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2014년 상반기 인권운동사랑방 반성폭력 교육에서 나눴던 이야기들

8월의 마지막 금요일인 지난 29일, 인권운동사랑방 반성폭력 교육이 진행됐다. 금요일 밤인데도 20여 명의 사랑방 활동가들이 모였다. 이번 교육에서는 영화 ‘한공주’를 각자 보고 느꼈던 점을 나누고, 이와 관련된 3가지 사례를 각 모둠별로 골라서 토론을 진행했다. ‘한공주’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집단성폭행이라는 사건에서 출발하는 영화지만, 사건 그 자체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현재’에 의해서만 호출된다.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은 성폭력 생존자인 주인공이 다시 일상을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관계들이다. 전학을 도와주는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니, 엄마, 아빠, 아카펠라 동아리 친구들. 결코 악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들이 한공주와 맺었던 관계는 반성폭력 교육 자리에 모인 우리가 경험했거나,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둠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마주할 때(당사자가 아닌 경우) 우리가 흔히 경험하게 되는 상황을 중심으로 사례토론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운동단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올바른 해결을 위해 가해자-피해자에게 요구되거나 지원되어야 하는 사안들을 집행하고 단체 내 반성폭력 내규를 만들었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활동을 중단하면서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평가를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단체는 어떤 평가들을 내와야 하는지를 묻는 사례였다. 사실 많은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이 이와 비슷한 결과에 이른다. 토론에서는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 모두가 몸과 마음을 내어 움직이지 않고, 일종의 매뉴얼처럼 사건을 처리한 결과라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당사자들이 활동을 그만두는 결과는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치 행정 업무처럼 사건 처리가 아닌 해결을 위해 움직였다면 조직적으로 남는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모두가 몸과 마음을 내어 사건 해결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가 중요해진다.

 

두 번째 사례는 성폭력 사건 대책위가 꾸려지고 나서 A가 사건해결을 위해 단체 동료인 피해자보다 평소 친분이 있던 가해자를 먼저 만난 것에 대해 동료에게 지적을 받은 것이다. 동료의 지적 이후 사건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니 방관자같다며 비판을 받자, 대책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례였다. 토론에서는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먼저 만난 것은 피해자나 대책위가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부족한 행위라는 의견과, 가해자 편을 든 것도 아니라면 사건 해결을 위해서 자유롭게 만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문제될 이유는 없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를 만났는지 여부보다는, A가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거나 해야 하는 지일 것이다. A에게 지적을 했던 동료도 가해자를 만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기보다는, 피해자를 위해 대책위와 함께 무엇을 해야 할 지 물었던 게 아닐까? 2차 가해라는 말이 잘못 이해되면서 마치 법원의 접근 금지, 의견표명 금지처럼 이해되는 상황은 분명 문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맥락적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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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사례는 남녀 커플이 합의에 의해 성관계를 맺어오던 중 임신이 된 후 임신중절 문제로 힘들어하는 여성에게 남성이 수술비를 건넨 후 연락을 끊었고, 나중에 이 여성이 남성을 성폭력으로 경찰에 고소했던 사례였다. 토론에서는 법적으로 이건 성폭력이 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여성이 느꼈을 당혹감, 배신감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여성이 그런 상처와 피해를 성폭력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억압과 폭력이 ‘성폭력’이라는 프레임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남성들에게, 사회에서 인식조차 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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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공유되었으면 했던 것은 부당한 힘에 의해 고통을 겪는 이를 마주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였다. 성폭력은 성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폭력’이라는 것. 성폭력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 ‘폭력’의 작동방식을 파악해 이 힘에 맞서 고통 받는 이와 함께 이겨내기 위한 것이지, 전문 지식과 영역을 구축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를 마주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거기에서 출발하면 된다. 이게 성폭력인지 아닌지, 가해자를 만나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조직에서는 무엇을 더 집행했어야 하는지를 묻기 전에 말이다.

 

p. s. 열띤 토론과 사려 깊은 이야기들로 부실한 준비에 비해 풍성한 교육 자리를 만들어낸 사랑방 활동가들과 한낱, 날맹(들 활동가)에게 많이 배웠습니다.