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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제, 여성도 참여하라?

‘안보국가’에서 탈남성화된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편집인주>지난 <인권오름> 42호에 실린 '속 빈 강정, 사회복무제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고통 외면하는 사회복무제' 기사를 통해 전쟁과 군사주의를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외면한 사회복무제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보았다. 이번에는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사회복무제 참여가능성 확대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최근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 - 인적자원 활용 전략’에 포함된 병역제도 개선 방안에는 현역병 복무기간 6개월 단축, 유급지원병제 도입 등과 함께 전환복무제(대체복무제)를 폐지하고 사회복무제를 시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사회복무제에는 현행 병역처분 4급자(‘보충역’)와 병역면제 대상이었던 5급자(‘제 2국민역’)가 포함되며, 여성, ’혼혈인‘, ’귀화자‘, ’고아‘와 같은 병역의무에서 배제되었던 집단의 구성원들이 본인 의사에 따라 복무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여성도 사회복무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발표를 놓고 군가산점제 도입 논의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비전 2030‘ 발표 직후 국방부는 군가산점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애초 입장을 번복하는 듯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병역이행자들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군가산점제도 논쟁 다시 불거지나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는 군가산점제도가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후 군가산점제는 국가봉사경력가점제와 같이 겉포장만 바꾼 채 부활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병역이행에 대한 보상책으로 논의되는 이 제도가 병역의무에서 배제된 ‘비국민’에 대한 차별에 기초한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사회복무제가 본격 시행된다면 이에 대한 여성참여 요구와 함께 ‘주어지지도 않은’ 의무를 방기한다는 비난이 거세어질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적 차이’를 근거로 병역면제가 정당화되었다며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군사활동이 아닌 사회복무 정도는 여성이 담당할 수 있다,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병역이행에 대한 보상 문제가 더욱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적 군사화 심화시킨 여남징병제도의 해외 사례

병역의무에 기초한 국민들 간의 위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병역이행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비국민’들의 평등권과 갈등하는 차이와 평등, 의무와 권리에 관한 논쟁을 유발하는 사안이다. ‘동등한’ 병역의무 이행이 문제의 해결책일 수 있을까? 여남징병제도가 실시되는 북한과 이스라엘의 사례는 여성의 병역의무 이행이 차별을 완화하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북한의 경우 군 복무기간 동안 대다수의 여성들은 사무직, 간호직종과 같은 ‘전투’와 무관한 업무에 배치된다. 북한 여성은 결혼 전까지만 군사훈련에 참가하고 결혼하면 그 의무가 중단되는데, 결혼 전의 참여도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로 평가된다. 이스라엘의 경우 군대에서 여성의 임무는 남성병사의 도덕심을 진작시키고 군대를 ‘집에서 떨어진 집’으로 만드는 것이다. 병역이행과 상관없이 여성의 우선적 의무는 ‘민족재생산’으로 의미화되는 출산이다. 이스라엘과 북한의 예처럼 여성의 병역의무 이행은 공/사 영역에 걸쳐 이중, 삼중으로 노동해야 하는 부담으로 돌아오는 한편으로 사회적 군사화를 심화시킨다. 병역의무 이행을 통한 평등추구는 결국 군사화된 남성역할을 기준으로 평등을 모색하는, 실현 불가능한 여성의 ‘남성화’, ‘국민화’ 요구이다.

그렇다면 ‘군복무가 아닌’ 사회복무제의 여성 참여는 이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일까? 근대 국민국가에서 여성과 남성이 ‘국민’이 되거나 ‘개인’이 되는 방식은 동일하지 않다. ‘동등한’ 의무가 ‘동등한’ 지위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함에도 사회복무 논의가 군사영역의 우위와 공/사 위계에 기초한 ‘안보국가’에서 사회적 돌봄을 우선시하는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여성 참여’ 문제는 새롭게 다루어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비전 2030’에 기초한 병역제도 개선 방안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국방개혁안 2020’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는 군 제도의 합리화, 효율화를 꾀하여 ’국제적‘ 추세에 걸맞는 군사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인적자원 활용’이라는 취지에서 ‘정예부대’를 양성하겠다는, 군 현대화를 통한 강한 군사화의 맥락에 놓여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추진하려는 사회복무제는 군사영역의 우위를 지속 · 강화하면서 총동원 체제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다.

차별을 유지한 채 동등한 의무에 대한 강조는 또다른 차별

또한 병역의무의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에서 사회복무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예외 없는 병역의무 이행’을 통해 병역비리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선안에는 그간 병역면제 대상자였던 병역처분 5급자(성소수자, 상대적으로 ‘경미한’ 장애인 등)까지도 사회복무 대상자에 포함시키고 있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손가락 장애나 인공 눈을 시술한 사람’ 등이 그간 군복무 면제 처분을 받아 형평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 또한 ‘같은’ 의무를 이행하라는 요구는 공정하지 못하며, 진정한 의미의 형평성도 아니다. 장애, 성정체성, ‘혼혈’, 성별을 포함한 다양한 차이들이 차별로 전환되는 사회에서 ‘동등한’ 의무를 지우는 것은 평등을 가져오기보다는 차별을 가중시킨다. 따라서 총동원을 공고화하는 사회복무제 도입은 병역의무에서 배제된 여성의 지위와 갈등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의무를 통한 국민됨’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민주화 이후 최초로 시도되는 병역제도에 대한 변화가 제도를 합리화, 효율화시켜 ‘경제대국’에 걸맞는 ‘군사대국’으로의 도약을 꾀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사회복무제는 군사화와 총동원 체제의 연장선에서 논의될 것이 아니라 탈남성화된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군사활동이 아닌 사회적 돌봄을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복무 참여는 논의 가능하다.

참고: 정추영(2002), 「탈북여성의 군사적 경험을 통해 본 북한의 군사화와 성별위계에 관한 연구」
덧붙임

강유인화 님은 여성학을 전공했고, 논문으로 「한국사회의 병역거부 운동을 통해 본 남성성 연구」가 있다. 현재 평화바닥(Peace Ground)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