. 현재 사법개혁입법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지만, 우리는 초조해 하지 말고 멀리 보아야 한다. 3월 국회의 성취와 상관없이 국민중심의 사법개혁은 어쨌든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성을 내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사법개혁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과제를 지는 것이며, 승리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의도 강바람에도 불구하고 가냘픈 촛불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믿는 이유는, 그 촛불이 사법개혁에 대한 민중의 염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임

이상수 님은 새사회연대 정책위원이자 한남대 법학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